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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일본

영화로 읽는 일본

(일본영화 길라잡이)

김정례, 김희경, 김영은 (지은이)
전남대학교출판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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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일본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영화로 읽는 일본 (일본영화 길라잡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인문학 일반
· ISBN : 9788968492129
· 쪽수 : 190쪽
· 출판일 : 2015-05-28

책 소개

일본영화 110년 남짓의 역사에는 일본 근현대사의 명암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책은 일본영화를 분석하기에 앞서 그것의 전체상을 펼쳐 보고, 일본영화를 보기 위한, 나아가서 영화를 통해 일본 읽기를 시도하기 위한 길라잡이다.

목차

제1부 일본영화의 흐름
제1장 일본영화의 탄생 (1898~) 014
제2장 무성영화의 시대 (1918~) 024
제3장 토키영화의 도래 (1930~) 033
제4장 전시하의 일본영화 (1939~) 041
제5장 미군 점령기의 일본영화 (1945~) 048
제6장 일본영화의 황금기 (1950~) 054
제7장 영화산업의 사양화 (1960~) 066
제8장 침체기의 일본영화 (1970~) 076
제9장 저패니메이션의 태동 (1980~) 082
제10장 일본영화의 르네상스, 그리고 현재 (1990~) 089

제2부 주요감독 12인의 영화세계
미조구치 겐지 / 여성에 대한 온정적 시선 098
오즈 야스지로 / 가족의 붕괴, 혹은 안식처의 상실 102
구로사와 아키라 / 세계감독들이 사랑한 일본영화의 자존심 106
이마무라 쇼헤이 / 생명의 근원으로의 회귀, 그리고 여성 113
오시마 나기사 / 영화가 곧 정치다, 일본영화의 이단아 117
야마다 요지 / 서민을 향한 따뜻한 시선 121
기타노 다케시 / 폭력, 그 모호한 경계를 넘어서 125
스오 마사유키 / 일본적인 것, 그것은 곧 보편적인 세계 128
최양일 / 변방이 곧 중심이다. 마이너리티의 힘 132
미야자키 하야오 / 에코이즘과 노스탤지어 136
이와이 슌지 / 디지털시대의 감수성, 오겡키데스카! 141
가와세 나오미 / 칸이 사랑한 일본 여성감독 145

부록
주목할 만한 감독과 대표작 150
국제영화제 수상작 160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감독상 수상작 164
〈키네마준포キネマ旬報〉베스트10 작품 166
영화 용어 해설 182

참고문헌 및 사이트 186

저자소개

김정례 (옮긴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도호쿠(東北)대학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와 국문학연구자료관, 교토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다. 일본고전시가와 전통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저역서로 ≪바쇼의 하이쿠 기행≫(총 3권), ≪일본고전시가선≫, ≪일본문학을 읽는 시간≫(공저), ≪언어 속의 한일관계(言語の中の日韓関係)≫(공저), ≪사상공간으로서의 한일관계(思想空間としての日韓関係)≫(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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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강사. 문학박사. 주요 논문 및 저역서로 《영화로 읽는 일본》(공저) 《수신하는 제국:대정기 심상소학수신서연구》(공저) 〈미조구치 겐지 영화의 여성상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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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강사.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고베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논문 및 저역서로는 <오에 겐자부로의 점령의 기억>, <애매한 존재로서의 재일>, <전후 일본에서의 한국전쟁> ≪BOON4-서평: 에쿠니 가오리의 하나님의 보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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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1부 일본영화의 흐름

제1장 일본영화의 탄생

일본영화의 시작과 일본의 근대 1898-1917
19세기 후반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을 통해 서구적인 근대화를 추진하며 천황주의에 기초한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해 근대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 시기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을 국가적 시책으로 삼아 근대국가의 길로 나아갔다. 더욱이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적인 것이 활발히 제창되고 국민국가의 확립을 위한 다양한 문화장치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일본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다양한 서구문물과 함께 영화를 받아들였는데,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가 일본에 공개된 것은 1896년이었으며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가 공개된 것은 1897년이었다. 또한 1898년 일본인이 최초로 단편영화를 촬영, 제작하였는데,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일본적인 전통예술 요소가 그대로 담겨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일본 전통문화(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가부키와 분라쿠 같은 전통연극과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초창기 일본영화는 최첨단 서양문화의 상징이었으나 청일(1894), 러일전쟁(1904)을 거치면서 사회를 반영하는 미디어로서 내셔널리즘 전파에 일조하며 국민국가에 봉사하는 문화장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른바 일본은 천황제와 국가정책을 국민에게 침투시키기 위해서 ‘영화’라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근대 초기의 일본영화는 동시대의 사회상과 정치 및 사상을 반영하면서 국가의 선전도구로서의 미디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영화의 시작
영화는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에서 촬영기, 영사기의 발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영화와 관련해 가장 먼저 기록에 올라있는 사람은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인데, 그는 1891년에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발명하였다. 키네토스코프는 확대경 뒤로 단조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필름이 든 상자 속의 영상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는 기계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키네토스코프가 상영된 것은 1896년이며, 1895년에 뤼미에르Lumiere 형제가 발명한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 graph 장치가 일본에서 공개된 것은 1897년이었다. 이처럼 일본영화는 서구에서의 영화의 시작과 그 출발점이 거의 같았다.
시네마토그라프는 현재의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 뒤쪽에서 앞쪽 스크린을 향해 영상을 투사하는 장치이다. 이 장치를 수입한 이나바타 가쓰타로?畑勝太?는 파리의 카메라맨을 대동하여 교토에서 가부키 배우의 연기를 촬영하였다. 이후 도쿄에서도 키네토스코프를 개량한 비타스코프Vitascope가 공개되는 등 반년 정도 사이에 여러 경로로 영화가 수입되어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활동사진’이라고 불리며 점점 인기를 모았다. 또한 ??자동사진술自動??術??(1897)이라는 영화입문서가 출간되었다.
1898년 아사노 시로?野四?는 ≪둔갑한 지장보살化け地?≫과 ≪죽은 자의 소생死人の蘇生≫이라는 단편영화를 촬영 제작하였는데, 이는 일본인이 최초로 촬영한 영화이기도 하였다. 당시 영화 수입업자들은 수입한 카메라로 인기 게이샤芸者들의 안무나 가부키 배우의 공연모습을 찍으며 극영화 제작의 토대를 구축해갔다. 아사노 시로 역시 1899년에 도쿄의 신바시新橋 요정에서 게이샤의 춤을 촬영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촬영된 최초의 흥행용 영화였다. 게이샤를 영상에 담은 영화 촬영이 도쿄의 화류계에 회자되자 시내 여러 곳의 유곽에서 촬영 신청이 빗발쳤고, 인기 게이샤들이 속출하였다. 당시 게이샤들의 브로마이드 그림엽서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게이샤의 영상은 국제적인 수요도 상당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영화는 1899년에 촬영된 ≪단풍놀이紅葉狩≫인데, 이 작품은 1903년에 오사카 나카좌中座에서 첫 개봉되었다. ≪단풍놀이≫는 당시 도쿄 가부키좌歌舞伎座에서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9대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十?와 5대 오노에 기쿠고로尾上菊五?의 가부키 무대를 기념용으로 찍은 영화로 개봉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영화와 전통연극
1896년에 시작된 일본영화는 20세기 초반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오락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본사회에서 영화는 19세기 영화가 수입되었던 초창기를 제외하고 상당히 늦은 시기까지 어린이 혹은 도시 노동자들이 주된 관객층이었고, 당시 지식층들은 일본영화를 경멸하고 비하하였다. 특히 가부키 배우들은 당시의 일본영화를 진흙탕 위의 연극이라는 의미의 도로시바이泥芝居(‘진흙+연극’ 이라는 뜻으로 무대가 아니라 맨땅 위에서 하는 연극의 의미)라고 부르며 영화와의 합작을 외면하였다. 일본 전통 가면극인 노能 역시 일본영화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영화와의 교섭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 전통예능으로부터 외면받던 일본영화가 대중오락으로서 기반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전통연극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부키歌舞伎는 일본영화가 대중오락으로서 확립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예술 장르였다. 초창기 시대극에서는 가부키의 모방을 많이 하였는데, 특히 온나가타女形(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배우)의 연기를 비롯해서 가부키 배우들의 분장이나 퍼포먼스, 발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극의 스토리에서도 가부키의 소재를 많이 활용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언행이나 풍속이 근대화를 추구하고 서구식으로 변화되자, 가부키만으로는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서양연극인 신극新劇이 유입되면서 현대 일본인의 생활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지만, 일반대중에게 친근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일본영화는 연극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신극의 도입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한편, 유일하게 가장 먼저 일본영화와 관련을 맺은 장르는 가정비극 또는 화류계의 비련을 다룬 신파극新派劇이었다. 1880년대에 가부키 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신파는 당시의 대중적 세속 멜로드라마로 발전하며 일본영화의 중심요소가 되었다. 특히 당대 일세를 풍미하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와 이즈미 교카泉鏡花의 원작소설들이 연극화되어 성공을 거둠으로써 대표적 대중 신파연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들 신파극의 일반적 주제는 신분이 다른 남녀의 사랑, 남자의 입신출세와 여자의 희생 등 주로 비극적 연애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일본영화는 신파에 표현된 일본 고유의 세계관과 도덕의식을 바탕에 두고 서구 멜로드라마와 접목하면서 일본 특유의 독자적 세계를 형성하였다.

닛카쓰日活의 탄생
1903년 도쿄와 교토에 소규모 촬영소가 설립되었는데, 이로써 일본영화의 메이저 시스템의 긴 역사가 시작된다. 같은 해 일본에서 최초로 촬영소를 설립한 요시자와吉澤 상점을 포함하여 M?파테 상회, 요코타?田 상회, 후쿠호도福寶堂 등 4개의 소규모 촬영소가 합병을 하여, 1912년에 일본활동사진주식회사日本活動寫眞株式會社, 약칭 ‘닛카쓰日活’라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영화사가 탄생하였다. 일본에서 닛카쓰가 탄생한 1912년에 미국에서는 워너 브러더스사와 유니버셜사가 발족했고, 이듬해에는 폭스사가, 그 이듬해에는 파라마운트사가 발족하는 등 일본 영화사는 서구의 영화사와 그 시기를 같이 한다.
요코타 상회가 제작한 영화를 자주 상영하던 교토의 소극장 센본좌千本座는 주로 가부키를 공연하는 극장이었는데, 이 극장의 경영자는 마키노 쇼조牧野省三 감독이었다. 그가 감독한 닌자忍者영화는 일본 최초의 영화사 닛카쓰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으며, 이로써 일본영화는 산업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마키노 쇼조는 교토를 무대로 한 영화 ≪혼노지 전투本能寺合?≫(1908)를 계기로 점차 가부키를 다룬 시대극 영화를 제작하여, 최초의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그가 출연시킨 가부키 배우들 중에 오노에 마쓰노스케尾上松之助는 당대 유명한 인기스타가 되었다. 1910년 마키노 감독은 80분짜리 장편영화 ≪주신구라忠臣?≫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은 주신구라를 다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초창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평가되고 있다.
한편 닛카쓰는 발족 당시 교토 촬영소에서 한 달에 4편의 시대극을 제작하였고, 도쿄의 무코지마向島 촬영소에서도 동일하게 현대극을 4편 제작하였다. 현대극 이른바 신파新派영화는 신파 비극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슬프고 감상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닛카쓰는 도쿄와 교토에 각각 촬영소를 두고, 도쿄에서는 신파를, 교토에서는 구극(시대극)을 제작하여 전국의 극장망을 통해 상영하였다. 이후 신파극 계통의 현대극과 가부키 계통의 시대극으로 양분되어 현대극에서는 세속적 멜로드라마를, 시대극에서는 사무라이의 세계를 주로 다루었다.

변사의 등장
일본영화의 큰 특징의 하나로 활동변사活動辯士, 이른바 변사의 존재를 들 수 있다. 변사는 무성영화의 화면 속 배우의 대사를 대신하고 영화 속 배경을 해설했는데, 일본영화사에서 변사는 일본이 영화를 수입한 초창기부터 등장하였다. 변사의 근원은 일본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변사의 존재는 서양에서 들어온 영화를 일본의 연극적 흐름 속에서 수용한 데 있다. 일본에 최초로 시네마토그라프가 수입되었을 때 이미 거기에는 해설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해설자를 이후 활동변사라 부르게 되었고, 활동변사는 무성영화 시대에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렇다면 왜 일본에는 영화해설자였던 변사가 존재하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변사가 일본 대중예능의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더욱이 그 근원은 에도시대부터 내려오는 구연예술에서 찾고 있다. 인형극인 분라쿠文?와 같은 일본의 전통예능에는 무대 옆에서 극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해설자, 이른바 기타유義太夫가 함께 하는데, 영화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관객에게 무성영화의 내용을 전달하였다. 특히 전통 가면극 노와 마찬가지로 분라쿠도 무대에서 펼쳐지는 시각적 요소인 인형의 연기와 대사에 해당하는 노래가 따로따로 전개되는데, 관객은 이들 각 요소를 종합적으로 감상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 전통예능의 흐름, 이른바 연기와 음성을 각기 다른 사람이 담당하는 무대를 배경으로 존재해 온 변사를 당시 관객들은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다.
무성영화의 꽃이라고 불리던 변사는 영화 상영에 앞서 영화를 설명하고 상영 중에는 대사를 말하거나 미사여구에 호소하여 관객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대도시의 극장에서 관객들은 변사들의 실력 여하에 따라 극장으로 발을 옮겼고, 변사는 퍼포먼스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화술을 전개해갔다. 그만큼 변사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변사의 영화 해설에 따라 관객의 영화 체험이 좌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영향력을 가졌던 변사도 1910년 순영화극운동이 일어나면서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연극을 재연한 듯한 영화상영, 카메라 앵글의 단조로움 등을 이유로 변사의 황금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고, 토키영화로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토키영화가 발전하자 시대에 뒤떨어지는 존재로 설자리를 잃게 된 변사는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변사의 흔적은 지금도 일본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내레이터의 독백 부분, 혹은 기법적인 측면에서의 롱숏 처리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의 시작 부분에서 남자주인공 도라지로寅次?가 길게 읊는 변사 투의 독백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변사는 무성영화에서 토키영화로의 발달을 지연시킨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일본영화가 독자적인 화법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는 일본의 전통예능과 일본영화를 연결하는 고리였으며, 전통과 근대화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수행했던 중재자이기도 하였다. 한편 변사제도는 무성영화시대에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초기영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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