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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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며 유럽 문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친 독일어권 시인. 187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프라하에서 아버지 요제프 릴케와 어머니 피아 조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로, 릴케가 태어난 자정 무렵의 시각이 예수 탄생 시각과 같음을 기억한 어머니는 첫딸을 수주일 만에 잃고 얻은 아들의 탄생을 성모 마리아가 내린 은총으로 여겨 릴케를 “마리아의 자식”이라고 불렀다.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육군 유년실과학교를 다녔으나 중퇴하고 20세 때인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해 미술사, 문학사, 철학 강의 등을 수강했다. 1894년 첫 시집 『인생과 노래』를 출간한 이후 『가신봉제(家神奉祭)』(1895), 『꿈의 왕관을 쓰고』(1896), 『강림절』(1897)을 차례로 발간했다. 1897년 베네치아에 체류하면서 일생에 걸쳐 깊은 영향을 받은 연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처음 만나 그녀의 권유로 ‘르네’라는 본명을 ‘라이너’라는 독일식 이름으로 바꾸었다. 1899~1900년 두 차례에 걸쳐 루 살로메와 러시아 여행을 했고, 이때의 경험이 작가의 시적 토양으로 깊게 자리 잡는다. 1902년 『형상시집』을 출간하고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의 만남을 계기로 『로댕론』을 쓰기도 했다. 로댕은 루 살로메만큼이나 시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시도집』(1905), 『신시집』(1907), 『말테의 수기』(1909) 등 꾸준히 작품을 펴내다 전쟁으로 인한 10년간의 침묵 끝에 마침내 필생의 역작이라 평가받는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1922)를 완성한다. 릴케가 한 후작부인의 초청으로 방문한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 절벽 위의 대저택 이름이 ‘두이노 성’이기도 하지만, 전쟁 끝에 완전히 파괴된 몰락한 집의 이름을 문학권의 연관 관계 안으로 영원히 끌어들이겠다는 시인의 결심이 『두이노의 비가』라는 명칭을 낳았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1926년 스위스 발몽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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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학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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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오스트리아 빈 대학통번역대학원을 거쳐,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아데나워 재단의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했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유럽어교육학부 독어교육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프리츠 펄스 연구소에서 문학치료사 훈련가 자격을 취득하였고,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헤세의 《데미안》, 베른하르트의 《보리스를 위한 파티》, 릴케의 《시작 노트》, 쇼펜하우어의 《논쟁술》,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프로이트의 치료기법》, 《문화 속의 불쾌》, 《기억의 공간》, 《이집트인 모세》, 《시와 인식》, 《신들의 모국어》, 《니체의 문체》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프로이트 프리즘》, 《문학적 기억의 탄생》, 《문학치료》, 《내면의 수사학》, 《감성독서》, 《반기억으로서의 문학》, 《이겨놓고 싸우기》 등이 있다. 그리고 평론집으로 《잘못보기》, 《토르소》, 에세이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을의 언어》, 《다이달로스의 슬픔》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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