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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8815
· 쪽수 : 308쪽
책 소개
목차
설충_雪蟲
안개 고치_霧繭
여름의 능선_夏の稜線
바다로 돌아가다_海に歸る
물의 관_水の棺
빙평선_氷平線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안녕. 하세요.”
기묘한 억양이었다. 소녀가 다쓰로를 향해 띄엄띄엄 말했다.
“마리. 입니다.”
반응이 없는 다쓰로를 향해 다시 한번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다쓰로도 뭔가 대답을 하자고 생각했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다쓰로는 어머니를 보았다. 손자라는 말에 홀려 떨떠름하게 동의해줬던 어머니의 깊은 주름이 한층 더 깊어져 얼굴 전체가 쭈그러들었다. 며느리라는 자리를 준비해두었던 일가족에게 마리는 큰 불안감을 주고 있었다.
“열여덟 살이라네?”
돌아보니 아버지의 손에 여권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의 교활한 옆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어찌 됐든 이 소녀는 이 집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마소 거간꾼만도 못하잖아, 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애초에 그냥 손자를 사는 편이 더 나았겠네.”
어머니가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_ 「설충」
남편이 가정적인 게 아니라 가정적인 것을 동경하는 남자라는 걸 깨달은 것은 함께 살기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는 따뜻한 가정을 갖고 싶어.”
마키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말끝마다 손자와 성묘 이야기를 꺼내는 노친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는 그 사람 나름의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지자는 말이 나왔을 무렵에는 벌써 다른 여자의 배 속에 남편의 아이가 있었다.
이혼이라는 결과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매듭 하나가 지어진 것에 안도했다는 것도 솔직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결혼했을 때의 기분과 아주 흡사했다. 아기라는 천진무구한 존재 덕분에 주위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별수 없었다, 라는 이유가 생긴 것은 다행이었다. 이혼극은 주위에서 놀랄 만큼 짧은 기간에 수습되었다.
_ 「안개 고치」
사계절을 누리는 생활, 새파랗게 높은 하늘, 따뜻한 인정과 새로운 사랑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딸 마유를 낳기 전까지의 1년 남짓이었다. 배 속에 있는 것이 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시어머니 다키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더 노력해줘야 해.”
진통에서 해방되자마자 다키는 말했다.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도움이 되는 건 암소와 사내아이뿐이야. 다키가 강한 어조로 그런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면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_ 「여름의 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