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1540
· 쪽수 : 160쪽
책 소개
목차
폭죽무덤 009
작품해설 143
작가의 말 158
저자소개
책속에서
벽대여. 그렇게 적힌 명함을 받았다.
나에게 명함을 준 남자는 내 앞을 걷고 있었다.
남자와 나는 호프집에서 나와 줄곧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골목과 골목, 육교와 주유소를 지나는 동안 남자의 머리 위에 계속 달이 있었다.
추워서 움츠러들었다. 내 외투는 너무나 얇고.
언제부터 이렇게 얇았을까.
내 앞을 걷는 남자는 무릎까지 오는 갈색 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나보다는 20센티는 큰 키에 덩치도 있고 보폭이 컸다.
벽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앞서 걷는 남자의 뒤에서 말했다.
남자는 더 걸어야 한다고 했다.
걸으며 남자의 뒷모습과, 달, 바닥, 내 발등을 보았다.
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운동장 같았지만 조회대는 보이지 않았다.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는 괴로움을 호소했다.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산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아니? 산 사람 목울대를 얼마나 편안해 하는지 너는 모른다. 너는 모른다. 엄마는 내가 모르는, 모를 법한 이야기를 죽 하다 별안간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와의 통화가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사람은 죽어서도 계속 사람일 것이라는 그 생각. 단지 투명해질 뿐이고 투명하지 않다면 거의
투명한 채로 흐물흐물한 경계를 가끔 볼 수 있는. 산 사람과는 다른 온도와 무게를 가진. 그래서 닿으면 닿는 대로 느껴지는.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두 칸씩 올라가기는 쉬워도 두 칸씩 내려가기는 힘들어. 그게 인생이야.
한 칸씩 내려가면 되지.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야.
계단 이야기 아니었니?
아니 인생 이야기였어.
아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