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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7359195
· 쪽수 : 176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분노가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 나영정 인권활동가
시선으로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고통과 외로움의 연대로서 글쓰기 | 남웅 퀴어활동가
1부 이정식과 주변 사람들의 생
바다의 입
어떤 문장들이 쓰여 있는 걸까
편지
계단을 올라가면
검은 얼굴
2부 김무명
1985년 출생. 2017 HIV 양성
1989년 출생. 2016 HIV 양성
1988년 출생. 2016 HIV 양성
1993년 출생. 2017 HIV 양성
1982년 출생. 2009 HIV 양성
1968-2015
1966년 출생. 2004 HIV 양성
1964년 출생. 2010 HIV 양성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새벽 세 시의 평일이었다. 손님이 없어 가게 문을 일찍 닫은 날에 나는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언덕의 오르막길을 걸어가면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신발을 벗고 바닥 위로 쓰러져 누워버리고 싶었다. 섬유질의 종이가 되면 어떨까. 종이가 돼서 종이파쇄기로 걸어 들어가 누군가 나를 읽지 못하도록 흔적들을 지워버리자.
지친 몸과 마음에 필요한 건 타인의 간섭이 없는 혼자만의 공간이고 이 공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고 듣지 않아야 한다. 마치 눈이 먼 것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내 일이 아닌 타인의 문제에 대해 갖는 관심은 쌓인 피로감을 가중시킬 뿐이니까. 그것이 사회와 나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을 모르는 사이에 침묵을 선택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쉬웠던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하고 눈길을 거두는 것은. 마음을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했던 일들은.
밤에 일한다는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둡고 지저분한 그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에서 일하는 많은 누나와 친구, 동생들은 저마다 꿈을 꾸며 미래를 위해 현실을 영위해나가요. (…) 바깥의 시간에 무감해지고 유리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여기에도 웃음이 있고 눈물도 있어요. 제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나요.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본 적이 있어. 어둠 속에만 있었다면 몰랐을 거야. 지금은 편안하다고. 어쩌면 사람들은 밤에 일하는 사람들의 그늘만을 보기 때문에 모르는지도 모르겠어요. 여기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떠난 사람들을 생각해요. 사회에서 호명되지 못하는 죽음들을요. 밤에 일한다는 건 그런 죽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일이기도 해요. 전 올해에만 벌써 네 번의 부고 소식을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