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 ISBN : 9791172133245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5-09-30
책 소개
《말끝이 당신이다》 김진해 교수 신작
“쓰기란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당기는 일”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글을 쓰는 많은 이들은 은연중에 독자를 ‘적’으로 생각한다. 상대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법을 일러주는 글쓰기 강좌와 책이 쏟아지고, 나의 주장과 이야기를 관철시키기 위해 더욱 단단히 논리를 다듬는다. 그러나 언어는 나 하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공존하고 싶다는 메시지”(5쪽)이다.
강의실에서 서로 평어를 사용하는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화제된 언어학자 김진해(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쓰기란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당기는 일”(5쪽)이라 말한다. 이번 신작 《쓰는 몸으로 살기》 역시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둘의 경험’으로서의 쓰기에 주목한다. 언어학자로서 다양한 언어의 본성을 몸의 감각으로 짚어내며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쓰기란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당기는 일입니다.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을 할 때도 종국에는 ‘그러니 제발 나와 함께하자’고 하는 겁니다. 현실의 모순과 갈등에 눈감자는 말이 아닙니다. 친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죠.” _5쪽
그렇다면 이때의 ‘쓰는 몸’은 무엇인가. 고착화된 표현이나 통념 너머 ‘말해지지 않는 것’을 살피는 눈, 나를 둘러싼 세계의 질서와 타인의 흔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섬세한 감각, 내 글에 기꺼이 타자의 자리를 만드는 유연함을 고루 갖춘 몸이다. 동시에 하나의 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새로운 글로 흐르는 몸이다.
저자는 ‘좋은’ 글이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한다. 이렇게 쓰인 글에는 세간의 글쓰기 법칙과 도식화된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언어는 흐른다. 필연적으로 유연하다. 갇히고 고인 말은 생각을 낡게 한다. 쓰는 몸만이 끊임없는 글쓰기를 추구한다. 20년 넘게 언어를 탐구하고 글쓰기를 가르쳐온 저자는 글쓰기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담아, 낡은 말을 깨부수고 새로운 말의 세계로 나아가는 법을 일러준다.
“글을 쓰다 보면 예의를 지키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자세, 단호하면서도 정중한 자세,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을 가지려는 자세,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현실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자세, 온갖 변수를 고려하면서도 길을 찾아내는 자세를 갖출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글 쓰는 용기를 잃지 마세요.” _104쪽
“내 몸에 타인의 시점을 새겨본 사람만이
마음을 움직일 단 하나의 문장을 빚어낼 수 있습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법에 대하여
이 책은 총 4개의 부로 구성되어, 순차적으로 글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쓰는 몸’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 먼저 1부 ‘당신에게는 어떤 문장이 있나요’에서는 쓰는 몸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들이 담겼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힘을 빼는 중요성을 말한다. 마치 합기도를 할 때 힘을 빼야 상대의 움직임을 받고 나의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듯, 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문장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목에 핏대를 올리고 소리치는 글은 진부하고 시끄러워 독자에게 가닿지 않는다. 이처럼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열어, 내 삶에서 주제와 글감을 끄집어내 좋은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사고법을 풀어낸다.
2부 ‘좋은 글은 어떻게 구성될까요’는 글의 구성과 문장의 표현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간다. 자신만의 새로운 정의를 곁들여 시점, 문체, 묘사, 감정 표현, 문장의 길이 등 글을 구성하는 각 요소별로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감정이입과 공감을 구분하며, 감정이입은 “내 몸에 타인의 시점을 초대하는 것”(92쪽)이기에 타인과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공감은 내 입장을 지키면서 상대의 감정에 동의하는 것이기에 불화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라 정의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글, 새로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나를 지키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본능을 이기고 기꺼이 나를 탈피해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러분은 누구의 눈으로 이 세계를 보고 있나요?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요? 타인의 자리에 앉아봐야 자기 자리를 알게 됩니다. 그런 사람만이 사물의 시선으로 문장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마음을 움직일 단 하나의 문장을요.” _92쪽
3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써볼까요’는 은유, 환유, 의인화 같은 기법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법을 일러주면서, 언어의 불합리성과 인간중심적 특성 등 말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로 심화해 나아간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어 필연적으로 불합리하다. 일례로, 환유적 표현 ‘빵을 굽다’는 사실 틀린 말이다. 우리는 사실 밀가루 반죽을 구울 뿐이고, 그 후에야 비로소 빵을 손에 넣는다. 저자는 언어가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벗어나자고 하며, 이 언어의 자유로운 불합리성에 기대어 누구나 세상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마지막 4부는 쓰기가 언제나 ‘나’를 뛰어넘는 행위라는 관점에서, 활자를 통해 타자 그리고 세계와 연결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읽고 쓰는 즐거움은 “타인의 몸과 시선으로 세계를 만나는”(252쪽) 것과 맞닿아 있으며, 쓰기는 마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의 개수를 늘리는 일과 같아서 궁극적으로 나를 넓히고 확장시킨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글 쓰는 사람도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관조하는 삶이 아닌, 행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중략) 인과관계나 논리가 아닌, 예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는 겁니다. 그게 인간의 능력이니까요. 아무 목적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세요. 그런 사람이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_245쪽
“저는 글쓰기를 말하지만, 실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
유연한 삶의 태도를 위한 쓰기법
2024년 11월, 전국 60여 개 대학 4000여 명의 교수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중 김진해 교수가 쓴 ‘경희대 시국선언문’이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선언문은 사회 구조나 외부 상황에 강하게 문제 제기하는 통상적인 선언문(대자보)의 문법을 따르는 대신, ‘나’의 취약성을 고백하는 담담한 성찰적 어조의 문장에서 출발했다. 1인칭 문장들은 ‘당신과 함께’,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으로 뻗어 나갔다. 저자의 글쓰기 철학이 그대로 투영된 이 선언문은 학내·외 많은 동료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고, 좋은 어른과 더 나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렇게 이질적인 종이 만나고 뒤엉키고 부딪치면서 공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왜 글쓰기만은 ‘잘 정리된 하나의 생각’을 담으라고 할까요. 안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_294쪽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예측 불허의 시대에 점점 더 나의 것을 지키고 내 편끼리 뭉치려는 마음을 갖기 쉬워지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꾸로 ‘기꺼이 이질성을 초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마치 자연 생태계가 단일종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다양한 개체가 관계를 맺고 서로가 서로에게 ‘오염’되면서 공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에게 이 거대한 공생의 매커니즘은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 사회 그리고 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저자는 “좋은 글은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협력하고 공생하는 글”(298쪽)이며, 쓰기의 묘미는 “쓰고 나서 쓰지 않은 게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쓰지 않은 걸’ 다시 찾아 쓰고 나서도 여전히 미처 다 쓰지 못한 게 남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다 썼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하지 않는 것”(274쪽)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글쓰기에 관한 저자의 사유는 ‘단 하나만 맞다’라는, 허구에 가까운 단일성과 정확성이 아닌 ‘서로 다르나 모두 맞을 수 있다’는 부드러운 가능성과 다양성으로 모아진다. 이 책은 진정한 어른의 소통법으로 글쓰기를 권하며, 나의 이야기를 외치는 데에 혈안이 된 시대에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타자와 눈을 맞추는 수용과 공생의 자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언어(말과 글)는 세계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 아닙니다. 언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언어는 세계를 일정한 시선으로 이해하는 틀을 제공합니다. (중략) 세계를 형성하는 힘을 가졌기에 내 글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새롭게 재구성되는지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가 달라지면 현실에 대한 이해도 달라집니다.” _205쪽
목차
프롤로그: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글쓰기
1부 당신에게는 어떤 문장이 있나요
타자와 공명하는 작업
표현이 말하지 않는 것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쁜’ 글이 남는다
무엇이 글이 될 수 있는가
주제는 선명하지 않을수록 좋다
부록: 글감을 잘 풀어내기 위하여
2부 좋은 글은 어떻게 구성될까요
더하기와 빼기의 미학
내 몸에 타인의 시점을 새기는 일
문체, 삶이 빚어낸 양식
경험을 낯설게 번역하기
세계와 감응하는 단 하나의 문장
어떤 장면은 자꾸 나를 잡는다
‘적확한’ 단어 찾기
내 글을 정박시키는 법
‘쓰기 싫다’에서 출발하는 쓰기
글도 분갈이가 필요하다
부록: ‘인간적인’ 글쓰기를 위하여
3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써볼까요
시간의 두께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힘
나는 보았지만 독자는 보지 못했다
새로운 말의 세계로
불완전하다는 자유
나로부터 출발하는 언어
감정은 피부 밖에 있다
부록: 나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잘 전하기 위하여
4부 쓰는 듯 살고, 사는 듯 읽으세요
몸으로 새긴 감수성
타인이 되는 즐거움, 나를 내놓는 간절함
책이 나를 통과할 때
반복의 발견
삶의 축을 세우는 일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이질성을 초대하는 글쓰기
‘다른 몸’의 감각으로
에필로그: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저자소개
책속에서
글을 쓸 때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나는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가’를 검토해보세요. 무작정 쓰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나 선택이다. 감춰진 게 더 없을까?’ 하고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가시적인 말을 불신할 때 새로운 말이 튀어 오릅니다.
글 쓰는 목적을 ‘순수하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랑과 연민, 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하는 걸 글 쓰는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내 진실에 다가가기. 내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기.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써서 내가 다른 뭔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고 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