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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법학계열 > 형법
· ISBN : 9788968490422
· 쪽수 : 342쪽
· 출판일 : 2013-08-30
책 소개
목차
제1강 유기죄의 주체범위는 타당한가 / 9
제2강 협박죄의 미수범의 의미는 무엇인가 / 19
제3강 성범죄의 인식변화에 따른 해석론은 타당한가 / 33
제4강 상해죄의 상해와 강간치상에서 상해는 다른 것인가 / 47
제5강 전파가능성의 상대화는 타당한가 / 62
제6강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무엇인가 / 72
제7강 불법영득이란 무엇인가 / 82
제8강 기망수단에 의한 자기 물건의 회수는 무죄인가 / 94
제9강 불법원인급여는 급여자의 재산으로 보호받지 못하는가 / 100
제10강 카드를 훔쳐도 반환하면 무죄인가 / 110
제11강 정보는 절도죄에 의하여 보호될 수 없는가 / 121
제12강 강제이득죄의 미수죄는 인정되지 않는가 / 131
제13강 준강도죄는 강도죄와 등가(等價)한가 / 142
제14강 강도치상죄의 미수범은 인정되지 않는가 / 151
제15강 재산상 손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도 사기죄인가 / 158
제16강 과장광고의 허용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165
제17강 사기죄의 처분행위란 무엇인가 / 173
제18강 타인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행위는 어떤 범죄가 되는가 / 186
제19강 불법원인위탁물의 영득은 횡령죄인가 무죄인가 / 196
제20강 부동산 명의수탁자의 수탁물 처분행위는 횡령죄인가 / 209
제21강 위탁금전의 소비는 횡령죄인가 배임죄인가 / 220
제22강 횡령죄와 배임죄의 구별기준은 무엇인가 / 231
제23강 부동산이중매매는 배임죄인가 / 243
제24강 협력의무가 타인의 사무인가 / 254
제25강 경영실패는 배임죄인가 / 273
제26강 배임죄에서의 재산상 손해란 무엇인가 / 282
제27강 위조범죄 대상물의 행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 296
제28강 문서의 용도는 사회변화에 따라 달라지는가 / 306
제29강 증언거부권고지와 위증죄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 314
제30강 처벌되지 않은 정범의 교사행위가 방어권의 남용인가 / 325
참고문헌 / 334
찾아보기 / 335
책속에서
법학은 예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이 출범한 이후로 법학은 보이지 않고 법과 판례만이 시야에 가득 차 보인다. 법도 판례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면만 안다고 해서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형법교재들이 매년 출간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여 몇몇 특색있는 형법교재를 제외하고는 법과 판례를 알 수 있게 하기는 하나 형법적 사고의 배양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형법학자는 통설과 다수설에 쉽게 편승하고 젊은 법조인들은 기존의 판례를 추종하다보니 ‘다른 생각’은 설 자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생각=틀린 생각’이라는 편견마저 어느 새 상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 책은 ‘다른 생각’을 적어보자는 동기에서 출발하여 지금보다는 장래에 더 읽혀지고 음미될 수 있는 형법교재를 만들고 싶은 바램을 담고 있다. 책상머리에서만 형법을 공부하고 강단에서 강의경험만 있는 중견학자가 검사ㆍ변호사 그리고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노학자와 더불어 형법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같은 동기와 목표를 가지고 저술하게 되었다. 저작의 책임은 류전철 교수 본인이 맡았으나, 재산범죄와 관련된 주제들은 문형섭 변호사가 저술하였다. 특히 그렇게 한 이유는 문변호사는 ‘배임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재산범죄론의 이해’를 출간하여 이미 재산범죄분야에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 모두에 대해서 저자들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30개의 주제를 저술하면서 저자들은 많은 토론을 거쳤지만 아직도 여전히 이견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발상과 논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이견은 또 다른 논의를 거치면서 더욱 생산적인 발상으로 전환되어 향후에도 계속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다른 생각’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에 더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형법문헌들에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근거있는 비판이 많아질수록 우리 형법학계와 형사실무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학문적 열정으로 수고해준 장승일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장승일 박사는 와세다 대학에서 2년의 수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줄곧 이 책의 작업에 참여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장승일 박사의 앞날에 서광이 비추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교정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은주 양에게 감사를 드린다. 정은주 양은 현재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형사법전공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늦게 드린 원고임에도 휴가도 미룬 채 세심한 편집을 해 주신 송미숙 선생님과 전남대학교출판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3년 7월
류전철 씀
제1강 유기죄의 주체범위는 타당한가
1. 서언
부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누구에게나 그 사람을 부조해야 할 법률상 책임이 있다고 하거나, 그런 이유로 부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방치하는 행위를 모두 처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윤리적·도덕적 책임과 법률적 책임은 다르기 때문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법률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그 질서위반을 금지하는 규범인 것이다. 그러므로 유기죄의 책임을 지울 사람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입법정책에 속하지만 현재의 유기죄의 구성요건의 규정에 관한 해석논의가 유기죄의 주체범위에 그 여지를 두고 있으므로 논의의 실익이 있다.
유기죄의 주체는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로서 진정신분범이다. 유기죄의 구성요건에 기술되어 있는 법률상 보호의무자와 계약상 보호의무자가 유기죄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법문상의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 이외의 근거로 보호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의 대립이 되고 있다. 종래의 통설이자 현재의 소수설은 여기의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는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널리 사무관리ㆍ관습 또는 조리에 의하여도 보호의무가 발생한다고 한다. 판례와 현재의 다수설은 죄형법정주의를 근거로 하여 제271조 1항 유기죄의 법문에 한정하여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있는 자에 한정하여야 한다고 해석한다.
유기죄의 일반적 성격이나 입법추세, 공공의 복지를 지향하는 현대국가의 법이념 등에 비추어 볼 때 보호의무있는 자의 유기만을 처벌하면서 그 보호의무의 근거를 다시 일정한 조건하에 좁게 제한하여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서구사회를 비판하면서 공동체 정신에 바탕을 두고 서로 돕고 사는 우리의 전통을 미화해 온 점들을 되새겨 본다면 우리 형법의 유기죄의 규정과 해석이 적절한 것인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2. 사안
갑은 신정 연휴를 앞둔 2010.12.31. 오후에 종전부터 갑이 운영하는 주점에 손님으로 와서 술을 마신 일이 있던 피해자 A에 대하여 위 주점으로 술 마시러 오도록 권유하였고, 이에 A는 그가 운영하는 봉제공장 직원들과 회식을 하여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같은 날 22:48경 위 주점에 와서 다른 손님이 없는 채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2011.1. 1. 부터 2011.1.3. 오전까지 계속하여 양주 5병, 소주 8병 및 맥주 30여 병을 마셨다. 갑은 그 사이에 A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든 틈을 이용하여 A의 옷에서 A 소유 수협 체크카드를 몰래 빼낸 다음 이를 이용하여 은행의 현금인출기에서 2011.1.1. 12:05경 현금 100만 원, 다음날인 2011.1.2. 10:17경 현금 200만 원, 같은 날 11:56경 현금 100만 원을 인출하여 각 절취하였다. 한편 A는 2011.1.1.경부터 두 차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옷에 소변을 보는 등 만취한 상태에 있었고, 그 사이에 식사는 한 끼도 하지 아니하였으며, A에 대한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2011.1.3. 19:20경 주점에서 A를 발견할 당시 A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 트레이닝복만 입고 이불이나 담요를 덮지 아니한 채 양말까지 벗은 채로 소파에서 잠을 자면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며 A는 경찰관들에 의하여 바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다음날인 2011.1.4. 23:40경 저체온증 및 대사산증으로 사망하였다.
3. 학설
형법 제271조 1항은 보호의무의 발생근거를 법률과 계약으로 한정하고 있다. 여기서 법률과 계약 이외에 사무관리ㆍ관습ㆍ조리에 근거한 보호의무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있다. 이러한 논쟁은 형법 제18조의 부진정부작위범의 보증인의무와 관련해서 전개됨으로써 유기죄의 보호의무와 보증인의무를 같은 의무로 볼 것인지 여부가 하나의 주제어가 되어 왔다. 이러한 논의는 두 개의 견해로 대립되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부정설은 형법이 ‘보호할 의무 있는 자’ 혹은 형법 제18조와 같이 ‘의무 있는 자’라고 하지 않고,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있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외의 근거로 보호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긍정설은 법률상의 보호의무에서 형법 제18조를 배제할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형법 제18조가 사회상규나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므로 유기죄의 보호의무도 사회상규나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조리상의 보호의무를 인정함으로써 극단적인 개인주의 입장이 아닌 공동체 정신에 입각한 유기죄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법률상 보호의무와 계약상 보호의무 이외의 보호의무의 근거로서 사무관리ㆍ관습ㆍ조리를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으로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것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법률상 보호의무에 형법 제18조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것인가?」가 논의의 쟁점이라고 보여진다. 긍정설을 취하는 소수의 주장들은 타 법률에 근거하는 법률상의 보호의무에 형법 제18조를 배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부정설을 취하면서도 형법 제18조를 인정하는 견해도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문제에 관한 논의의 주제가 달라진 점을 알 수 있다.
유기죄의 주체와 관련해서 전개되어 온 논의의 주제는 「유기죄의 보호의무의 근거를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로 한정한 것인가? 아니면 예시로 볼 것인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 종래의 통설은 형법 제271조 1항의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는 예시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사무관리ㆍ관습ㆍ조리도 보호의무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하고 이에 대해서 현재의 다수설은 죄형법정주의의 관점에서 허용할 수 없는 해석이라고 반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유기죄의 보호의무의 근거와 관련해서 전개하는 소수의 견해와 다수 견해 중 일부는 논의의 쟁점을 보호의무의 발생근거로서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로 한정할 것인지 사무관리ㆍ관습ㆍ조리 등으로 확대할 것이냐에 두고 있지 않다고 보여진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판례와 다수설과 같이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에 한정하고 있다. 다만 법률상 보호의무에 형법 제18조나 민법 제734조의 사무관리 규정을 포함해서 볼 것인지에 대해서 긍정설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수설과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일정 기간 동행한 사실만으로는 유기죄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통해서 사회상규상의 보호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이후에 나온 대법원 판결에서는 “피고인이 호텔 7층에서 피해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다가 피해자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하여 7층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을 알았다면 즉시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여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고 하여 그러한 사실관계에 의해 유기죄의 법률상 보호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호텔에서 성관계를 요구하고, 이에 대해 피해자가 모면하고자 하였다면 피고인에게 형법 제18조에 근거한 법률상의 보호의무 이외 어떤 법률상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위 사안에 대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운영하는 주점의 손님인 피해자가 피고인의 지배 아래 있는 위 주점에서 3일 동안에 걸쳐 과도하게 술을 마셔 추운 날씨에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아니한 주점 내 소파에서 잠을 자면서 정신을 잃은 상태에 있었다면 피고인으로서는 위 주점의 운영자로서 피해자에게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피해자를 위 주점 내실로 옮기거나 인근에 있는 여관에 데려다 주어 쉬게 하거나 피해자의 지인 또는 경찰에 연락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계약상의 부조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원심판단을 그대로 원용하여 피고인에게 유기치사죄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계약상 의무’와 관련해서 간호사나 보모와 같이 계약에 기한 주된 급부의무가 부조를 제공하는 것인 경우에 반드시 한정되지 아니하며, 계약의 해석상 계약관계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상대방의 신체 또는 생명에 대하여 주의와 배려를 한다는 부수적 의무의 한 내용으로 상대방을 부조하여야 하는 경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의무 위반의 효과로서 주로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되는 민사영역에서와는 달리 유기죄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인적 책임에 대한 형사적 제재가 문제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부수의무로서의 민사적 부조의무 또는 보호의무가 인정된다고 해서 형법 제271조 소정의 ‘계약상 의무’가 당연히 긍정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당해 계약관계의 성질과 내용, 계약당사자 기타 관련자들 사이의 관계 및 그 전개양상, 그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부조가 필요하기에 이른 전후의 경위, 필요로 하는 부조의 대체가능성을 포함하여 그 부조의 종류와 내용, 달리 부조를 제공할 사람 또는 설비가 있는지 여부 기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계약상의 부조의무’의 유무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한다. 유기죄의 주체와 관련된 판례가 많지 않지만 판례의 입장이 유기죄의 주체에 관한 논의구조를 구체적 사안에서 법률상 보호의무와 계약상 보호의무의 범위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대법원 판결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안에서 이미 하급심은 ‘법률상의 보호의무’ 의 논거로서 주점의 업주에게 유기죄의 주체를 인정한 경우가 있다. 이 판결에서 “피고인은 술집을 경영하는 자로서 자신의 업소에서 술을 마신 손님이 밤늦은 시간에 술에 만취하여 의식이 분명치 않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정도의 상태가 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님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조치하거나 아니면 손님이 술이 깨어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 술집에 있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할 것인데, 피해자는 64세의 고령으로서 위 술집에 밤 12시경에 들어와(그때 이미 상당량의 술을 마신 상태였다) 다음날 새벽 3시경까지 위 피고인으로부터 매상을 많이 올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피해자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위 술집 종업원의 계속된 권유로 인사불성이 될 정도의 주취상태에 이르렀고, 당시는 기온이 영하에 가까운 추운 겨울날 새벽이었고 밖에는 진눈깨비까지 내리는 등 기상조건이 극히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 된 피해자를 그대로 바깥에 방기할 경우 피해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어떠한 위험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새벽 4시경 피해자를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길거리에 그냥 내려놓고 방치한 이상, 이는 형법 제271조 제1항 소정의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여지고...”라고 판시하여 법률상 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5. 검토
다수설은 유기죄의 보호주체는 형법 제271조 1항의 법문에 엄격하게 한정해서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 있는 자’로 제한하여야 하며, 형법 제18조의 보증인 의무나 민법 제734조의 사무관리는 유기죄의 보호의무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한다. 그 논거의 핵심은 죄형법정주의원칙에 두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첫째, 단순한 규정이 아닌 보호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률과 계약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민법상의 사무관리, 관습, 조리가 민법의 규정에 있다는 것으로 보호의무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둘째, 보호의무의 근거를 법률ㆍ계약뿐만 아니라 사무관리ㆍ관습ㆍ조리 등으로 확대하여 부작위범의 보증인지위의 그것과 같이 해석하는 것은 보호의무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보호할 의무 있는 자 또는 보호책임자라고만 규정하고 있는 독일 형법 제221조나 일본 형법 제218조의 해석에 있어서나 가능한 것이지 우리 형법 규정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형법 제18조의 작위의무는 부작위범에 대한 것인데 제18조의 작위의무도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까지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이를 유기죄의 보호의무로 확대적용하는 것은 논리적 고리가 약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한다.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한 해석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유기죄의 주체를 보호의무 있는 자로 한정할 뿐만 아니라 보호의무의 발생근거를 제한하는 것은 우리 형법이 공동생활의 연대적 관계를 보호하는데 너무 소홀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점이다. 참고로 독일 형법은 제221조에 유기죄를 규정하면서 보호의무가 없는 자의 유기행위도 처벌하고 있고, 제323조c에서는 ‘사고, 공공위험 또는 긴급상황 발생 시, 필요하고 제반사정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구조행위, 특히 자신에 대한 현저한 위험 및 기타 중요한 의무의 위반없이도 가능한 구조행위를 행하지 아니한 자는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는 구조불이행죄의 규정을 두고 있다(사람들은 이 규정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유기죄의 보호의무의 근거는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로 한정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법률상 보호의무나 계약상 보호의무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유기죄의 보호의무의 근거를 예외없이 오직 법률상 또는 계약상의 의무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으며, 구체적 사안에서 법률상 또는 계약상의 보호의무에 준하는 의무로 문언의 가능한 범위 안에서 확대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래의 통설이 사무관리로 취급해 온 사안(예컨대 병자를 의무없이 인수한 자의 보호의무)은 인신에 대한 배려도 사무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민법 제734조의 사무관리규정에 의거한 보호책임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여 법률상 보호와 유사한 의무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현재의 학설과 판례가 유기죄의 주체를 형법 제271조 1항의 법률상 보호의무와 계약상 보호의무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는 일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향후 유기죄의 주체범위에 관한 해석론은 법률상의 보호의무나 계약상의 보호의무의 범위에 대한 실질적 기준 또는 목적론적 해석을 고려할 것인가에 논의의 중심이 옮겨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