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렌즈로 수업과 평가를 탐구하다

핵심 아이디어·내용체계·성취기준의 일관성을 점검하며 평가의 본질을 재검토하고, 개념기반 유닛 설계 이론과 다양한 교과의 실제를 통해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수업 설계 관점을 제시한다.

서문

개념이라는 렌즈를 통해 수업과 평가를 다시 바라보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급변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진짜 교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우리 교사들은 중요한 것을 학생 맥락에 적절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혹시, 나의 수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닌가? 그저 시험을 위한 정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진짜를’ 가르치고 싶은 교사들의 진심에서 출발한다. ‘학생은 수업을 통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떤 사람으로 자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교단을 지켜왔던 교사들이 개념이라는 렌즈를 만나면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개념이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핵심적인 사실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념은 세상을 해석하는 렌즈로서 개념적 렌즈를 ‘사용’해서 복잡한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 각 교과의 다양한 렌즈를 장착해 보는 학습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복잡한 현상을 파악해 보고 현상 이면의 깊은 이해를 탐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념을 기반으로 탐구하는 수업은 정보를 외우는 수업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틀을 길러주는 장이 되는 것이다. 또한, 개념을 통해 학생들은 교과 지식을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보며 교과 학습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들이 탐구를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가장 적절한 렌즈를 선택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개념을 기반으로 학생의 사고 구조를 세워주는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사실적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 익숙한 관행에서 개념을 기반으로 학생들의 사고 구성을 지원하는 역할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깊은 이해를 강조하면서 개념기반 교육과정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으며 교사 역할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깊은 이해, 삶과 연계된 학습, 통합적 사고, 성찰, 전이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교육과정의 지향점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교사는 이를 어떤 방식으로 엮어 나가야 하는지 등에 관한 안내는 미흡하다. 반면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통해 개념기반 교육과정의 구현 방식을 접하게 된 저자들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구현 방식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지식, 기능, 가치·태도의 역량을 함양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IB를 경험
한 교사들에게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습 목표, 교수학습 방식, 평가 등이 일관되게 정련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는 ‘핵심 아이디어가 진정 교과의 깊은 이해를 담고 있는가? 핵심 아이디어는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진술되었는가? 내용 체계표에는 제시된 핵심 아이디어를 습득하기에 적합한 지식, 기능, 태도·가치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가? 내용체계표에 제시된 요소들을 잘 가르치면 과연 학생들은 제시된 핵심 아이디어를 습득하게 될 것인가? 이와 같은 가정을 구현하기 위해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성취기준은 핵심 아이디어, 내용체계표와 일관성을 갖는가? 성취기준은 깊은 이해의 수준을 잘 진술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저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평가의 대혼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 국가 교육과정은 교과 본질과 일치하는 중요한 것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을 고민하면서 이 책은 1장과 2장에서는 수업과 평가를 새롭게 바라보는 이론 및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고, 3장은 개념기반 유닛 설계에 대한 실제적 접근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다양한 교과에서의 개념기반 수업 설계의 실제를 담았다. 우리 저자들은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잡으며,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설계의 언어를 나누고자 했다. 동시에 완성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수업의 태도를 공유하고자 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 교사들이 공동으로 쓰고 설계했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교과도, 상황도, 경험도 달랐지만, 수업에 대한 진심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교실에서 개념을 중심으로 수업을 다시 설계하고, 이를 서로 읽고 고치며 함께 성찰했다. 때로는 개념 설정에 머뭇거렸고, 탐구 진술과 탐구질문 앞에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질문을 놓지 않았고, 아이들과의 수업 속에서 그 답을 하나씩 찾아갔다. 이 책은 그렇게 쓰였다. 모범 답안이 아니라 탐구의 흔적으로.
과학, 사회, 국어, 영어, 수학이라는 각기 다른 교과는 고유한 사고방식과 탐구 대상을 지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학생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기여한다는 교육의 본질에서 만난다. 우리는 각 교과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개념과 탐구의 정신을 함께 발견하고자 했다. 각 장에 소개된 사례들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 질문과 성찰의 구조, 평가의 방향성까지 아우르는 수업 생태계를 담고 있다. 학생이 어떻게 사고하고 연결하며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평가를 추구하면서, 수행 과제, 자기 성찰, 본질적 이해를 드러낼 수 있는 평가 방법을 함께 고민하며, 수업과 평가가 분리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사실, 책을 집필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도 하나의 탐구였다. 이 책을 함께 써 내려간 것은 공동 집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서로의 수업을 읽고 질문하며, 함께 사유하고 배우는 교사 공동체로 성장해왔다. 쉬운 길은 없었고, 때로는 되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질문하고, 나누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 속에서 교사로서의 앎이 깊어졌고, 수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무엇보다 학생들과의 수업이 다시 살아난다는 느낌, 그 감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었다. 탐구는 교사를 살아 있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커다란 결여를 담고 있다. 교과별 교사 1인의 설계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교과 교육과정의 큰 틀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외로움과 불완전함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자들이 배움과 나눔의 여정을 함께 걸어오며 공동으로 집필했지만, 개별 교과를 완벽하게 아우를 수는 없다. 다만 완성된 답은 아니지만, 과감히 질문을 던지는 용기와 저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성을 이해하는 너그러움을 독자들에게 요청함과 동시에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과정 ‘시스템’을 조성해 가자는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이제 이 책은 독자인 당신에게 건네진다. 지금 당신의 교실에서는 어떤 질문이 살아 있는가? 당신은 어떤 개념 렌즈로 수업을 설계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책이 당신의 교실에서 새로운 탐구의 씨앗이 되기를, 그리고 교사로서의 당신의 성장을 응원하는 동료의 손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