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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7901132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22-07-08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5
사라지는 말들 11
색인 420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린 시절 모친이 빨랫줄을 받치고 있는 바지랑대를 내려놓고 부산하게 빨래를 거두는 것을 목도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자랑스럽지 못한 세탁물을 널어놓고 있는데 손님이 온다고 하면 부리나케 걷어치우는 경우였다. 취학 이전의 유년기를 김유신 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진 충북 진천의 변두리에서 보내었다. 충북선의 통과 지점과 거리가 멀어서 평소 기적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저기압 날씨가 되면 가녀리게 들려왔다. 기적 소리가 나면 모친이 비가 올 것이라며 부지런히 의상衣裳 극빈자 같은 빨래를 치우곤 하였다. 이제는 아득한 옛이야기다. 빨랫줄이 사라졌으니 바지랑대란 말도 미구에 사라질 것이다. 1950, 6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 학교에서는 키다리 교사에게 바지랑대란 별명을 선사하는 일이 흔했다. 바지랑대와 대척점에 있는 교사의 별명으로는 미스터 몽탁이란 것이 있었다.
오랫동안 친숙한 것이라 엿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미친 척하고 엿목판에 엎어진다”는 말이 있다. 엿은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미친 척하고 엿목판에 엎어져 주인이 놀란 사이 엿을 슬쩍한다는 뜻이다. 욕심이 있어서 속 보이는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리다. 엿장수가 고물을 받고 엿으로 바꾸어 줄 때 엄격한 기준이 없으니 “엿장수 마음대로”란 말도 생겨났다. 가위 소리 듣고 몰려온 꼬마들은 엿을 산 뒤 엿치기란 놀이를 하였다. 엿가래를 부러뜨리거나 반 동강을 낸 뒤 거기 나 있는 구멍의 수를 견주어서 많은 쪽의 임자가 이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제 엿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없고 엿장수도 사라졌다. 엿장수뿐 아니라 방물장수나 옹기장수도 사라졌다. 그러니 그런 어사는 앞으로 옛말 사전에서나 볼 수 있게 되리라.
근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말 중에 빈번히 쓰이는 것이 ‘갑질’이란 말이다. 또 목에 힘준다, 어깨에 힘준다는 말도 자주 듣게 된다. 모두 힘이 있는 사람의 곱지 않은 거동이나 태도를 힘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말이다. 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이와 비례해 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쓰였으나 요즘은 좀처럼 접하지 못하는 말이 ‘곤댓짓’이다. “뽐내어 우쭐거리며 하는 고갯짓”이 곤댓짓인데 옛날 하급 벼슬아치나 시골 부자들이 하던 짓이다. 훨씬 실감 나는 말이다. 노인을 가리키는 비하성 속어인 꼰대가 사실은 곤댓짓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추측성 발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