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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인문/사회
· ISBN : 978897297710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4-03-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1. 어디에서나 한강이 보인다
2. 생각한 대로, 그대 생각한 대로
3.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4. 언제나 마음은
부록
다산 연보
답사 길잡이
리뷰
책속에서
“정약용도 실학자였잖아?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대개 한강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었어. 남양주, 양평, 여주, 광주……. 모두 한강 줄기라서 일종의 실학 벨트를 이루고 있었던 거지. 지금이야 인터넷 덕분에 격차가 덜하지만 당시에는 정보의 수용 면에서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아주 심했어. 서원이 지방의 교육을 상당 부분 담당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문물이 지방까지 파급되는 건 무척 더뎠겠지.”
부드러운 표정으로 권달중 오빠가 말했다.
“아, 그럼 서울과 가까워야 새로운 정보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러니 정약용으로서는 서울로의 접근성이 좋은 이 마재가 여러 가지로 마음에 맞았겠지. 물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어서, 또 고향이어서, 뭐 이런 이유들은 당연할 거고.”
“주로 다산 정약용이라고 불리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호가 더 있어. ‘사암(俟菴)’도 그중 하나고.”
“아, ‘사암’도 있었구나. 그런데 정약용 선생님은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잘 안 쓰셨나 봐요? 자기 묘지명을 쓰면서 ‘다산 정약용’이라고 안 하고 ‘사암 정약용’이라고 한 걸 보니.”
달중 오빠 눈에 얼핏 웃음이 어리는 것 같았다.
“서연이가 예리한걸? 정약용 선생의 호로 ‘다산’이 제일 유명하긴 하지만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 가 있다가 다산초당으로 옮기면서 그 무렵부터 사용한 호가 ‘다산’이잖아? 다산초당으로 옮겨간 것이 1808년이었는데 그때 다산은 이미 40대 후반이었거든. 거기 10년쯤 머문 후에는 해배되어 마재로 돌아왔으니까. 실제로 다산초당에 머문 건 10년밖에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다산’이라는 호가 정약용 선생의 대표적인 호가 되는 건 문제가 있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어.”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으니 생활이 궁핍했을 거야. 정약용만 해배되어 오면 집안이 펼 거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의 기대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래서 해배 이후 정약용은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 정약용이 인삼 농사 지었던 거 아니? 나중에는 그 인삼밭 덕분에 집안 형편이 좀 나아졌지.”
정약용이 인삼 농사를 지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머지는 보통의 집안 어른들과 같지 않았을까? 집안을 다스리고 자녀들을 교육하며 때로는 유람 길에도 나서고. 아, 서연이가 춘천에서 왔댔지? 정약용은 나중에 춘천에도 갔었어.”
그건 알고 있어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