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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평전

제갈량 평전

(공명 진면목 와룡 비천상)

김지수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02-27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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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평전

책 정보

· 제목 : 제갈량 평전 (공명 진면목 와룡 비천상)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중세사(위진남북조~당,송)
· ISBN : 9788968496165
· 쪽수 : 400쪽

책 소개

소설이 아닌 사료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제갈량의 걸출한 위대함과 인간미를 찾아보는 책이다. 당대 교유한 위인들 일화 및 후대 명사들 평론을 곁들여, 공명 선생의 참모습과 초야에 묻힌 와룡이 삼국정립 전란풍운에 분연히 날아오른 기상을 그려내고 있다.

목차

인연과 실마리 / 9
하나. 삶과 죽음 / 15
둘. 피붙이와 사귐交遊 / 145
셋. 남김과 이바지 / 221
넷. 법치 정신과 권력의 명암 / 249
다섯. 끼침과 깨우침 - 후대 역사평론과 일화 / 287
여섯. 불교 인연과 전생轉生 후신後身 / 369

감회와 끝맺음 / 393
주요 참고문헌 / 399

저자소개

김지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북 부안 곰소 출생. 전주고, 서울대법대(중국문학 부전공), 서울대학원 법학석사, 國立臺灣大學 法律學硏究所 3년 遊學, 서울대학원 법학박사, 한국학술진흥재단 박사후 연수생. 2001년부터 전남대 법대 및 법전원에 재직 중. [번역서] 「불가록不可錄」,「운명을 뛰어 넘는 길(了凡四訓)」, 「화두 놓고 염불하세(印光大師嘉言錄)」, 「절옥귀감折獄龜鑑」, 「의심 끊고 염불하세」,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遺敎經」, 「중국의 법조윤리 규범집」, 「묘림승구도기」 등이 있고, 저서로 「天道와 人法」,「생명 도덕 法文史哲學」,「지혜의 법과 생명법학」,「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四知」,「법 없이도 잘사는 법」, 「제갈량 평전」,「포청천과 청렴정직 문화」, 「공자가 들려주는 관계의 미학」, 「채식명상 20년」, 「선진 法思想史」,「傳統 中國法의 精神」, 「傳統法과 光州反正」, 「유불선 인생관-道 닦고 德 쌓자」, 「中國의 婚姻法과 繼承法」 등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 “천인대동전당(天人大同典堂)” 티스토리 블로그: “보적념불당(寶積念佛堂)” 유튜브: “明鏡止水 寶積 명경지수 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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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인연과 실마리

우리도 삼국시대를 겪었던 역사적 연상 작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아시아 고전 가운데 소설 삼국지(연의)만큼 우리한테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책도 드물 것이다. 한글 번역판이 나온 뒤로는 아마도 가장 널리 애독되고 각광받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중2때 처음 월탄 박종화 번역본 5권을 흥미진진하게 완독한 기억이 난다.
1970년대 교과서 외엔 책을 구경하기 힘든 부안 곰소 변산중학교에서, 2학년 때 담임 최일웅 선생님이 삼국지 5권을 선뜻 내놓으며 의욕적인 ‘학급문고’ 설치운영을 제안하셨다. 각자 집에 있는 책을 1권씩 가져오라고 권하고 유리 창문이 달린 조그만 서가함을 마련해서, 우리 반만 제법 그럴듯한 ‘학급문고’가 만들어졌다. 나는 선친께서 가지고 계신 ‘세기의 위인들’이란 읽지도 않은 책을 바치고, 영광스럽게 문고운영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대출반납 장부를 기록하는 번거로운 관리자였다.
다른 책은 읽은 기억이 안 나는데, 오직 삼국지만 2단 세로쓰기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5권을 다 읽고, 2회독 하다가 아마도 시험 등 바쁜 일정으로 중도에 그만둔 듯하다. 당시 나는 어머니가 행상을 다니셔서, 집에서 손수 불을 때서 밥을 지어먹고 다니던 형편이었다. 그 뒤로 다시는 읽은 적이 없고 하도 오래 된 일이라, 정말이지 읽었다는 사실밖에는 어떤 내용도 기억나는 게 전혀 없이 완전히 잊혔다.
3년 뒤 전주고 2학년 때 한문 박시중 선생님은 어찌나 해박하고 열정이 넘치셨던지, 한 단락씩만 인용 소개한 교과서는 너무나 유치하다는 듯, 여러 고전 명문을 온전히 가르쳐주셨다. 그중 전문을 통째로 암송한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제갈공명의 출사표, 소동파의 적벽부가 가장 인상 깊고 감명 깊게 남아있다. 후덕한 선생님은 귀거래사ㆍ적벽부ㆍ출사표 등 전문을 손수 철필(가리방)로 등사해 나눠주고 가르쳐주시면서, “우리 배울 적엔 이런 거 줄줄 다 외웠네. 여러분도 외우면 참 좋네.”라고 그냥 지나가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당시 순진한 나는 정말 외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8절지 앞뒤로 빼곡하게 적어 두 번 접어 손안에 쥐고, 등하교 길에 외우고 다녔다. 나중에 수행하며 ‘장심대법掌心大法’이란 말을 듣고, 그때 손아귀에 들고 다니며 외운 3대 명문이 내 한문-한학-학문-불교대장경 공부에 이르기까지 정말 ‘장심대법’이 되었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나중에 대학3년 때 중국문학을 부전공하면서, 백거이의 ‘장한가’를 기말고사로 다 외웠고, 한학연수를 받을 적엔 론어 전부와 맹자 일부를 역시 장심대법으로 암송했으나, 고교 때만큼 확실한 기억과 각인 효과는 없었다.)
귀거래사는 자연주의 목가풍 전원시 같아 내 천생기질에 맞아 좋았고, 적벽부는 뒤에 전문을 소개하듯이 적벽대전을 연상하며 호방한 기개와 웅장한 도량을 펼치는 광활한 대장부 우주관이 마음에 들었다. 반면, 제갈량 출사표出師表는 천하인류를 위한 대의실현과 순수하고 장렬한 우국충정이 눈물겨운 감동이었다. 그 무렵 고문 시간 두시언해에서 배운 두자미杜子美 촉상蜀相 마지막 시구처럼, 출사표를 읽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지 않는다면 ‘영웅’에 끼지도 못할 것 같았다.
대만대학에 3년 유학하고 평생 한문고전을 공부해온 인연으로, 이제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는 실력은 되었건만, 시간과 체력 등 제반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아직 읽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우리 사회에 청렴정신을 일깨워 진작시키고자 하는 발원에서, 지난해 위대한 역사 위인들의 전기 일화를 섭렵해 “포청천과 청렴정직 문화”란 책을 펴내는 시절인연으로, 제갈량 전기도 원전 사료로 정독하게 되었다. 수십년간 잠잠히 가라앉아 있던 감동의 물결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전통법의 역사철학 전공자로서 제갈량의 법사상을 한번쯤 다뤄 정리할 필요성과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정사正史 삼국지 촉서蜀書와 삼국지 주注를 통독하면서, 제갈량 관련 내용을 모두 발췌하고, 또 현전하는 제갈공명전집에서 법률 관련 주요내용을 선별해 “제갈량의 법치 정신”을 집필해 발표했다.
주지하듯이, 제갈량은 신출귀몰할 정도로 지혜가 출중해 촉蜀 승상으로서 전국 정치행정을 총괄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삼국이 각축하던 여러 전쟁을 직접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군사장군으로서 문무를 겸비한 실무(전)형 장상將相이었다. 허나 환갑을 앞두고 늘그막에 원전 사료를 읽다보니, 정말 그 이상으로 훨씬 흥미진진했다. 다만 기력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力不從心) 눈이 침침하고 체력이 달려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허나, 제갈량 본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간들의 심성과 행적 및 정치사회관계에 걸친 다채로운 기록들도, 역사적 교훈과 반면교사로서 너무나 훌륭한 감동거리였다.
하여, 공명 선생의 참모습을 찾아 밝히고, 초야에 묻혀 있던 와룡臥龍이 삼고초려에 감동해 격동의 풍운 속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모습을 그려보고자 마음먹었다. “공명진면목孔明眞面目 와룡비천상臥龍飛天相”이란 부제가 지향한 목표다. 허나 소박한 마음과 졸렬한 문필이 얼마나 잘 생생하게 표현해 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한테 익히 알려진 소설 삼국지(연의) 선입편견을 완전히 젖혀놓고, 현전하는 공식 역사기록 및 문집과 당대 역사가들의 기록 및 평론들을 되도록 원전 본의에 충실하게 직접 해독 정리해, 원전비평 관점에서 최대한 실증적 방법에 의지했다. 더러 원인분석과 결과평가에 사견을 적기는 했으나, 분명한 역사문헌기록에 다르거나 어긋나게 순전히 문학적 상상력으로 덧칠한 왜곡변질은 없음을 밝혀둔다. “제갈량 평전評傳”이란 본제목에 정말 명실상부하게 집필했다.
물론, 필자의 문장력과 체계구성력이 보잘것없어 더러 재밌게 술술 읽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안목과 식견이 얕고 무뎌 분석비평이 별로 신통치 않아 ‘평전’으로 실망할 수 있겠다. 나이가 들고 기력이 떨어지니, 두뇌도 더 노둔해지는 느낌이고, 생기발랄함과 총명예지는 갈수록 사라지니, 이는 인간 김지수金池洙 한계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제갈량 심경에 더욱 공감ㆍ이입된 느낌이다. 문체도 화려하고 유창함보다는, 진지한 충신忠信-진정성에 더 치중한 편이다. 또, 제갈량처럼 ‘국궁진췌’를 몸소 경험하며, ‘사이후이死而後已’ 정신으로 끝까지 정리하고자 다짐했다. ‘국궁’은 자발적 의지로는 나를 겸허히 낮춰 남한테 경례하는 ‘허리 굽힘’이지만, 자연스런 현상으로는 할 일에 너무 골몰하고 기력을 다한 나머지 피가 마르고 골수까지 비어 ‘허리가 구부정정 굽는’ 것을 가리킨다. ‘진췌’는 말 그대로 ‘기진맥진’을 뜻한다.
허나, 감수성 예민하던 십대 청춘으로서 중고교 때 처음 맛보고 느꼈던 감명을 잊지 못하고, 천하대의를 위한 제갈량의 장렬한 우국충정과 섬세하고 간절한 인간미를 사모해 기리는 마음에서 최선을 다해 정성껏 정리했다. 이 붉은 마음 하나 진솔히 전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자 다행이겠다.

기미독립선언 1백주년 삼일절을 맞이하며
2019.2.22.금. 빛고을 운암골 연정재淵靜齋에서
글쓴이 보적寶積 김지수金池洙 공경합장 _()_

하나. 삶과 죽음

신원身元과 시대 배경


제갈량은 자字가 공명孔明이고, 랑야琅邪 양도陽都(현재 산동성 기수沂水 변으로, 기남沂南과 림기臨沂 중간 부근) 사람이다. 동한 말 령제靈帝 광화光和 4년(181) 태어나서, 촉한蜀漢 후주(류선劉禪) 건흥建興 12년(234)에 54세로 서거했다.
제갈량이 태어난 때는 바야흐로 동한 말 극도로 혼란스런 때로, 노란 수건을 질끈 동여맨 황건黃巾 농민들이 봉기하고, 게다가 난세 영웅호걸을 자처하는 군웅들이 할거하여 군벌 각축으로, 한 황실을 이미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제갈량이 유명한 ‘출사표’에서 “선제께서 살아계실 적에 매번 환제ㆍ령제를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사실 후한 후기부터 외척과 환관들의 권력농단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서기 125년 3월 안제安帝가 사망하자, 염閻태후가 어린 소제少帝를 내세워 섭정하며 권귀대신을 죽이거나 자살하게 하고 밖으로 내쫓은 다음, 염씨 형제가 권력을 잡아 외척이 득세하는가 싶었다. 허나 그동안 궁중에서 권력을 농단해온 환관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10월 소제가 병사하자, 11월 손정孫程 등 환관 19인이 결탁해 집단 음모를 꾀해, 안제의 폐위된 태자를 순제順帝로 옹립하고 염씨 형제를 죽이더니, 이듬해 정월엔 염태후마저 죽어 환관이 전권을 잡았다. 그러다가 순제 장인 량상梁商 대장군이 영화永和 6년(141) 죽자, 그 아들 량기梁冀가 대장군이 되어 전권을 잡으며 외척 전횡이 시작되었다. 그 뒤 량기는 충제와 질제質帝를 거쳐 146년 환제를 내세우고, 이듬해 누이를 황후로 세워 무소불위 전횡을 일삼다가, 159년 환관 5인의 병력공격을 받아 자살하고 패가망신함으로써, 다시 환관이 득세하였다. 이에 사례교위 리응李膺을 비롯한 정의로운 고관 및 태학생들이 연대해 환관 집단의 권력농단을 비평공격하자, 환제 말년(166) 무려 2백여 명을 체포ㆍ감금했다가 풀어주며, 종신금고 조치를 내렸다. 바로 그 유명한 제1차 ‘당고黨錮의 화禍’였다. 령제 즉위 직후 외척 두무竇武가 전권을 잡아, 당인黨人들을 기용해 환관들을 제거하려고 모의했으나, 비밀이 새어나가 실패하고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169년 환관들의 협박 아래, 리응 등 백여명을 체포해 죽이고 계속해서 6-7백인을 처형ㆍ유배ㆍ수금했다. 이어 176년에는 ‘당인’과 인연 있는 문하생ㆍ부하관리 및 친인척을 모두 파면하고, 제2차 ‘당고黨錮의 화禍’를 단행했다. 마침내 184년 황건 농민군이 봉기하면서, 비로소 당고가 풀리게 되었다.
역사상 환관이 국정을 농락해 혼란에 이른 사례는 부지기수나, 특히 후한 말 ‘십상시十常侍’로 일컬어진 환관 12인과 그 친인척들의 농간은, 황건 농민봉기를 초래하고 끝내는 후한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189년 4월 령제가 사망하고 소제少帝가 즉위하자, 그 외삼촌 하진何進 대장군이 권력을 잡았다. 하진은 원소袁紹와 함께 환관들을 처치하려고, 당시 서쪽 강족羌族 진압과 황건 민란 평정으로 유명해진 동탁을 끌어들이기로 모의했다. 허나 기밀이 새어나가, 하진은 동탁이 오기 전에 십상시한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분격한 원소는 당형인 원술袁術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환관들을 도륙했다. 바로 뒤이어 도착한 동탁은, 환관한테 겁박당한 소제를 맞아 락양에 돌아온 다음, 군대를 접수해 세력을 불려나갔다. 동탁과 갈등을 빚은 원소가 기주冀州로 달아나자, 동탁은 그해(189) 9월 소제를 폐하고 후한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를 내세워, 스스로 제후 및 재상이 되어 조정을 독점했다. 그는 병력을 풀어 잔혹한 수탈과 착취에 혈안이 되어, 백성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며, 황제 자리까지 탈취하려 꾀했다.
이듬해(190) 정월 원소가 동탁 토벌을 명분으로 주군州郡 세력을 규합하여 락양으로 진격하자, 위협을 느낀 동탁은 구심점을 없애려, 폐위된 소제를 독살하고 락양을 불 지른 뒤, 헌제를 끼고 수백만 백성을 협박해 장안 천도 길에 올랐다. 황제는 동탁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고, 동탁은 실제 권세뿐만 아니라 복식의장이나 모든 형식의례까지 완전히 황제처럼 굴었다. 이때 사도司徒 왕윤王允이 동탁 부장인 려포 등과 은밀히 결탁해 기회를 엿보다가, 192년 4월 조회 때 마침내 동탁을 찔러 죽였다. 허나 잔당 부하들이 인민을 살륙하고 궁성을 포위 공격해 왕윤을 죽이고, 다시 헌제를 위협ㆍ통제해 조정을 농락하니, 물가가 천정부지로 폭등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하는 틈을 타서, 헌제가 가까스로 장안을 벗어나 동으로 환도했다. 이 무렵 조조는 원소의 동탁 토벌 연합군에 동참했다가, 청주靑州 황건 민군을 진압해 연주를 점거하고 독자 세력을 형성하던 중이었다. 하늘이 내려준 절호 기회를 놓칠세라, 락양으로 돌아오던 헌제를 맞이해, 허許로 모셔가 보호하며 실권을 장악했다.(後漢書 권72, 董卓列傳)
바로 이때 연호를 건안建安으로 바꾸었다.(196) 이때부터 조정이 한숨을 돌리며 정신을 차리고 각종 제도와 법질서를 회복하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역사의 수레바퀴와 운명의 여신은 뜻밖에도 조조한테 미소를 선사한 셈이 되었다. 조조는 허許에 자리 잡은 건안 원년부터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며 전권을 휘둘러, 한 황실은 빈 명목만 지닌 채 국운은 사실상 끝나고 조씨 천하가 되었다. 건안 18년(213)에 헌제가 조조를 위공魏公에 봉하여 위국魏國을 세웠으나, 조조는 끝까지 헌제를 내세워 대의명분을 표방했다. 조조 사후 220년에, 아들 조비曹丕가 비로소 헌제를 핍박해 제위를 선양받아 문제로 즉위하면서, 형식상 한이 멸망하고 삼국시대가 공식 펼쳐지게 되었다.
이처럼 후한 말 천하혼란 풍운동탕, 군벌각축 인민도탄의 격변시기에, 제갈량 자신도 난세 영웅호걸의 1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시대배경은 향후 제갈량의 운명과 인생항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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