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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8971297
· 쪽수 : 680쪽
· 출판일 : 2024-03-26
책 소개
목차
-Ⅰ-
1. 복사골 신방(新房)
2. 신학문의 전당 배재학당(培材學堂)
3. 한국이 바라는 가장 유망한 청년 이승만
4. 원초(原初) 국회(國會) 중추원(中樞院)
5. 탈옥(脫獄) 권유
6. 민중은 당신을 기다린다
7. 종신징역, 무기수 이승만
8. 지옥에서의 결신(決信) 기도
9. 쥐구멍의 볕
10. 감옥학교와 도서실
11. 지옥감옥에서의 해방
-Ⅱ-
1. 미국은 대한제국을 압니까?
2. 주미한국공사관의 배신자
3. 가슴에 묻은 외아들 태산이
4. 눈물의 졸업식, 조지워싱턴 대학교
5. 하버드대 석사, 프리스턴대 철학박사 이승만
6. 조국이 부른다
7.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
8. 갈 곳 없는 국제미아(國際迷兒)
9. 호놀룰루 이전투구(泥田鬪狗)
10. 필라델피아발發 독립선언서
11. Republic of Korea President Rhee
12. 영욕(榮辱)의 1년 6개월, 임정(臨政) 대통령
13. 레만호의 백합화(白合花) 프란체스카
14. 검소한 결혼식
15. 진실을 말하는 무서운 책
- Ⅲ -
1. 조국의 새 아침 1945년 8월 15일
2. 걸어서라도 가리라
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4. 신생 한국의 운명, 신탁통치(信托統治)
5. 남북분단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6. 이승만과 하지의 결전(決戰)
7. ‘나의 길을 가련다’ 백범 김구(金九)
8. 우뚝 선 신생 민의(民意)의 전당, 대한민국 국회
9. 건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부록
귀국에의 열망_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에서 발췌
작가의 말
국적 없는 애국자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렇게 확실한 이유도 없이 질질 끌던 여권이 나온 것은 조국이 해방된 지 2개월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이었다. 9월 5일이 되어서야 국무성으로부터 여권 발급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한반도는 미군 작전 지역이므로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의 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허가서를 받자 이번에는 이승만의 신분, 자격이 문제가 되었다. 합참의 스위니 대령은 이승만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전 대통령이며 현 준 외무장관으로 인정하여 신분을 ‘재미 한국 고등판무관在美韓國高等辦務官. High Commissioner from Korea to the United States’으로 하여 허가를 했다. 판무관은 위원, 이사, 대표 등을 부를 때 쓰는 명칭이었다. 그러자 국무성에서는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비자 허가를 취소했다. 미국은 임시정부를 승인한 적이 없으므로 그 명칭으로 귀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결국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겠다는 뜻을 전하여 허가를 받았다.
초라하고 불편한 환국이었다. 해방된 조국을 들어가는 길이 이처럼 어렵고 지루할 줄 몰랐다. 10월 5일이 되어서야 이승만은 가까스로 뉴욕에서 출발하는 군용기에 오를 수 있었다. 군용 비행장에는 부인 프란체스카와 구미위원부 직원들이 나와 전송했다.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서 먼저 귀국하니 미안하다며 부인을 위로했다. 그런 다음 그는 친지와 친구들을 바라보며 비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트랩에 올랐다.
“나 한 사람, 오든지 가든지 죽든지 살든지 일평생 지켜온 한 가지 목적으로 살며 끝까지 갈 것입니다. 걸어서라도 가겠다던 내 조국입니다.”
이승만은 그로부터 5일이 지난 후에야 맥아더 사령부가 있는 동경에 도착했다.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군용기를 번갈아 가며 타야 했기 때문에 경유지가 많아 지체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박사님!”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이승만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를 만남으로써 국무성에 가졌던 서운함과 불쾌감을 다 떨쳐버릴 수 있었다. 맥아더는 이승만이 필라델피아에서 창립했던 ‘한미우호협회’의 지원 멤버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려면 정부기관보다는 외곽의 유력 인사들을 지원 세력으로 묶는 게 좋겠다고 하여 만든 단체가 우호협회였다.
“이젠 안심하십시오. 서울까지는 특별기를 내드릴 테니 편안하게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만나볼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 후 부관의 안내를 받고 사령관실로 들어온 사람은 육군 중장 하지John R. Hodge였다.
“박사님, 소개합니다. 태평양 제7군 단장 하지 장군입니다. 하지 장군은 오키나와 상륙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자랑스러운 장군입니다.”
하지가 거수경례를 하자 이승만은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청했다.
“과찬이십니다. 처음 뵙습니다. 육군 중장 하지 장군입니다.”
“반갑소. 나는 이승만입니다.”
“박사님은 돌아온 한국 민족의 영웅이십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내셨고 주미 한국위원회 위원장이십니다. 서울에 돌아가시면 최선을 다해서 박사님 하시는 일을 도와주십시오.”
맥아더가 당부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 장군은 이번에 주한 미군 사령관으로 발탁이 되어 미군을 이끌고 서울에 입성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서로 만나야 할 분이라서, 마침 동경에 와 있던 하지 장군을 부른 것입니다.”
맥아더는 일부러 공무차 동경에 와 있던 하지를 불러 소개하며 이승만을 도와주기를 바랐다. 이승만은 이윽고 맥아더가 마련해준 군용기 편으로 1945년 10월 16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트랩을 내려서서 조국 강산을 둘러본 그는 가슴 벅찬 감개를 억누를 수 없었다. 몇 년 만의 귀국인가. 33년 만의 귀국이었다. 무국적자의 설움을 견디어가며 오직 조국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던 그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신사로 그토록 원하던 대한민국의 국적을 되찾는 첫발을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 자격이란 단서 때문이었는지 출영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차를 타시죠.”
미군 소령이 부하 장교 세 명과 함께 다가와 권했다. 그들은 군용 지프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김포공항을 떠난 차는 서울 시내로 들어가 미군 고위 장교들의 숙소로 이용되던 조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이 되자 미 육군 소장 군복을 입은 고급 장교가 찾아왔다.
“길고 지루한 여행하셨습니다. 본관은 주한 미 군정청 군정 장관 아놀드A. V. Anold 소장입니다. 박사께서 귀국하셨으니 곧바로 기자회견을 하시는 게 좋겠다는 군정청의 계획을 말씀드립니다.”
“회견은 언제로 잡았지요?”
“내일 군정청조선총독부가 있던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오전 10시에 있겠습니다.”
“고맙소.”
이튿날 10월 17일, 예정대로 2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자 회견장을 꽉 채웠다. 그토록 지난 세월 이국땅을 돌며 한국 독립을 위한 강연을 수백 회 이상 하고 다녔지만 오늘처럼 벅차오르는 흥분은 처음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오고 싶던 내 고향, 내 집에 와 있다는 기쁨과 행복감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단위에 올라 간밤에 작성했던 성명서를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했다.
“나는 장차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몸 바쳐 일하겠습니다. 싸워야 할 일이 있으면 싸우겠습니다. 4천 년의 우리 역사가 암흑에 묻혀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불민不敏의 탓이오, 그중에도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나서야 합니다. 4천 년 역사를 꽃피울 호기가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덮어놓고 뭉칩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