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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74356057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2-10-28
책 소개
목차
1부 복음서와 사도행전
마태복음
1. 마리아는 영원한 동정녀인가? (마 1:25)
2. 하나님과 사탄이 함께 행동한다고? (마 4:1; 고후 12:7)
3. 지옥 불을 향해 가다 (마 5:22)
4.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마 6:13)
5.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죄를 무조건 용서하고 잊어야 하는가? (마 6:14)
6.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마 7:6)
7. 만사를 아시고 감독하시는 아버지 (마 10:29)
8. 세례 요한이 예수께 실망한 이유 (마 11:2-6)
9.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보다 더 위대한 이유 (마 11:11)
10.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 11:12)
11.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시는가? (마 16:18)
12. ‘매기’와 ‘풀기’ (마 16:19; 18:18)
13. 배우자가 외도했다면 이혼은 당연한가? (마 19:9)
14. “가서 … 제자로 삼으라” (마 28:19-20)
마가복음
15.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없는 죄도 있는가? (막 3:29; 눅 12:10)
16. 예수께 친형제가 있었는가? (막 6:3)
17. 자녀를 먼저 먹이라! (막 7:27)
18.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막 8:33)
19. 예수는 그저 “많은 사람”을 위한 구원자인가? (막 10:45)
20. 예수는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왜 저주하셨는가? (막 11:12-14, 20-25)
2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막 15:34)
누가복음
22. 마리아의 힘겨운 여정 (눅 2:1-6)
23. 사함 받았으므로 사랑하기 (눅 7:47)
24. 사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보다 (눅 10:18)
25. 부모를 미워하라? (눅 14:26)
26.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27. 모르고 지은 죄는 그냥 용서해 주실까? (눅 23:34)
28. 죽은 후 부활하기 전,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는가? (눅 23:43)
29. 예수는 십자가에서 무어라고 부르짖었는가? (눅 23:46)
30. “그분이 보이네 ― 아니, 안 보이네!” (눅 24:31)
요한복음
31.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지녔더라” (요 1:1하)
3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식 (요 1:12하-13)
33. 말씀이 언제 성육신했는가? (요 1:14)
34. 내 뒤에 오시는 ― 그러나 내 앞에 계시는 예수! (요 1:15)
35. 신속하게 영원히 채워지는 새로운 은혜 (요 1:16)
36. 아버지를 완벽히 표현하심 (요 1:18)
37. “물과 성령으로 나다” (요 3:5)
38. 독특한 사랑에 의한 독특한 주심 (요 3:16)
39. “~이라고 믿기”와 “~을 믿기” (요 3:36)
40. 살을 먹고 피를 마시다 (요 6:53)
41. 정당한 분노 (요 11:33, 38)
42.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5)
43. 예수께서 내 친구? (요 15:15)
44.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 19:26)
45. 영원한 생수를 주시겠다는 분이 “내가 목마르다”? (요 19:28)
46. 십자가 형틀에서 울린 승리의 외침 (요 19:30)
47. 의심은 언제나 죄인가? (요 20:27)
48. 절정의 신앙고백: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
49. 죄지은 지도자가 교회의 공적 직분에 다시 임명될 수 있는가? (요 1:15-17)
50.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요 21:15-22)
사도행전
51. “경영자가 바뀌었습니다” (행 8:16)
52. 첨예한 논쟁 ― 그리고 그 너머 (행 15:37-39)
53. 부부 사이의 상호 헌신 (행 18:2-3)
54. 기독교 교리에 헌신하다 (행 18:24-26)
55.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장로들 (행 20:28)
56.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행 21:4)
57. “너의 죄를 씻으라” (행 22:16)
2부 서신서와 요한계시록
로마서
1. 노예가 되는 것이 가장 귀한 특권 (롬 1:1)
2. “믿음으로 믿음에” (롬 1:17)
3.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과 단어는? (롬 3:25)
4.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롬 4:3)
5. 대조적인 삶의 방식 두 가지 (롬 8:4-5)
6.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 (롬 9:5)
7. 그리스도, 율법의 마침? (롬 10:4)
8. “예수는 주님이시다” (롬 10:9)
9. 영적 빚 갚기 (롬 15:26-27)
고린도전서
10. 주 안에서 자랑하기 (고전 1:31; 고후 10:17)
11. 본받음으로써 이루는 성화 (고전 4:16)
12. 성적인 죄는 특별한가? (고전 6:18)
13. 이혼과 재혼 (고전 7:15)
14. 기독교화된 쉐마 (고전 8:6)
15. 살아나사 ― 다시 죽지 않으심 (고전 15:4)
16. “첫 열매”로서의 그리스도 (고전 15:20, 23)
17.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고전 15:26, 54-55; 고후 5:8)
18. 죽은 자를 위해 받는 세례 (고전 15:29)
19. “신령한 몸”이란 무엇인가? (고전 15:42-44)
20. 인간은 불멸의 존재인가? (고전 15:52)
21. 형편에 맞게 꾸준히 드리는 연보 (고전 16:2)
고린도후서
22. 같은 고난을 당해 본 사람만이 위로할 자격이 있는가? (고후 1:4)
23. 사탄의 전략을 좌절시키기 (고후 2:11)
24. 하나님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참여하기 (고후 2:14)
25. 주를 기쁘시게 하기 (고후 5:9)
26. 극적으로 변화된 바울의 관점 (고후 5:16-17)
27. 죄 없는 분이 죄인을 대신하다 (고후 5:21)
28. 바울이 겪은 세 번의 낙심 (고후 7:5-7)
29. 바울이 좋아하는 말 (고후 8:9)
30. 의도적인 긴 침묵 (고후 12:2)
31. “육체에 박힌 가시” (고후 12:7)
갈라디아서
32. 아람어 abba는 ‘아빠’(daddy)로 번역해야 하는가? (갈 4:6)
33. 새로 찾은 자유를 한껏 누리기 (갈 5:1)
34. 노예로 섬기기 위한 자유 (갈 5:13)
에베소서
35. 보증이자 담보로서의 성령 (엡 1:13-14)
36. 규범적 양식: “성자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성부께” (엡 2:18)
37. 성령 충만의 증거 (엡 5:18-21)
빌립보서
38.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 (빌 2:7)
39. 형편에 만족하기 (빌 4:12-13)
골로새서
40. 예수 ― 시간상으로나 지위에서나 첫째이심 (골 1:15)
41. “자신의 모든 충만 가운데 계신 하나님” (골 1:19; 2:9)
42.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인가? (골 1:24)
43. 무효가 된 채무 증서 (골 2:14)
44. 최고의 덕행은 행동하는 사랑 (골 3:14)
데살로니가전서
45. 사망한 그리스도인은 “잠자는” 것인가? (살전 4:13-15)
46. 성령을 소멸하기 (살전 5:19)
디모데전서
47. 전통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딤전 6:20)
디모데후서
48.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 (딤후 2:10)
49. 하나님의 숨결 (딤후 3:16)
50.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딛 2:13)
빌레몬서
51. 바울과 노예제도 (몬 15-16절)
히브리서
52. 다르지만 비슷한 구약과 신약 (히 1:1-2상)
53. 그리스도의 영원성 (히 1:8-9)
54. 결정적인 나타나심 (히 9:23-28)
55. 기쁨 대신 고통 (히 12:2)
야고보서
56.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약 2:24)
베드로전서
57. 고난 뒤의 영광 (벧전 1:11)
58. 목자로서의 예수 (벧전 5:4)
베드로후서
59.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벧후 1:4)
60. 출발과 도착으로서의 죽음 (벧후 1:11, 14-15)
요한일서
61. 무죄(無罪)한 완전함은 없다 ― 아직은! (요일 2:1; 3:6, 9; 5:18)
62. 교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요일 2:27)
63. “사망에 이르는 죄” (요일 5:16-17)
유다서
64. 비할 데 없는 송영 (유 25절)
요한계시록
65. 칭찬받을 만한 불관용 (계 2:20)
66. 천국에서 어린양이 중심이 되심 (계 7:17)
책속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는 늦은 3월에 잎사귀가 나면서 작은 혹 같은 것이 생기는데(‘타퀴시’라고 하는), 이것이 생기면 약 6주 뒤인 5월 초에 진짜 무화과가 열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잎사귀만 있고 이 혹이 없으면(“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이 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이며 사실상 죽은 나무임을 알려 주는 확실한 증표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나무에 내리신 저주는 그저 필연적인 일을 확인해 주신 것일 뿐이다. 절실한 배고픔을 채우려 열매를 찾았는데 열매가 없자 심히 실망해서 건강한 무화과나무에 멋대로 저주를 내리셨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의 행동을 현실에 실행된 비유로 보아야 한다.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메시아의 존재와 그분의 메시지 앞에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대체적으로 보인 무반응의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며 그 처절한 멸망을 예견하신 것은 바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눅 19:41-44).
_ 1부 20장 “예수는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왜 저주하셨는가?”(막 11:12-14, 20-25) 중에서
이 시기에 마리아의 임신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첫 삼 개월은 지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마리아는 잉태할 것을 알게 된 후(눅 1:31, 35) 친척 엘리사벳 집에 가서 “석 달쯤 함께 있다가”(눅 1:56) 나사렛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편 요셉이 만삭의 여인을 데리고 긴 여정에 나서는 모험을 감행했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팔레스타인 북쪽의 나사렛에서 남쪽의 베들레헴까지는 약 145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였고, 성인 걸음으로 적어도 6일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누가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마리아가 임신 중이었고(“이미 잉태하였더라”) 베들레헴에 “있을 그 때에” 출산을 했다는 것뿐이다(눅 2:5–6). 5절의 분사(우세ousē, “(잉태)하였더라”)는 단순히 형용사적 표현일 것이다. “(마리아가) 아기를 낳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분사는 원인을 가리키는 말, 즉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간 것은 “[마리아가] 잉태하였기 때문”임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함으로써 미가 5:2이 성취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세 번째 해석안은 이 분사가 양보적 의미의 분사로서, “[마리아가] 잉태했음에도/잉태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뜻이다.
마리아가 임신 중기에 접어들었든 후기에 접어들었든, 6-7일이 걸리는 여정은 몹시 벅찼을 것이 틀림없다. 여성용 안장에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서든 혹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든, 요셉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마리아가 나귀에 올라타 흔들흔들 길을 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길은 심히 울퉁불퉁해, 임신 중의 마리아에게는 몹시 불편한 요동이 전해졌을 것이다. 이 힘들고 험한 여정을 마리아가 견뎌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가 안전하게 태어날 것을 보장하는 말씀을 각각 들었으므로(마 1:21; 눅 1:31, 35) 이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을 것이다.
_ 1부 22장 “마리아의 힘겨운 여정”(눅 2:1–6) 중에서
예수께서 질문하실 때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17)라고 대답했다. 이 세 절에서 “사랑”을 뜻하는 두 가지 동사(아가파오agapaō와 필레오phileō)가 쓰였다는 사실에는 별 중요성이 없다. (1) 이 동사들은 (예를 들어)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하신다고 할 때처럼(3:35와 5:20) 이 네 번째 복음서 다른 구절에서 서로 바뀌어 사용될 수 있으며 (2) 지금 이 구절에는 이것 말고도 문체상의 다른 변형들(‘양을 치다’, ‘양’, ‘알다’를 뜻하는 단어들)이 있으며, 이는 요한 문체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매번 대답할 때마다 예수께서는 은혜롭게도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시는데, 이번에는 목자로서의 사명이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 내 양을 치라 … 내 양을 먹이라.” 여기서 두 가지 동사(보스코boskō, “돌보다”, “먹이다”; 포이마이노poimainō, “돌보다”, “[양을] 보살피다”)가 쓰인 것을 보면 목자는 양을 먹이고, 인도하고, 보호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앞서 베드로는 사람을 취하라는(to fish) 사명을 받았었다(눅 5:10). 이 복음 전도자는 이제 낚싯바늘(hook)에다 목자의 지팡이(crook)를 갖게 되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낚시와 지팡이로”(by hook and by crook, 오늘날 이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는 뜻의 관용어로 쓰인다. ― 옮긴이) 이중의 역할을 이행했다.
_ 1부 49장 “죄지은 지도자가 교회의 공적 직분에 다시 임명될 수 있는가?”(요 21:15-1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