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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민속/한국전통문화
· ISBN : 9788971057759
· 쪽수 : 397쪽
· 출판일 : 2010-12-30
책 소개
목차
1권
서문
조선 왕실 冠禮의 역사적 추이와 그 의미/권오영
1.머리말
2.조선전기 왕실 관례의 정비
3.왕실 관례의 역사적 추이
4.관례에 담긴 의미
조선시대 왕세자 冊封禮의 제도화와 의례의 성격/임민혁
1.머리말
2.초기의 시행 과정
3.의주의 정비와 변화
4.책봉방법 논의와 왕세자의 지위
5.복식과 의물
6.맺음말
조선 왕실의 親迎禮 연구/김문식
1.머리말
2.친영례의 유래
3.친영례의 도입 과정
4.봉영례와 친영례의 의주
5.맺음말
부록
조선시대 朝參儀式의 구성과 왕권/강제훈
1.머리말
2.『국조오례의』조참의식의 형성 과정
3.『국조오례의』와 『춘관통고』조참의식의 비교
4.조참의식의 구성과 특징
5.맺음말
부록. 조참의 의주
조선시대 嘉禮의 用樂 유형/송혜진
1.머리말
2.조선시대 가례의 종류와 용악
3.조선시대 가례 용악의 갈래와 악대 편성 유형
4.조선시대 가례 중 예연 용악의 유형
5.맺음말
조선시대 왕세자 用禮 복식의 추이
『춘관통고』와 『관례책저도감의궤』를 중심으로/이민주
1.머리말
2.조선시대 왕세자 책례 의식의 절차와 복식 변화
3.『관례책저도감의궤』의 복식 구조와 의장
4.왕세자 책례의 所入物目
5.맺음말
찾아보기
2권
조선시대 정지회의(正至會儀) 연구
조선 왕실의 입학례 연구
조선시대 전시의(殿試儀)와 방방의(放榜儀) 연구
조선 초기 요하의(遙賀儀)와 군신 질서
조선조 왕실 주관 양로연의 역사적 추이와 의미
조선조 왕실의 가례음악
효명세자의 일생을 통해 본 가례복식
저자소개
책속에서
요하의는 국가의 경사를 하례하는 의례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의 순행을 맞이하는 의례가 있었으나, 조선에서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왕의 순행은 중국 고대 주(周) 봉건시대의 왕과 제후 사이의 정치사회적관계를 잘 나타내는 의례이다. 이를 고려시대에는 의제적인 형식으로 변용하여 왕의 순행을 외관들이 맞이하는 의례로 행해 왔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왕의 순행제도를 없애는 대신, 외관이 정기적으로 상전진하(上箋陳賀)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조선 정부에서는 각 지방에 대한 국왕의 일원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수령들에게 지방 통치를 위임하여 파견하는 군현제를 시행했다. 이로써 국왕은 지방 수령에 대해 정치사회적으로 일정한 지배와 복종관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왕과 외관의 관계는 『경제문감』에 수록된 정총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수령은 왕의 교화를 널리 전파하여 나라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관리로서, 왕의 조아요 수족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외관의 상전진하는 이들의 이러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의례였다. 국왕과 외관의 정치사회적 질서체계는 의례의 구성 요소인 의절과 상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의례는 중국 고대 주나라의 천자사조(天子四朝)에서 유래되었다. 사조는 춘조(春朝), 추근(秋覲), 하종(夏宗), 동우(冬遇)를 말하며, 이는 ‘이친제후(以親諸侯)’ 곧 제후를 친히 하는 의례였다. 제후가 천자를 조근하는 것은 천자와 제후 상호 간에 친친의 도리를 실현하는 방식이었다.
- 2권, 임민혁, 조선 초기 요하의(遙賀儀)와 군신 질서 중-
양로의 역사는 중국 고대에서 유래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는 왕이 참석하여 행하는 연회 중에 양로행사가 가끔 베풀어 졌다. 신라에서는 양로연을 거행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양로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행사는 주로 왕이 지방을 순행할 때 노인과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를 위문하고 곡물과 포백을 하사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신라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에 대해 국가에서 사물(賜物)로써 진휼하거나 왕이 순행 시에 늙고 병든 자들을 위문하였다. 백제에서는 다루왕과 비루왕 때 가난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에 대한 진휼을 행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양로정책이 보다 구체화되어 주식이나 곡물, 포백 등을 하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80세 이상 된 남녀 노인 모두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어서 은혜가 미치도록 하였다. 매년 9월 임금은 80세 이상 된 바깥노인을 모아 잔치를 열고, 왕비는 80세 이상된 안노인을 모아 잔치를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실시된 양로연회가 한층 예제화·법제화되었고, 정치사회적으로는 국가적 주요 행사로서 양로연을 단순 연회가 아닌 엄격한 의례 절차에 의하여 거행하였다. 『경국대전』 예전(禮典) 연향(宴享)조에 의하면 “매년 계추(季秋 늦가을, 음력 9월)에 양로연을 거행한다. 대소원인(大小員人; 모든 관원)의 80세 이상 되는 자는 모두 연회에 참석한다. 부인들에게는 왕비가 내전에서 거행하고, 지방에서는 수령이 자리를 만들고 연회를 거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왕이 관직에서 물러난 노인과 일반서민·천민 노인들을 초청해서 양로연을 베풂으로써 양로에는 신분간·계층간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 2권, 권오영, 조선조 왕실 주관 양로연의 역사적 추이와 의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