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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안과 밖

텍스트의 안과 밖

(타자(the Other)로서의 문학 읽기)

심영의 (지은이)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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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안과 밖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텍스트의 안과 밖 (타자(the Other)로서의 문학 읽기)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어문학계열 > 문학일반
· ISBN : 9788968171710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4-09-30

책 소개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인 「5·18 민중항쟁 소설 연구」 이후에 발표했던 오월 관련 평문들을 실었다. 타자(the Other)로서의 소수자 문학에 관한 글들과 에세이 형식의 비교적 짧은 산문 몇 편을 실었다.

목차

제1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1장∥오월의 기억과 트라우마
-이미란 소설 「말을 알다」
2장∥광주라는 기억 공간
-문순태의 5·18 소설들
3장∥기억과 망각 사이
-심상대 소설 「망월」
4장∥성찰과 모색
-5·18문학상 당선 소설들
5장∥지식인이라는 것
-5·18소설의 지식인 표상
6장∥5·18 문학교육의 의의
-박상률과 윤정모의 소설

제2부 여전히 타자인 문학
1장∥문화와 이데올로기
-체험된 관행과 욕망
2장∥사실과 허구의 경계
-영화 [부러진 화살]
3장∥5·18소설의 여성재현양상
-젠더의 관점으로 5·18소설 읽기
4장∥민주화운동에서 여성주체의 문제
-홍희담과 공선옥의 소설들
5장∥다문화소설의 유목적 주체성
-천운영과 송은일 소설
6장∥지역작가들의 변방의식
-광주·전남지역 작가들
7장∥장애인 문학에서의 性담론
-존재의 확인과 주체의 발화

제3부 산문들
1장∥과학적 사고와 인문정신
-인문학의 본질
2장∥‘안녕’을 묻는 사회
-대자보라는 낡은 유행
3장∥비탄에 젖어있는 당신께
-‘세월호’라는 국가폭력 앞에서
4장∥이것이 나라인가?
-아이들을 ‘누가’ 죽였는가?
5장∥역사를 다시 생각함
-문창극과 제국의 위안부
6장∥기억투쟁으로서의 역사
7장∥작가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저자소개

심영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소설가 겸 평론가, 인문학자.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5·18민중항쟁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2020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이 당선되었으며, 2023년 제2회 광주 박선홍 학술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사랑의 흔적』 『오늘의 기분』, 평론집 『소설적 상상력과 젠더 정치학』 『5·18, 그리고 아포리아』 등을 펴냈다. 2014년 아르코 창작기금과 2019년 서울문화재단 예술가 기금을 받았다. 조선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오랫동안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등 대학 안팎에서 인문학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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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장 오월의 기억과 트라우마
-이미란 소설 「말을 알다」


기억 공간으로서의 소설

이 글은 이미란 소설 「말을 알다」를 분석한 글이다. 대상 작품 분석을 통해 본고는 개인의 의지 밖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그 개인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고찰하고자 한다. 아울러 그러한 사건을 경험한 소설 내 인물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어떠한 기억과정을 거쳐 문화적 기억으로 재현 및 전승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문학-문화는 모두 기억에서 출발한다. 기억은 문화의 근원이자 바탕이다. 문화는 변화무쌍한 일상 저편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해내고, 안정적이지 못하고 우연적인 것은 망각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가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의미체계를 세우는 기억의 능력을 통해 존재의 바탕을 얻는다.(고규진 2003: 58) 그런데 기억된 역사적 사건은 기억 그 자체로서보다 객관적인 문화적 형상물로 재현된다.(나간채 2004: 16)

이렇게 재현은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나 모방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실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억과 문학적 상상력이 서로 교차하는 문학 텍스트는 스스로 하나의 ‘기억 공간’이 된다.(박은주 2004: 313) 어떤 형태로든 오월과 관계 맺고 있는 소설들은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기억 공간’으로 남는다. 문학공간은 확장된 삶의 공간이며,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는 흔적이면서 과거의 체험을 현재화하는 동시대적 공간이기도 하다.(한원균 2004: 35) 「말을 알다」는 우선 오월의 기억과 관계 맺고 있는 소설이다.


기억의 서사

소설의 주인공 장형수는 한국의 국립 지방대학 교수인데, 지금 중국 텐안 대학에 교환 교수로 와 있다. 그는 외국인 교수 숙소 옆방에 들어있는 미국인 교수의 중국인 아내 옌쯔량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녀는 문화대혁명 때 헤어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상해에 와 있다. 그녀로부터 문화대혁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장형수는 장국영이 여장 경극 배우 ‘데이’로 분했던 영화 ‘패왕별희’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주인공 데이와 샬로는 그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서로를 배반하게 된다. 그래서 장형수에게 문화대혁명은 “인간성에 대한 혹독한 고문이며 시대의 폭력”(168쪽)으로 기억, 해석된다. 자연스레 장형수는 1980년 5월을 회상-기억하게 된다. 그는 그 때 광주의 한 대학을 다녔고, ‘5·18’로 인해 문학동인으로 만났던 네 사람의 삶은 저마다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갖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장형수가 외국인 교수 숙소 옆방에 들어있는 미국인 교수의 중국인 아내 옌쯔량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숙소의 방 구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웃하는 방은 침실은 침실끼리 거실은 거실끼리 붙어 있어서 침실에서는 옆방의 침대 조명등 끄고 켜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처음에 장형수는 그녀에게 숨겨진 애인이 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중국어를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장형수는 그녀가 오래 붙들고 있는 송수화기를 통해 응, 응, 하는 다정한 응대, ‘?야,’ ‘?아’하는 친근한 어미 처리, “뚜이, 뚜이, 뚜이.” 하면서 늘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한 대화 방식을 통해 그녀가 버리고 간 연인의 트집이나 응석을 받아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160쪽)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숨겨진 연인에 대한 장형수의 상상은 김영희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진다. 그 시절, 대학신문사에서 공모한 문학상의 단편소설 부문에는 장형수가, 시 부문에는 김영희가 당선되었다. 그들? 장형수의 국문과 선배였던 박영선, 의대생이었던 최성호 등 네 사람은 함께 문학동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영선은 일찍이 연극반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을 시작한 사람이었고, 의과대학 학생회 임원으로 있었던 최성호는 의대 축제 때, 반정부 혐의로 감옥에 다녀온 작가를 초청할 정도로 당돌한 면모가 있었다. 장형수는 스스로를 “나는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기본적인 사회 인식은 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집단 활동에 대해서는 알레르기가 있는 편이었다”(168~169쪽)고 규정한다. 지금 그가 그리워하는 인물, 김영희는 “그저 평화주의자”(169쪽)로만 기억된다.

그 날, 5월 27일 오후에 도청으로 가기로 했던 장형수는 그의 아버지가 방문을 잠가 버리는 바람에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문을 잠갔을 때, 도청에 가지 않아도 될 핑계를 얻어서 기뻤을지도 몰랐다.”(169쪽)고 생각한다. 그 날 자정 무렵, 그는 “광주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나섭시다!” 라고 가두방송을 하고 다니던 여인의 목쉰 소리를 들었으나 다만 죄의식에 떨며 방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사정은 김영희도 다르지 않은데, 그녀는 27일 밤 도청에 있던 박영선에게서 나와 달라는, 나와서 지켜 봐 달라는 전화를 받았으나 ‘무서워서’(170쪽) 나가지 못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천둥 번개 치는 날은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는 무의식-죄의식에 사로잡혀 지낸다. 이렇게 인간 존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심연에서 발원된 욕망이나 두려움, 혹은 필요나 갈등들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거나 행동이 유발된다. 무의식은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의 저장고다.(한승옥 2007: 106)

그 날 이후, 장형수가 남몰래 마음에 두었던 그녀는 수녀가 되었다. 박영선은 도청에서는 살아남았으나, 남은 생애를 그 날 최후의 순간에 자신이 지켜보았던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쓰다 과로로 인한 간암이 악화되어 죽었다. 최성호는 의료 사고를 내고 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야스퍼스는 『책죄론(責罪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인을 죽이는 행위를 막기 위해 생명을 바치지 않고 팔짱 낀 채 보고만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일이 벌어진 뒤에도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어 나를 뒤덮는다.”(주디스 허먼(Judith Herman) 2007: 97) 그 해 오월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장형수의 문학동인들은 모두 존재의 위기 상태로 내던져진 것이다.(주디스 허먼, 97쪽)

장형수는 생각한다. “오월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네 사람은 지금도 어느 찻집에서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183쪽) 공간은 작품의 개연성을 제고하고, 의미 있는 서사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한원균 2004: 35) 이렇게 공간 속에는 잊지 못할 기억들이, 우리들에게 잊지 못할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우리들의 보물을 줄 사람들에게도 잊지 못할 그런 기억들이 있다. 그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응집되어 있다. 그리하여 공간은 기억을 넘어서는 것의 기억이 된다.(가스통 바슐라르(Judith Herman) 2007: 97) 뿐만 아니라 인간이 공간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된다.(안남일 2004: 153)

한편 「말을 알다」는 광주라는 공간으로 한정되다시피 한 기왕의 ‘5·18’소설들과 비교해 볼 때, 서사 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기왕의 ‘5·18’소설들을 분석·비평하고 있는 평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5·18’ 소설들이) 너무 오래 1980년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보니 ‘오월’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지나치게 일면적이고 닫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과 아울러 이제 광주라는 공간의 ‘안’에서 그만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적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월의 트라우마

과거는 뒤늦게 나타나 고통을 호소한다. 그런데 트라우마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는 내게는 생경한 타인의 목소리이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피맺힌 진실을 증언한다. 만약 이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인다면, 나는 섣부른 재현의 작업에 나설 수 없다.(전진성 2006: 476) 서사화를 할 수 없는 사회는 현재의 불만을 불식할 진보적 방법을 생각해 낼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이기도 하다.(제레미 탬블링(Jeremy Tambling) 2000: 257) 그래서 「말을 알다」의 서술 시간은 그 날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한 때일 뿐 아니라 기억-재현의 공간을 광주와 중국의 상해로 병치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알다」의 서사는 시간성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제레미 탬블링, 258쪽)

그 날의 참혹했던 기억과 관련된 트라우마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가족, 우정, 사랑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깨지게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자기 구성이 산산이 부서진다. 인간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념 체계의 토대가 침식당한다. 자연과 신성의 질서에 대한 피해자의 믿음이 배반당하고, 피해자는 존재의 위기 상태로 내던져진다.(주디스 허먼, 97쪽)

김영희의 의식 속에 그 해 오월의 광주라는 공간은 무서움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녀는 세 상을 떠나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만다. 장형수는, “박영선과 만나는 건 내가 숨기고 있는 죄의 목격자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가해한 당사자를 만나는 것 같기도 했다”(169쪽)고 고백한다. 그는, 아버지가 문을 잠근 바람에 도청에 나가지 못했던 데 대한 죄의식과 박영선이 도피 생활의 통고를 겪는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은 대학원에 다니고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박영선 역시 진압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도청을 공격해 들어오던 그 날 밤, 그곳에서 빠져나왔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과로로 인한 암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최성호는 박영선이 수배되었을 때, 숨겨 주지 못한 것에 대해 평생 죄책감을 지니고 살다가 의료사고를 저지른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오월이 아니었더라면 문학 동인이었던 그들 네 사람은 지금도 어느 찻집에서 만나고 있었을 것이지만, 그들은 예상치 못했던 광기를 만나 흩어지고 혹은 스러지고 말았다.

개인의 내적 동일성의 회복과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5·18민중항쟁과 관련된 트라우마의 치유는 그러므로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그러나 혐오든 사랑이든, 외상을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주디스 허먼, 316쪽)는 게 문제가 된다.


말-소통을 넘어선 치유의 모색

중국어를 좀 더 알아듣게 되면서 장형수는 외국인 교수 숙소 옆방에 들어있는 미국인 교수의 중국인 아내 옌쯔량이 한 사람에게만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름을 알게 되면 (타인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법”(161쪽)이기도 하지만, 한편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물 자체(실재계)도 관념도 아닌 그 둘 사이의 공간(문화의 공간)에서 생성되는 사건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사건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동시에 문화의 공간에서 의미를 발생시키게 된다.(나병철 2006: 369-370) 이렇게 의미부여는 적응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기규정의 문제이기도 하다.(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2003: 334)

좋아하는 열대 과일들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던 장형수는 어느 날, 그의 숙소 옆 방 문 앞에서 열쇠를 찾느라 핸드백을 뒤지고 있는 옌쯔량을 만난다. 그녀는 감기에 걸린 듯 무척 피곤해 보였다. 장형수는 극구 사양하는 그녀에게 감기에 좋다며 오렌지 몇 개를 건네고, 벽 너머로 기침 소리가 잦아들던 어느 날 옌쯔량은 과일 샐러드를 만들어 그의 숙소를 방문한다. 그녀가 문화대혁명 기간에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사연을 듣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 많은 전화가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것과 관계되어 있음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소식을 알게 되었으나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으려 해서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는 것, 그럼에도 미국에 있는 그녀의 어머니가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장형수는 학기가 끝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잠시 한국에 나가 있는 동안, 중국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는다. 그는 『케임브리지 중국사』나 『문화대혁명사』, 『우붕잡업(牛棚雜億)』 등의 책을 읽으며, 문화대혁명의 전모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분석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과 비교할 때 5·18광주민중항쟁이 그 전모를 드러내지 못하고 반쪽 역사로만 기술되고 있는 점에 대해 그는 ‘가슴 아프게 생각’(173쪽)한다.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찾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기성찰 혹은 자아인식이라 할 수 있다.(이은영 2002: 134) 따라서 “행복은 서로 닮아 있고, 불행은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네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힘의 연원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175쪽)하는 생각-인식을 갖게 된 장형수는 옌쯔량을 만나게 되면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그의 숙소로 돌아간다.

옌쯔량의 아버지가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 했던 것은 그에게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옌쯔량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너무 늙어 있었기 때문’(176쪽)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했다는 말은 장형수 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들은 세월 속에 자기 자신을 묻어 버렸다.”(176쪽)

옌쯔량의 아버지가 견뎌내야 했던 참혹한 세월과 그 해 오월을 겪었던 장형수의 상흔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시간 속에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그것은 광기라 부를 만한 것인데, 광기는 꿈과 그토록 유사한 이미지에 오류를 구성하는 긍정이나 부정이 덧붙여질 때 존재할 것이다. 광기는 진실과 인간의 관계가 혼란되고 흐려지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미셸 푸코(Michel Foucault) 2006: 399-400) 광기 속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총체성이 흐트러진다.(미셸 푸코, 386쪽)

그래서 「말을 알다」는 소통을 넘어서서, 우리를 억압했던 기나긴 세월-상처의 치유를 모색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옌쯔량의 아버지는 그를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지만 장형수는, ‘어디로 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184쪽) 하는 회한만이 남는다.

이야기하기를 통한 과거 회상은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행해지는 제의의 일상적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제의의 반복성은 인간 삶의 보편성과 본질적 측면을 보여준다.(오세정 2002: 71) 그것은 또한 과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인의 심리적 억압기제를 분석, 치료하기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정항균 2005: 125) 과거를 마무리 지은 생존자는 이제 미래를 형성하는 과제에 직면한다.(주디스 허먼, 326쪽) 그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와의 연속성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고 결단을 내린다.(정항균, 69쪽)

트라우마의 치유는 악이 전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었음을, 그리고 치유를 가능케 하는 사랑이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한다는 희망에 기반하고 있다.(주디스 허먼, 350쪽) 그러나 외상의 완결에는 종착지가 없다.(주디스 허먼, 351쪽) “어디로 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묻는 장형수의 독백-과거 회상이 시사하는 것처럼, 완성된 치유-회복이란 무엇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데 그 해 오월의 비극성이 있다.

장형수는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비극의 연원을 어느 쪽이든 인간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싶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 불러 세운다고 말한 알튀세르와는 달리 지마는 이데올로기적 순응주의가 가치들의 무차별성에서 발원하며 주체의 실존적 토대인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결국 무차별하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되어버린다(페터 V. 지마(Peter V. Zima) 1997: 215)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미란의 「말을 알다」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광주의 오월이라는 비극의 겹침을 통해 인간 삶을 억압하는 기제로써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함의를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치유

문화대혁명이든 혹은 그 해 오월이든, 평범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뿌리째 흔들고, 진실과 인간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든 결과를 가져온 게 분명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날의 기억에 의해 무력감과 두려움, 죄책감으로 고통을 겪는다.

이 글에서 살펴 본 이미란 소설 「말을 알다」는 오월의 기억과 관계 맺고 있는 소설이다. 기억과 문학적 상상력이 서로 교차하는 문학 텍스트는 스스로 하나의 ‘기억 공간’이 된다. 문학공간은 확장된 삶의 공간이며,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는 흔적이면서 과거의 체험을 현재화하는 동시대적 공간이기도 한다. 자칫 망각의 유물 혹은 기억의 박물관으로 남겨질 지도 모르는 그 해 오월의 기억을, 「말을 알다」는 소설이라는 문화적 기억-재현을 통해 새삼스레 그 현재-미래적 의미를 묻는다.

「말을 알다」의 서술 시간은 그 날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한 때일 뿐 아니라 기억-재현의 공간을 광주와 중국의 상해로 병치시킨다. 광주라는 공간으로 한정되다시피 한 기왕의 ‘5·18’소설들과 비교해볼 때, 서사 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말을 알다」는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한편 소설 「말을 알다」는 소통을 넘어서서, 우리를 억압했던 기나긴 세월-상처의 치유를 모색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말-이야기하기를 통한 과거 회상은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행해지는 제의의 일상적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제의의 반복성은 인간 삶의 보편성과 본질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과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인의 심리적 억압기제를 분석, 치료하기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트라우마의 치유는 악이 전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었음을, 그리고 치유를 가능케 하는 사랑이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한다는 희망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외상의 완결에는 종착지가 없다. “어디로 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묻는 장형수의 독백-과거 회상이 시사하는 것처럼, 완성된 치유-회복이란 무엇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데 그 해 오월의 비극성이 있다. 문화대혁명의 전모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밝혀진 것과는 달리 5·18광주민중항쟁은 그 전모를 드러내지 못하고 반쪽 역사로만 기술되고 있는 때문이다. 총을 쏜 자도,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무려 2백여 명이 그때 죽었다. 그런데도 거짓 화해를 이야기하는 담론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개인의 내적 동일성의 회복과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5·18민중항쟁과 관련된 트라우마의 치유는 필수적인 과제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란 소설 「말을 알다」는 조심스럽게, 치유를 가능케 하는 연대가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한다는 희망을, ‘광주’라는 공간을 넘어선 곳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옌쯔량의 아버지가 견뎌내야 했던 참혹한 세월과 그 해 오월을 겪었던 장형수의 상흔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지 않다는 인식, 행복은 서로 닮아 있고, 불행은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네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힘의 연원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인식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소설 「말을 알다」가 기왕의 ‘5·18’소설들과 다른, 빛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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