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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쿠르드 민족분쟁

중동과 쿠르드 민족분쟁

박주성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7-08-30
  |  
2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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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쿠르드 민족분쟁

책 정보

· 제목 : 중동과 쿠르드 민족분쟁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이슬람/중동/이스라엘 > 근현대사
· ISBN : 9788968494253
· 쪽수 : 576쪽

책 소개

쿠르드의 대표적인 분리독립운동단체인 KDP와 PKK를 조명해 봄으로써 쿠르드족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미래의 가능성을 조망하는 책이다. 쿠르드 민족국가건설이 당사자인 중동국가들 간의 이해관계와 맥락 속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목차

저자 서문 02
제1장 들어가는 글 13
제2장 이론적 배경 60
제3장 정치이념 106
제4장 조직ㆍ동원 176
제5장 국제적 연대 304
제6장 나가는 글 356
제7장 이란 쿠르드의 민족분쟁 367
제8장 쿠르드 역사 411
참고문헌 548
부록 565
출판후기 571

저자소개

박주성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에서 쿠르드 민족분쟁으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은 쿠르드 관련 민족분쟁 논문과 디아스포라에 관한 논문들이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인식론과 인간, 국제정치의 구성주의와 반구성주의, 국제평화, 중동정치, 동양정치사상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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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자이데(Zayide)라는 어린 쿠르드 소녀 게릴라가 터키군과 전투 중 사망하였다. 터키군은 이 어린 게릴라를 마을 밖 외진 곳에 매장하기 위해 불도저로 땅을 팠으나 땅이 파지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에 걸쳐 불도저로 땅을 파보려고 시도하였으나 땅은 결코 파지지 않았다고 한다. 터키 군인들은 알라가 이 소녀를 보호한다고 생각하였고 결국 소녀를 가족에게 인도하였다(Marcus 2007, 4).
이것은 어린 소녀 게릴라가 비록 전쟁터에서 운명을 달리했을지라도 싸늘한 몸이나마 낯선 땅이 아닌 사랑하는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어린 소녀가 이데올로기나 신을 알았을까? 단지 이 소녀는 보통의 가정에서 같은 민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타 민족으로부터 차별받지 않고 사는 나라를 꿈꾸며 가슴에 칼리쉬니코프 총을 지닌 채 싸늘하게 식어가지 않았을까?
통합의 측면에서 과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는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일정한 발전패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보면 그것은 씨족공동체 → 부족공동체 → 국가 → 지역국가공동체(예를 들면 EU) → 세계국가 → 우주국가(Universal State, 헤겔이 일부언급)의 7단계로 인류가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세계국가(World State) 출현의 가능성은 알렉산더 웬트 등에 의해서 언급되었다. 알렉산더 웬트는 세계국가가 필연적인 이유로 ‘현대의 전쟁 파괴력의 증대와 군사적 기술의 전파로 인해 전쟁비용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워졌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조차도 타국에 대한 안정을 보장하는 글로벌 차원의 헌법적 규제를 거부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웬트는 세계국가의 탄생의 주요한 요인을 글로벌화 된 과도한 군비경쟁, 상호의존성과 견제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국가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단계로서 글로벌 경제통합의 현장을 예를 들어 살펴보면 저자가 터키 쿠르디스탄을 방문하였을 당시에 만났던 쿠르드인들과 BDP(HDP) 즉 PKK 관련 정당 당원들도 구형 삼성, LG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탄생지이자 압둘라 외잘란의 고향인 샨르 우르파 중심가에 소재한 대형 전자상가에도 삼성, LG LED TV들이 벽과 바닥에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실로 문명의 동시적인 공유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한국 가정에서 쓰고 있는 물건이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가정에서도 동시에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과학과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하여 거리와 공간이 축소(the death of distance and space)되고 이 바탕위에 도래한 경제적 세계화 시대에 국민국가는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보조자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마저도 일고 있다. 정치와 시장을 단일화 하려는 신기능주의적인 접근의 결실로 EU와 같은 경제공동체가 탄생하였으며 EU는 국가 간 연방주의적 정치통합의 실현을 위한 시금석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학자는 세계국가의 출현마저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는 반대로 전 지구촌 곳곳에서는 종교, 인종, 민족정체성 등에 기반 한 단층선 분쟁이나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이스라엘과 이에 대항하는 하마스는 지금도 끊임없이 민족에 기반한 무력분쟁을 지속하고 있으며,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체첸 반군들도 게릴라전을 펼치며 러시아와 기약없는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족들도 분리독립을 외치며 이슬람 무장단체와 비슷한 무장투쟁을 벌이며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동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분쟁은 지금도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분쟁에 강대국과 지역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개입하고 있다. 분리독립운동단체는 강대국과 지역국가, 분쟁대상국가 속에 3중 포위된 채 이들과의 투쟁과정 속에서 무수한 인명이 손상되고 또한 단체내부는 강, 온파로 나뉘어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투쟁 역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가운데 중동에 위치한 3,50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진 쿠르드는 미, 소의 패권적 양극체제가 무너진 지 4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분리독립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EU는 국가의 단계를 넘어 새로운 지역경제공동체로 발 돋음하고 있는 시대에 쿠르드는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독립국가건설을 위해 여전히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이렇듯 한쪽에서는 이상주의자들이 국가의 수준을 넘어선 지역공동체, 나아가 세계국가를 꿈꾸고 있는 반면 민족분쟁의 현실에 갇힌 쿠르드는 아직도 독립국가건설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터키 방문 시 접한 행불자단체 사무실의 벽면을 가득채운 행불자들 사진, 쿠르드 신문사의 벽면을 가득채운 사망기자들 사진, BDP(HDP) 정당 사무실의 벽면을 채운 사망자들 사진을 보면서 저자는 학문적 대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 현장을 목도하고 숨이 막혀 옴을 느꼈다. 게릴라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 분리독립운동을 하는 쿠르드인, 민족차별을 토로하는 대학생 등 다양한 쿠르드인들을 만나면서 쿠르드라는 주제가 저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느낀 채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하였다.
저자는 자식을 차가운 감방에 수십 년을 보낸 채 기도하는 할머니, 자식들을 게릴라로 보내고 걱정하거나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평생을 품고 사시는 그 할머니들의 손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꼭 잡아드리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기는 단순히 학문적 대상 그 이상의 문제를 함축한, 인류의 유사 이전과 유사 이후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과 구성으로부터 출발한 가치와 현실, 정체성의 대립, 힘과 이익 그리고 생존, 민족갈등과 종교갈등, 지역국가와 강대국간 갈등 등 인류의 난제가 함축되어있어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아포리아(Aporia)적 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류의 해결책 제시 요구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국제정치학계의 자기반성이 요구되는 현장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최근에 등장한 IS는 중동의 문제가 곧 인류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PKK와 외잘란이 왜 맑스-레닌주의와 민주적연방제라는 이상주의에 집착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비록 이 책이 민족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쿠르드의 대표적인 분리독립운동단체인 KDP와 PKK를 조명해 봄으로써 쿠르드족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미래의 가능성을 조망해 보는데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동시에 저자로 하여금 마치 고르디우스 노트(Gordian Knot)처럼 얽힌 인류의 현재위기와 난마처럼 얽힌 국제정치의 앞날을 위해 무언가 조그만 행동이라도 실천하도록 촉구하는 절규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인류의 고르디우스 노트를 반구성주의와 글로벌연방제라는 검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과 지면의 제약이 많아 기존 약술만 언급한 채 차후로 미루는 아쉬움이 있었다. 단 반구성주의는 “인간이 부딪치고 있는 모든 유,무의 현상적인 실체는 내 의식이 반영된 것 일뿐” 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중동과 쿠르드 민족분쟁”이라고 한 이유는 쿠르드 민족국가건설이 크게는 강대국과 직결된 문제지만 가깝게는 먼저 쿠르드 분리독립전쟁의 당사자인 중동국가들 간의 이해관계와 맥락 속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치가 통합의 측면에서 중년의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중동의 정치현장은 아직도 뜨거운 청년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하여 핵, 종교, 자유민주주의와 관련된 중동정치의 순치와 발전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국제정치학계에서 이러한 특성을 가진 중동정치의 연구가 더욱 활발해짐으로써 좋은 연구 성과들이 나타나 중동정치에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하고 나아가 인류의 평화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2017년 6월 1일
박주성 씀


1. 들어가는 글

제1절 연구의 필요성 및 문제제기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미국은 양극체제의 용도폐기를 결정하고 1981년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자본주의 장점을 이용한 구소련과의 무한군비경쟁 전략을 채택하였다. 미국은 이 안보딜렘마 전략을 통하여 미소 양극의 이념적 패권체제와 이를 둘러싼 전 세계의 구조화 된 기존 정치질서를 재편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85년 고르바초프의 집권과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전도를 기점으로 마치 도미노처럼 동구권 공산체제들이 차례로 무너진 결과 그동안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냉전구조가 붕괴되었다. 그 동안 구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던 시리아를 포함한 중동의 사회주의 지역국가들 역시 차례로 정권의 약화가 도미노처럼 찾아왔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양극구조가 억누르고 있던 인종분쟁, 민족분쟁은 중동을 비롯한 동유럽과 주변지역으로 확산, 분출되었으며 이러한 분쟁은 기존의 분쟁들과 더불어 지구촌을 더욱 격렬한 갈등과 영토분쟁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대해 거(Ted R. Gurr)는 역사적으로 민족분쟁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냉전종식 이래 제3세계에서 정치민족그룹에 의해 발생한 분쟁(Ethnopolitical Conflict)은 더욱 빈번하고 격렬한 양상을 보여 왔다고 한다. 스톡홀롬전략문제연구소(SIPRI) 연간보고서에 의하면 1989년부터 2000년 사이에 일어난 폭력분쟁은 총 111건으로 이중 7건만이 국가 간의 전쟁이었고 나머지는 다민족국가(총 68개국) 내에서 일어난 내전이었다. 이들 내전은 주로 민족과 종교대립, 민족주의의 부활 또는 국가통제에 대한 반발과 투쟁에 기인하였다. 탈냉전시대 분쟁에서는 사상자 수의 90% 이상이 민간인들이며 정치민족분쟁의 원인과 특징 및 역학을 고찰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이신화역 2003, 8-9).
세계의 민족분쟁과 전쟁 빈도수는 1945년 대비 1990년대 초반에 3배 가까이 증가하였다고 주장하였다(이신화역 2003, 61). 분쟁의 원인에 대한 해석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 호로위츠(Donald L. Horowitz)는 이러한 분쟁증가의 주요한 원인으로 ‘다민족사회의 그룹들은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상대적 가치와 지위를 인식하기 위해, 집단적 경험과 신화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타 그룹들과 비교해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우위에 있는 그룹들은 스스로를 타 그룹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한 그룹이 상대적 우월감을 가질 경우 이들은 인종적 지배를 지속하고 타 그룹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한다. 한 사회 내에서 이러한 비교우위에 바탕 한 우월감을 지닌 그룹이 있다는 사실은 볼칸(Volkan)이 말한 ‘선택된 정신적 상처(chosen traumas)’와 불이익을 받는 그룹들의 불만감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신화역 2003, 103-104). 그리하여 이러한 불만이 민족분쟁의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화가 진행되는 것과 비례해서 지구촌의 인종과 민족들의 정체성이 곧 세계 시민주의로 변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종과 민족분쟁, 종교분쟁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즉 냉전구조가 해체되고 세계화가 진행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많은 타자와 자국을 둘러싸고 있는 타국들을 더욱 쉽게 인식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내, 외적 정체성과 불평등이 오히려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 이러한 정체성 대비현상으로 인하여 그러한 갈등을 억누르고 있던 정체성들 간의 충돌이 일어나 그 동안 냉전구조가 억누르고 있던 민족, 인종, 문화, 종교정체성에 기반 한 민족분쟁과 종교분쟁이 빈번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족, 인종, 문화, 언어, 종교정체성에 기반 한 민족분쟁과 종교분쟁은 영토적 국경을 무색케 하는 인터넷 등을 통한 네트워크의 발달에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초국가적인 민족갈등뿐만 아니라 독일 디아스포라 내 쿠르드계와 터키계의 갈등, IS나 PKK의 효과적인 초국가 네트워크와 동원을 잘 설명해준다. 즉 초국가 네트워크의 영향으로 민족문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쿠르드를 포함한 많은 민족들이 세계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지배민족들과는 다른 민족정체성, 문화정체성, 이념정체성, 역사정체성, 종교정체성을 유지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기반 한 권리를 찾기 위하여 지금도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소련의 패권구조 급격히 붕괴되면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빈자리를 이슬람 등 종교와 민족주의가 차지하면서 이러한 단층선에 의한 분쟁이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공산주의 블록이 와해되면서 구소련 지역에서는 여러 신생국들이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되었으며 우크라이나 등 일부는 민족분쟁이 현재진행중인 지역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구소련의 몰락과 이념분쟁에 사라진 후 지역정치는 문명전쟁 그중에서도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 등 종교 갈등, 민족성 정치로 변화될 것이라고 주장한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주장은 중동지역 뿐만 아니라 동서냉전 구조가 소멸한 작금의 쿠르드 민족운동에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유사이래 인류는 공존과 전쟁이 없는 평화적 세계를 꿈꾸어 왔지만 정치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은 사상, 민족, 그리고 종교라는 명분을 이용하여 인류를 끊임없는 전쟁 속으로 내모는 경우가 많았다. 바브라 월터(Barbra F. Walter)는 이러한 사상, 민족, 종교를 빙자한 지도자들의 사악함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도자와는 별개로 종족 또는 민족 기층이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에 기반하여 정치적 권리나 분리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때 일어나는 종족 간 그리고 민족 간의 전쟁은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다. 이러한 다양한 민족분쟁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진행형인 상태에 있다. 강대국과 지역 국가들은 이들 민족분쟁에 적극 개입하고 분리독립운동세력은 이들에 의해 분할되어 세력 간 내부투쟁과 더불어 분쟁대상국가, 지배민족들과의 외부투쟁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이스라엘과 이에 대항하는 하마스는 지금도 끊임없는 민족에 기반 한 무력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러시아연방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체첸반군들도 게릴라전을 펼치며 러시아와 끊임없는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신장 위그루 자치구의 위그루족은 분리독립을 외치며 IS 및 이슬람 무장단체와 연계하여 무장투쟁을 벌이면서 중국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전히 진행 중인 이러한 민족분쟁에 강대국과 지역국가들이 개입하고 강대국과 해당 지역국가라는 역학관계 하부에 위치한 분리독립운동단체는 강, 온파로 나뉘어 단체내부투쟁과 더불어 단체 간, 타민족과 외부투쟁과정에서 무수한 인명이 살상되는 잔혹함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소의 패권적 양극체제가 무너진지 4반세기가 지나 EU는 국가의 단계를 거쳐 새로운 지역공동체로 발돋움하고 있는 시대에 중동에 위치한 3,500 정도의 인구를 가진 쿠르드는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분리독립과 자치를 위한 갈등과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 없는 민족(stateless nation)인 쿠르드는 다국가(transnational) 민족을 대표한다. 쿠르드인들의 민족운동 또는 분리독립운동을 살펴보면, 그 과정은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에 기반 한 권리를 찾기 위한 수많은 정치활동과 투옥, 무장투쟁과 전쟁, 상대방의 보복과 난민, 디아스포라의 반복적 순환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대학 강의실을 벗어나 시리아의 코바니(Kobani, Ayn al-Arab)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IS와 싸우고 있는 쿠르드 여대생 전사들과 젊은 게릴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쿠르드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고대부터 광활한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역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문명을 주도적으로 창출하였다. 오늘날의 밀, 보리, 호밀, 오트밀, 콩류, 포도 등의 조상들이 9000 BCE 직전에 오늘날 쿠르드인들의 조상에 의해서 처음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쿠르디스탄(Kurdistan)은 신석기 농업혁명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차이외뉘(Cayonu) 지역은 야금술의 존재가 증명된 세계 최초의 2곳 중 한곳이다. 차이외뉘에서는 5000 BCE 전반기 500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銅)기구가 발견되었고 청동기구들은 이곳에서 4000 BCE 초기부터 나타났는데 이는 유럽보다 2,000년이 앞선 것이다. 이는 강력한 쿠르드 정복왕조가 존재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이러한 바탕위에 시작된 3000 BCE 후반 쿠르드의 쿠틸(Qutils) 왕조(2250-2120 BCE)가 초기 왕조들과 많은 도시국가(City-States)들을 정복하고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대략 4000 BCE부터 아리안족들이 주변국들로 이동하기 시작하였으며 2000 BCE 경부터 점차 아리안족들이 중아아시아에서 이란과 쿠르디스탄으로 이동해 와서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아리안족들은 쿠르디스탄을 지배하고 쿠르드는 이들에게 동화되었다. 이들 아리안족은 이미 그 이전부터 강력한 문명을 이루었고 세련된 기마술과 검, 전차 그리고 이를 이용한 전쟁의 기술이 많이 발전하였다. 이어 새로이 설립한 그들의 상징적 국가인 메데 제국(Median Empire, ca. 727-549)이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에 멸망한 이후에도 많은 쿠르드 왕조들(Kingdoms)과 공국들(Principalities)이 흥망을 거듭하며 쿠르디스탄의 지배적 세력으로 군림하였다. 이후 마지막 이민족 왕조가 아나톨리아 지역에 창건되었는데 그것은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이었으며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쿠르드 공국들은 봉건적인 형태의 자치 수준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참전한 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영국은 ‘후세인-맥마흔 서한(Huseyin-McMahon Correspondence)’을 통해 연합국과 함께 참전한 아랍의 지도자 후세인에게 종전(終戰) 후 통일된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하였다. 동시에 연합군과 대오스만 제국 전쟁에 참여한 쿠르드인들에게도 자치권을 허용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홍순남 1995, 137). 승리한 동맹국들은 쿠르드 대표와 미국을 옵서버로 참석시킨 가운데 1920년 8월 프랑스 세브르에서 영국, 프랑스, 이태리, 터키를 포함한 약 14개국이 모여 433조에 달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중 62조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경계를, 63조는 터키가 62조를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64조는 국제연맹 이사회를 통한 해결방식으로 국제연맹의 쿠르드 독립권고안을 터키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다(Gunter 2011, 269; Mirzoyev 2003, 29). 1920년 9월 체결된 이 ‘세브르 조약(The Treaty of Sevres)’은 오스만 제국을 해체시키고 아랍, 아르메니아, 쿠르드 독립을 분명히 하였으며 특히 섹션(Section) Ⅲ의 62, 63, 64조를 통하여 쿠르디스탄에서의 쿠르드 국가의 독립을 명백히 언급하였다(Izady 2009, 59).
당시 영국은 대오스만 제국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독립을 요구한 쿠르드의 주장을 처음에는 외면할 수 없어 모술지역을 국제연맹에 상정하여 합법적인 쿠르드 자치국가 건설을 일시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러나 쿠르드 민족국가 건설에 암운이 드리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모술(Mosul), 키르쿠크(Kirkuk) 등에서 발견된 대규모 유전이었다. 대규모 유전의 전략적인 가치는 막대하였으므로 영국은 쿠르드의 자치안을 폐기하고 1923년 7월 로잔조약(Treaty of Lausanne)을 통하여 쿠르디스탄을 시리아, 터키,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으로 분할하였다(Ahmed 2003, 25-26; Gunter 2011, 269; Izady 2009, 59-61).
영국은 특히 과거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였던 쿠르디스탄 중에서 유전지대가 밀집한 대부분의 지역을 이라크 국가에 귀속시켜 석유 수탈을 위한 간접통치를 획책하였다. 이를 위해 대오스만 제국 전쟁에서 아랍 동맹군이었으며 메카(Mecca) 통치자였던 후세인(Huseyin)의 아들인 아미르 파이잘(Amir Faisal bin Al Hussein Bin Ali El-Hashemi)을 1921년 8월 공식적으로 이라크 왕으로 옹립하고 하세미(Hashemite, 예언자 무하마드의 후예) 왕가를 출범시켰다(Mcdowall 2004, 139, 167-168). 영국의 지배가 아닌 아랍민족의 직접적 지배를 받게 된 쿠르드는 아랍민족의 지배에 대항하는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파이잘 1세는 영국의 지원 하에 전체 쿠르드가 참여를 거부한 이라크 국민투표를 통해 결국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포함한 이라크의 정식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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