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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국도풍수론과 정치이념

고려 조선 국도풍수론과 정치이념

장지연 (지은이)
  |  
신구문화사
2015-06-30
  |  
2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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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국도풍수론과 정치이념

책 정보

· 제목 : 고려 조선 국도풍수론과 정치이념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고려시대
· ISBN : 9788976682116
· 쪽수 : 352쪽

책 소개

역사문화연구총서 시리즈 열여덟 번째 책으로, 고려·조선 시기를 볼 수 있는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수도(首都)를 선정하고 이를 운용하는 것에 대한 풍수론을 국도풍수론으로 지칭하고, 신라 말부터 조선 초까지 그 논의와 실천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다루었다.

목차

머리말 5

서론 11

제1장 고려전기 국도풍수론의 형성 29
1. 신라 말 풍수설의 성격 31
2. 태조의 풍수설과 국도풍수의 형성 48
1) 태조의 풍수설 활용 48
2) 훈요십조와 국도풍수 56
3. 태조~현종대 국왕의 순주(巡駐) 82

제2장 고려중기 국도풍수론의 전개 99
1. 정종~인종대 태조 현창과 국왕 순주의 의례적 기능 101
1) 정종~숙종대 서경 순주와 남경 건설 101
2) 예종~인종대 대외질서와 국왕 순주의 변화 117
2. 의종~무신집권기 국왕권의 축소와 경(京)의 위상 127
3. 국도풍수의 신비화와 그 논리 139
1)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과 왕업연장론 139
2) 산천신앙과 지덕쇠왕론(地德衰旺論) 146
3) 남경 건설과 단군 인식 149
4) 형세론과 물형론 157
4. 국도풍수에 대한 비판과 그 한계 162
1) 문풍의 고조와 비판론의 대두 162
2) 비록(秘錄) 정비와 지리지식 확산 165
3) 도교의 도입과 성행 168
4) 국도풍수 비판의 한계 175

제3장 고려후기 국도풍수론의 변화 183
1. 원간섭기 국도풍수의 굴절 185
2. 고려 말 ‘천도론’의 대두와 군신 갈등 201
1) 공민왕~우왕대 천도론의 대두와 성격 201
2) 공양왕대 연복사 중창과 한양 순주 232

제4장 조선 초 국도풍수론의 퇴조 251
1. 한양천도와 고려 국도풍수 253
1) 고려 국도풍수의 영향 253
2) 국도풍수의 새로운 흐름 266
2. 도참서(圖讖書) 금지와 지리서(地理書) 정비 281
1) 도참서 금지 과정 281
2) 지리서의 정비 289
3) 새로운 지리서의 특징 295

결론 305

참고문헌 323

찾아보기 335

저자소개

장지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하고 대전대학교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한양과 고려의 개경을 중심으로 수도 계획을 연구해 왔으며, 언어와 의례, 이념을 통해 공간의 역사성을 살피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 황도 개경』 (공저),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 등과 어린이책 『마주 보는 한국사 교실 5』, 『질문하는 한국사 3 조선』, 『세종로 1번지 경복궁 역사 여행』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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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개념정의
지리(地理), 감여(堪輿), 지술(地術), 음양술수(陰陽術數)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려왔던 풍수(風水)는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지었다고 전하는 『장서(葬書)』를 통해 땅을 살펴보는 방법, 혹은 학문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어휘로 자리 잡았다. 이는 본래 ‘풍수’와 ‘지리’로 각각 단독으로만 쓰였고 ‘풍수지리’라고는 쓰이지 않았지만, 이병도가 이를 ‘풍수지리(風水地理)’로 지칭하고 ‘지리관상학’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풍수지리’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풍수에서는 땅의 생기(生氣)가 밀집한 곳에 주택이나 무덤을 위치시킨다면 인간이 좋은 생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땅의 생기, 즉 지기(地氣)에 사람이 감응한다는 논리는 동기(同氣)를 매개로 한 땅과 사람 사이의 유기체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 감응의 원리는 『주역(周易)』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바탕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나 입지관은 어느 사회, 어느 종족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 모든 것이 풍수라 할 수는없다. 엄밀히 말할 때 풍수는 기(氣)를 매개로 한 유기체적 관계에 대한 전제, 『주역』 및 음양오행설에 따른 논리를 갖추고 그와 관련된 언어로 표현된 것만을 가리킨다.
풍수는 기(氣)를 핵심적 매개로, 사람의 운명과 발복(發福), 화란(禍亂) 등을 예언한다는 점에서 신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신비적 논리와 함께 풍수는 당대인들이 자연에 대해 인식하고 공간을 선정하고 운용하는 사고체계이기도 하다. 신비적 논리체계가 현실적으로 부합하는지 여부는 신앙의 차원이지, 학문의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근대 이전 사람들의 지리관으로는 주목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성행하였기 때문에 전근대 시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연관 및 지리관으로서 연구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연관과 지리관으로서 풍수를 주목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는 과거 사람들의 지리관이 한자(漢字)에 기반한 풍수적인 언설 아래 제 모습이 감추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간의 인식과 사고체계는 언어를 통해 성립하고 이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나는 만큼, 고유의 자연관이 존재하였어도 이는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 안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대(漢代)에 양기풍수(陽基風水)와 음택풍수(陰宅風水) 및 이법(理法)과 형법(形法) 등의 기초적인 체계가 갖추어진 풍수는, 우리나라에서 늦어도 삼국 시기부터는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주변 사회에 비할 때 매우 이른 시기부터 풍수의 영향을 받은 데에다가 한자 문화권에 속하며 공식적인 기록들이 모두 한자로 작성되었다. 이 때문에 고유의 자연관이나 지리인식이 한자로 기록된 풍수적 언설 속에 가려지기 쉬웠다.
또한 현대는 여러가지 다양한 인공적 가시물들이 존재하고 지질(地質), 지층(地層), 고도(高度), 식생(植生) 등 지리환경을 서술할 수 있는 다양한 단어와 개념들을 가지고 있지만, 전근대시기에는 산(山)과 하천(河川)이라는 단순한 가시적 요소 외에는 해당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를 가지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 역사 속의 자연관이나 지리인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풍수적 언설 이면에 그것이 지칭하고 있는 내용을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머리말
이 책에서는 수도(首都)를 선정하고 이를 운용하는 것에 대한 풍수론을 국도풍수론으로 지칭하고, 신라 말부터 조선 초까지 그 논의와 실천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다루었다. 수도는 국가나 왕실 권력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실천하는 장소로서, 국도풍수는 그러한 권위를 표상하여 중앙부터 말단까지 계서적(階序的)인 통치체제를 구축하게 한 원리였다. 특히 고려시기의 국도풍수는 태조 왕건이라는 상징과 결합하여 매우 중요한 정치적 상징이자 이념으로 기능하며, 국가 체제를 구축하는 데 활발히 활용되었다. 정치이념으로서 국도풍수는 정치 상황과 조건, 정치 주체의 사고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하였으며, 이는 정치사적으로 또 사상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전근대 시기 수도계획에 대해 관심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석사과정 때부터였다. 다른 것도 아닌 수도계획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단지 옛 서울의 모습이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리 역사에서 서울이 지녀온 특별한 위상에 비할 때 그 기능과 상징적 의미 등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은 너무 작았다. 오감으로 추체험이 되는 공간을 형식적인 언어로 재기술하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눈에 보이지 않는 당대 사람들의 생각의 방식을 드러내고 싶었다. 국왕이 거주하는 서울은 당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이었을지, 그것이 서울에 어떠한 위상과 역할을 부여하고, 현재 우리 삶에 어떠한 궤적을 남기고 있는지가 궁금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국가 질서의 정치공간적 정점이자 구심으로 수도가 작동하였던 당대의 방식을 탐구하여, 그를 통해 국가의 정치이데올로기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는 당대의 정치이데올로기로서 풍수와 성리학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 그것이 상징적으로 구현되는 의례에 대해서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박사논문은 그 결과물로서, 우선 그 주제와 소재를 국도풍수로 압축하여 고려의 국도풍수가 고려 시기 내외의 조건에 조응하여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성리학과 접변하며 어떻게 극복되었는지를 탐구하였다. 고려의 국도풍수가 ‘태조유훈(太祖遺訓)’으로서 강한 정치적 구속력과 상징성을 갖춘 이데올로기였다면, 조선의 한성은 고려의 개경과 국도풍수, 태조 왕건의 상징성으로부터, 한편 영향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리학을 통해 극복하면서 성립된 장소였다.
이같은 결론을 얻기까지, 고려 초로 거슬러 올라가 사료를 보고 연구를 하면서, 때로는 역량의 한계를, 때로는 여러 선입견의 벽에 부딪혀 매우 힘이 들었다. 과연 공간을 통해 정치이념과 그 재현을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근대 도시와 수도를 보는 시각을 벗어나 전근대 시기의 ‘수도’를 당대의 맥락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설명이 단순히 소재 하나를 더 넣어 휘젓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 서술의 시야를 새롭게 틔우는, 의미있는 방식이 될 수 있을지 등이 항상 고민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고민을 넘어 한 단계 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지만, 동아시아 사회에서 ‘수도’를 통한 과거로의 접근은 ‘근대’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작업과는 달라져야 하며, 이러한 다른 방식을 통해 당대인들이 국가의 질서와 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와 조선의 수도가 당대의 정치이념 속에서 국가 질서와 ‘천하’의 공시적, 통시적 질서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았는지를 확인하고, 당대인들의 심상 속의 체계를 규명하는 것이 향후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분야와 시기적 경계를 넘나들며 고민하였던 그간의 어려움이 마냥 헛것은 아니었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곤 한다.
모자라나마 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여러 은사님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궁궐과 수도 분야의 전망을 열어주신 한영우 선생님, 조선 시기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주셨던 정옥자 선생님, 능력은 생각도 않고 일을 벌인 제자도 마다하지 않고 품어주신 김인걸 선생님께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고려 시기를 볼 수 있는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병헌 선생님과 모자란 논문이 되지 않도록 심사 때 성의를 다해주신 노명호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노태돈 선생님 역시 크나큰 학은을 베풀어주셨고, 이익주 선생님은 주제에 대한 조언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다.
학자라는 존재는 사실 이기적인 인간형이다. 그럼에도 그런 모자람을 지켜봐주시는 부모님과 시부모님, 늘 격려해주는 남편, 항상 자랑스러워해주는 아들은 든든한 후원군이다. 나의 가족들에게도 이 책이 즐거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간행을 허락해주신 역사문화연구소와 신구문화사에 감사드린다. 인문학이 상아탑을 벗어나 대중과 흥청대라고 강요받는 한편, 상아탑 자체는 무너지고 있는 이 어지러운 시대에도, 묵묵히 이러한 작업을 지속해오신 열정에 존경의 말씀을 올린다. 이 책이 역사문화총서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15년 5월
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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