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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와 해석학

구조주의와 해석학

(해체주의 모색과 전망을 위한)

T. K. Seung (승계호) (지은이), 나경수 (옮긴이)
전남대학교출판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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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와 해석학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구조주의와 해석학 (해체주의 모색과 전망을 위한)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75988127
· 쪽수 : 398쪽
· 출판일 : 2010-02-25

책 소개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문학적 방법론으로 대두된 해석학과 구조주의의 인식론적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 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적용되었던 철학, 문학, 역사학, 인류학 등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와 연구내용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모방하고자 했던 객관주의가 해체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

서문 5

1. 인문과학을 위한 프로그램들 13
1. 언어학적 구조주의 22
2. 심리학적 구조주의 34

2. 심리학적 구조의 유형 40
1. 소크라테스 이전의 개념 구조 41
2. 소크라테스 이후의 개념 구조 48
3. 시간성과 역사성 58

3. 그리스 신화의 구조 69
1. 테베의 신화들 70
2. 공시성과 통시성 77
3. 단일성과 다양성 85

4. 프랑스 소네트의 구조 94
1. 3원적 분석 97
2. 2원적 분석 102
3. 등할 분석 115
4. 구조적 분석과 주제적 분석 127
5. 주제적 재구 132

5. 구조주의적 막시즘 147
1. 헤겔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 148
2. 복합결정론의 변증법적 구조 158

6. 기호학과 문자기호학 168
1. 바르뜨의 기호학 169
2. 데리다의 문자기호학 180
3. 훗설의 기호 이론 188
4. 훗설의 기호와 데리다의 흔적 197
5. 소쉬르의 차이와 데리다의 차연 208

7. 문화적 이질성과 역사적 상대성 222
1. 보편성과 지역성 226
2. 특수성과 비연속성 248

8. 상대성과 주관성 257
1. 텍스트의 주관성 260
2. 상황론적 상대성 278

9. 객관성과 선험성 298
1. 초의식의 논리 307
2. 상호주관적인 선험성 318
3. 선험성과 지시 328

10. 언어와 지시 334
1. 지시와 차이 340
2. 차이와 다의성 352
3. 다의성과 탈구조주의 370

역자 후기 386
찾아 보기 391

저자소개

승계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0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3년 전에 월남해 서울의 서울고와 연세대에서 공부하다 국군에 입대해 전장에서 3년을 복무했다. 종전 후에는 예일대로 유학을 떠나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예일대, 포드햄대, 스크립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교양학부 소속 제시 H. 존스 평의원 교수, 철학과 교수, 동아시아학과 교수, 행정학과 교수, 법학과 교수 등 여러 직책을 두루 맡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강의하고 《시빌레의 연약한 잎사귀The Fragile Leaves of the Sibyl》(1962), 《칸트의 선험 논리Kant’s Transcendental Logic》(1969), 《문화 주제론Cultural Thematics》(1976), 《구조주의와 해석학Structuralism and Hermeneutics》(1982), 《해석학에서 기호학과 주제학Semiotics and Thematics in Hermeneutics》(1982), 《직관과 구성Intuition and Construction》(1993), 《도덕과 정치철학에서 칸트의 플라톤적 혁명Kant’s Platonic Revolution in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1994), 《플라톤의 재발견Plato Rediscovered》(1996), 《영혼에 관한 니체의 서사시Nietzsche’s Epic of the Soul》(2005) 등을 썼다. 해석학적인 저술을 통해 문헌에 대한 주제 설명의 토대를 그 문헌의 문화적 주제의 모체, 즉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주제들 안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해석학에서 기호학과 주제학》으로 제기한 문화 주제학적 방법이다. 이 주제학적 방법은 문학 작품들이 자족적으로 맥락을 떠나 있는 경우가 거의 드물어서 적절한 주제적 맥락에 놓일 때에만 완벽해질 수 있다는 논지에 근거한다.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에서는 이런 문화 주제학의 방법을 스피노자적 서사시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 주는 작업에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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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수 (옮긴이)    정보 더보기
땅속의 감자를 캐며 씨알을 살피듯, 민속현장에 묻혀있던 민속을 캐내면서 반평생 이상을 살았다. 1955년 진도에서 태어난 덕택에 어려서부터 민속에 친숙했으며, 1981년부터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도교수 지춘상 선생의 문하에서 민속학을 공부하다, 천행으로 1989년 전남대 교수가 되어 2021년까지 근무했다. 훌륭한 제자가 많다고 부러움을 살 때가 가장 좋고, 100여편의 논문과 100여권의 저역서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한때 대학에서 박물관장도 하고, 한국민속학회장,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남도민속학회장, 국어교과교육학회장, 한국어문학연구소장, 문화유산연구소장, 그리고 진도군지 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언제나 직함을 감당하기 힘겨웠다. 그러나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도학회장을 맡고 있는 것은 영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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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인문과학을 위한 프로그램들


금세기에 들어와 인문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를 위해 고안되었고, 또 그를 주도해 왔던 다양한 형식주의적 프로그램들은 인문과학이 싹트는 맨처음 단계에서부터 과학적 혹은 준과학적 연구 과제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새로운 학문은 인문현상 전반에 대한 연구를 자연과학의 차원으로까지 당당히 끌어올리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서 형성된 이 새로운 학문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그것들을 딜타이(W. Dilthey)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 리케르트(H. Rickert)는 문화과학(Kulturwissenschaften), 빈델반트(W. Windelband)는 역사과학(Geschichtswissenschaften)이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학문의 선구자들은 그것과 자연과학과의 차이에 관해서 오랫동안 신중한 논의를 가졌다. 빌헬름 딜타이는 자연과학이 폭거를 일삼는 야수적인 분야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로 이해될 수는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딜타이에 따르면, 이해(verstehen)란 그것의 내면을 통찰하여 뭔가를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연은 내면이 없다는 것이다. 내면을 가지지 못한 것들은 다만 설명될 뿐이다. 어떤 것을 설명(erkl?ren)한다는 것은 그것을 일반 법칙하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딜타이의 관점으로 보면, 정신과학은 이해의 과학인 반면에, 자연과학은 단지 설명의 과학일 뿐이다.
빌헬름 빈델반트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에 대한 딜타이의 견해에 불만족을 표하면서 그와는 다른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일반법칙에 대한 지식이 자연과학의 목적인데 반하여, 특수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은 역사과학의 목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과학이 입법적인데 반해 역사과학은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입법적인 기능은 특수한 자연현상을 일반법칙에 포함시켜 설명하는 것이며, 개별화의 기능은 특수한 역사를 그들의 개별성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와 설명의 차이는 단순히 내면에 대한 앎과 외면에 대한 앎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양자의 앎에 대한 유형은 크게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자연 사물이나 자연적 사건은 일반 법칙을 적용하여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데 반해서, 문화적인 대상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그와 동일한 방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빈델반트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문과학이 개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를 낳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하나 개별적인 항목을 제시하고 다양화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학문이 보편적인 진리를 낳느냐, 아니면 개별적인 진리를 낳느냐 하는 문제는 인식력의 문제다. 보편적인 진리는 개별적인 진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 전자의 힘은 후자의 무한한 경우의 합과 맞먹는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보편적인 명제는 이러한 보편적인 명제로부터 생성될 수 있는 무한대의 개별적인 명제, 즉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플라톤은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죽는다”와 같은 명제의 합과 동일한 힘을 지닌다. 보편적인 명제는 무한대의 개별적인 명제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을 일격에 설파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영예와 위용은 그것의 원리와 이론이 지닌 보편적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빈델반트의 주장이 옳다면, 인문과학은 결코 자연과학이 성취하는 것과 같은 영예와 위용을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새로운 인문과학의 역할을 자연과학의 차원만큼 끌어올리려 노력했던 선구자들의 충직한 열망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들 모두의 열망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과학이 봉착하고 있는 실제 상황은 가장 오래된 지적 분야의 하나로서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차례차례 개별적인 진리를 추적해야만 했던 역사의 실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연과학의 입법적인 성격은 모든 과학의 필수적인 면모로서 넓게, 그리고 확고하게 인정되어 왔던 것에 반해서, 빈델반트의 취지로 보면 인문과학은 과학으로 정의될 수조차 없어 보인다. 실제로 빈델반트는 그의 학장 취임 연설문의 제목인 “역사와 자연과학”에서 인문과학을 역사학으로 지칭하면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딜타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인문과학을 과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빈델반트의 부정적인 시각에 제동을 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문현상에 대한 일단의 보편적 진리를 추출해냄으로써 그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접근이 사회적 행위의 일반법칙을 귀납적으로 찾으려 했던 행동과학자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적인 접근은 자연과학에 의해 얻어지는 것과 같은 일종의 명석한 결론을 얻어내기는 어렵다. 첫째는 행동과학에서 귀납적으로 설정될 수 있는 법칙은 그에 대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며, 둘째는 대개 그것들이 잘 알려진 추세나 경향의 통계학적인 재구 이상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칙은 자연과학과 같은 확고한 인식력을 갖지도 못하고, 또한 그런 인식은 수많은 자극적인 발견을 산출할 수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적인 접근법 외에, 인문과학의 단조로운 성격에 관한 빈델반트의 낙심천만한 혹평을 극복하면서 뭔가 진실로 과학적인 자극을 그 속에 천천히 주입시킬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다. 이는 귀납적인 일반화의 방법론이 아니라, 복합적인 전체의 구성 성분별로 분석하는 체계적인 분석방법으로 인문과학의 과학적 성격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하학적 도형의 수많은 다양성은 점, 선, 면, 부피와 같은 몇 가지 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 극히 혼잡스러운 요소로 이루어진 물질은 분자, 원자, 소립자 등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러한 분석방법은 거의 모든 자연과학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즉 그것은 태양계의 천체 구조뿐만 아니라,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를 결정하는 데도 사용된다.
과학적 분석의 목적은 단지 어떤 대상물의 구성요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구성형태 또는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자의 화학적 분석은 그것의 성분뿐만 아니라 구조까지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분자성분의 반응은 그들 분자구조의 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과학적 분석은 필수적으로 형식적이거나 구조적이다. 즉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형식적이며 구조적인 성질과 자연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구조분석의 방법은 데카르트류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데카르트의 과학적 방법론의 관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귀납적 일반화의 방법은 베이컨류라고 하겠다. 이들 두 방법론은 현대과학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구조적 분석방법이 귀납적 일반화보다도 훨씬 더 학문적인 탐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면 유클리트의 기하학은 기하학적 대상물의 구조적 분석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 귀납적 일반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화국』에서 플라톤은 도시국가에 대해서 구조적 분석을 시도했으나, 그의 분석이 귀납적 방법에 의해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형상론은 진리와 인식의 구조적 이론이다. 즉 궁극적인 진리의 성격은 구조적이며, 형식 구조적 분석(formal-structural analysis)은 그러한 이해를 위한 핵심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도 훨씬 더 귀납적인 방법을 선호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가장 기본적인 학술적 탐구 방법은 역시 구조분석 방법이었다. 그는 학문적 인식을 본질(essence)에 대한 지적 직관, 즉 형식적 원인 혹은 과학적 대상들의 구조에 대한 인식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의 『시학』은 일반적으로는 시의 구조적 분석과 특수하게는 비극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학』은 일반적으로는 도시국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특수하게는 군주정치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준다. 그의 논리학 논문들은 판단과 추론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주며,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류의 물(物) 혹은 “존재를 위한 존재”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물과 그 본질에 대한 그의 이론은 플라톤의 형상론보다는 훨씬 덜 구조적이다.
귀납적 일반화의 방법은 현대과학의 성립기에, 특히 자타가 공인하듯이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을 주창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창도(唱導)를 통해서 현재의 명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구조적 분석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하르비의 혈액순환론과 같은 그러한 신기원을 이룩했던 발견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더구나 그러한 현상이 지적일 수 있도록 이론적 모델을 구성함으로써 구조적 분석은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의 모태를 제공해 주었다. 귀납적 일반화는 주로 구조적 분석을 위한 부수적인 역할을 제공해 왔다.


1. 인문과학을 위한 프로그램들

금세기에 들어와 인문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를 위해 고안되었고, 또 그를 주도해 왔던 다양한 형식주의적 프로그램들은 인문과학이 싹트는 맨처음 단계에서부터 과학적 혹은 준과학적 연구 과제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새로운 학문은 인문현상 전반에 대한 연구를 자연과학의 차원으로까지 당당히 끌어올리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서 형성된 이 새로운 학문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그것들을 딜타이(W. Dilthey)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 리케르트(H. Rickert)는 문화과학(Kulturwissenschaften), 빈델반트(W. Windelband)는 역사과학(Geschichtswissenschaften)이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학문의 선구자들은 그것과 자연과학과의 차이에 관해서 오랫동안 신중한 논의를 가졌다. 빌헬름 딜타이는 자연과학이 폭거를 일삼는 야수적인 분야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로 이해될 수는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딜타이에 따르면, 이해(verstehen)란 그것의 내면을 통찰하여 뭔가를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연은 내면이 없다는 것이다. 내면을 가지지 못한 것들은 다만 설명될 뿐이다. 어떤 것을 설명(erkl?ren)한다는 것은 그것을 일반 법칙하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딜타이의 관점으로 보면, 정신과학은 이해의 과학인 반면에, 자연과학은 단지 설명의 과학일 뿐이다.
빌헬름 빈델반트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에 대한 딜타이의 견해에 불만족을 표하면서 그와는 다른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일반법칙에 대한 지식이 자연과학의 목적인데 반하여, 특수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은 역사과학의 목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과학이 입법적인데 반해 역사과학은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입법적인 기능은 특수한 자연현상을 일반법칙에 포함시켜 설명하는 것이며, 개별화의 기능은 특수한 역사를 그들의 개별성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와 설명의 차이는 단순히 내면에 대한 앎과 외면에 대한 앎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양자의 앎에 대한 유형은 크게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자연 사물이나 자연적 사건은 일반 법칙을 적용하여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데 반해서, 문화적인 대상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그와 동일한 방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빈델반트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문과학이 개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를 낳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하나 개별적인 항목을 제시하고 다양화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학문이 보편적인 진리를 낳느냐, 아니면 개별적인 진리를 낳느냐 하는 문제는 인식력의 문제다. 보편적인 진리는 개별적인 진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 전자의 힘은 후자의 무한한 경우의 합과 맞먹는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보편적인 명제는 이러한 보편적인 명제로부터 생성될 수 있는 무한대의 개별적인 명제, 즉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플라톤은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죽는다”와 같은 명제의 합과 동일한 힘을 지닌다. 보편적인 명제는 무한대의 개별적인 명제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을 일격에 설파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영예와 위용은 그것의 원리와 이론이 지닌 보편적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빈델반트의 주장이 옳다면, 인문과학은 결코 자연과학이 성취하는 것과 같은 영예와 위용을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새로운 인문과학의 역할을 자연과학의 차원만큼 끌어올리려 노력했던 선구자들의 충직한 열망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들 모두의 열망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과학이 봉착하고 있는 실제 상황은 가장 오래된 지적 분야의 하나로서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차례차례 개별적인 진리를 추적해야만 했던 역사의 실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연과학의 입법적인 성격은 모든 과학의 필수적인 면모로서 넓게, 그리고 확고하게 인정되어 왔던 것에 반해서, 빈델반트의 취지로 보면 인문과학은 과학으로 정의될 수조차 없어 보인다. 실제로 빈델반트는 그의 학장 취임 연설문의 제목인 “역사와 자연과학”에서 인문과학을 역사학으로 지칭하면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딜타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인문과학을 과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빈델반트의 부정적인 시각에 제동을 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문현상에 대한 일단의 보편적 진리를 추출해냄으로써 그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접근이 사회적 행위의 일반법칙을 귀납적으로 찾으려 했던 행동과학자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적인 접근은 자연과학에 의해 얻어지는 것과 같은 일종의 명석한 결론을 얻어내기는 어렵다. 첫째는 행동과학에서 귀납적으로 설정될 수 있는 법칙은 그에 대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며, 둘째는 대개 그것들이 잘 알려진 추세나 경향의 통계학적인 재구 이상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칙은 자연과학과 같은 확고한 인식력을 갖지도 못하고, 또한 그런 인식은 수많은 자극적인 발견을 산출할 수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적인 접근법 외에, 인문과학의 단조로운 성격에 관한 빈델반트의 낙심천만한 혹평을 극복하면서 뭔가 진실로 과학적인 자극을 그 속에 천천히 주입시킬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다. 이는 귀납적인 일반화의 방법론이 아니라, 복합적인 전체의 구성 성분별로 분석하는 체계적인 분석방법으로 인문과학의 과학적 성격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하학적 도형의 수많은 다양성은 점, 선, 면, 부피와 같은 몇 가지 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 극히 혼잡스러운 요소로 이루어진 물질은 분자, 원자, 소립자 등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러한 분석방법은 거의 모든 자연과학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즉 그것은 태양계의 천체 구조뿐만 아니라,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를 결정하는 데도 사용된다.
과학적 분석의 목적은 단지 어떤 대상물의 구성요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구성형태 또는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자의 화학적 분석은 그것의 성분뿐만 아니라 구조까지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분자성분의 반응은 그들 분자구조의 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과학적 분석은 필수적으로 형식적이거나 구조적이다. 즉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형식적이며 구조적인 성질과 자연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구조분석의 방법은 데카르트류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데카르트의 과학적 방법론의 관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귀납적 일반화의 방법은 베이컨류라고 하겠다. 이들 두 방법론은 현대과학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구조적 분석방법이 귀납적 일반화보다도 훨씬 더 학문적인 탐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면 유클리트의 기하학은 기하학적 대상물의 구조적 분석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 귀납적 일반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화국』에서 플라톤은 도시국가에 대해서 구조적 분석을 시도했으나, 그의 분석이 귀납적 방법에 의해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형상론은 진리와 인식의 구조적 이론이다. 즉 궁극적인 진리의 성격은 구조적이며, 형식 구조적 분석(formal-structural analysis)은 그러한 이해를 위한 핵심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도 훨씬 더 귀납적인 방법을 선호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가장 기본적인 학술적 탐구 방법은 역시 구조분석 방법이었다. 그는 학문적 인식을 본질(essence)에 대한 지적 직관, 즉 형식적 원인 혹은 과학적 대상들의 구조에 대한 인식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의 『시학』은 일반적으로는 시의 구조적 분석과 특수하게는 비극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학』은 일반적으로는 도시국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특수하게는 군주정치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준다. 그의 논리학 논문들은 판단과 추론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주며,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류의 물(物) 혹은 “존재를 위한 존재”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물과 그 본질에 대한 그의 이론은 플라톤의 형상론보다는 훨씬 덜 구조적이다.
귀납적 일반화의 방법은 현대과학의 성립기에, 특히 자타가 공인하듯이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을 주창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창도(唱導)를 통해서 현재의 명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구조적 분석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하르비의 혈액순환론과 같은 그러한 신기원을 이룩했던 발견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더구나 그러한 현상이 지적일 수 있도록 이론적 모델을 구성함으로써 구조적 분석은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의 모태를 제공해 주었다. 귀납적 일반화는 주로 구조적 분석을 위한 부수적인 역할을 제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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