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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2755005
· 쪽수 : 356쪽
책 소개
목차
1장|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자기기만을 넘어서
타자의 눈으로
유산이라는 굴레
어둡고 괴로워라-1950년대의 대학가
이제는 옛날-나의 수강 경험
2장| 텍스트의 현장
문학의 전락-무라카미 현상에 부쳐
즐김과 소명 사이에서-문학이 하는 일
기이한 상봉-표절인가 차용인가
안개는 피어서 강으로-박목월은 표절 시인인가
사철 발벗은 아내가-정지용의「향수」가 모작인가?
상호텍스트성의 현장
왜 고전인가?
3장| 타인의 삶 속에서
증오의 중층적 결정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글로벌시대의 번역
타인의 삶 속에서
광화문 언저리에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 시절 대학교원들이 누린 일탈과 무책임의 자유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툭하면 휴강을 하는 것은 대학가의 항상적인 관행이었다. 물론 개인차가 심해서 예외적으로 엄격했던 분들이 없지 않았다. 가령 영문과의 권중휘 교수가 그런 분이었다. 권 선생은 시간 정각에 시작해서 정각에 끝을 내고 그 점에서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휴강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학교 보직을 맡은 이들 가운데는 보직수행상 부득이 휴강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권 선생은 대학본부의 보직을 맡은 적도 있고 과주임을 맡기도 했지만 보직을 빙자해서 휴강을 하는 법도 내 기억엔 없다. 졸업논문을 꼭 기한 내에 내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의 동경대학에서는 마감시간에서 오 분이 늦었다 해서 제출을 못하고 일 년 후에야 졸업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어둡고 괴로워라-1950년대의 대학가」 중에서
2학년 첫 학기 때 선생의 ‘20세기 영시’를 수강했다. 아마 선생으로서도 전공강의로서는 첫 경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등사해서 만든 가제본을 교재로 해서 주로 송 선생이 번역을 했다. 가제본한 교재에는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의 전쟁 시편도 하나 끼어 있었다. 별로 좋은 시 같은 느낌은 안 들었지만 시 속에 죽어가는 자의 ‘의식의 흐름’ 비슷한 것이 있어서 그 현대성을 취해서 선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죽는다”란 독일말로 시작되는 이 시의 한 대목 첫머리는 “Listen!”이란 명령형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들어라”라고 번역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선생은 “귀 기울여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들어라”와 “귀 기울여라”는 동의어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맥락에서는 천양지차였다. 시와 언어의 핵심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번역이나 글이란 이런 차이를 발견해서 조직하는 것이구나, 하고 내 나름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는 옛날-나의 수강 경험」 중에서
중·고등교육의 막강한 중요성을 확신하고 주장하면서 소르본대학의 임용장을 거부한 철학교사 알랭, 행복은 의무라고 교실에서 판서했던 철학자 알랭은 스피노자를 배운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 주르 라뇨의 말을 정감 있게 인용하고는 하였다. “무신론은 신앙의 부패를 방지하고 보존하는 소금이다.” 우리는 타자의 눈이야말로 감상적이고 역사 망각적이고 무책임한 민족주의의 맹목과 자기훼손을 방지하는 소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타락한 세계에서 기필코 총명해야 한다는 우리의 도덕적 의무가 감당해야 할 지상의 쓰디쓴 소금이다.
-「타자의 눈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