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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 이야기
· ISBN : 9788976682352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5
1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김명국의 <달마상> 11
- 옛 그림의 색채 26
2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33
3 꿈길을 따라서
안견의 <몽유도원도> 53
- 옛 그림의 원근법 79
4 미완의 비장미
윤두서의 <자화상> 85
5 음악과 문학의 만남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109
- 옛 그림의 여백 132
6 군자의 큰 기쁨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139
7 추운 시절의 그림
김정희의 <세한도> 153
- 옛 그림 읽기 175
8 누가 누가 이기나
김시의 <동자견려도> 181
9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199
- 옛 그림 보는 법 216
10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
이인상의 <설송도> 223
11 노시인의 초상화
정선의 <인왕제색도> 241
- 옛 그림에 깃든 마음 265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린 이와 그려진 이가 하나
눈처럼 흰 화선지가 펼쳐져 있다. 옆에는 검은 먹물이 담긴 벼루와 그 농담을 조절하기 위한 빈 접시 하나, 그리고 붓 한 자루가 있다. 화가는 한참 동안을 텅 빈 화면 속에서 무엇을 찾는 것처럼 가만히 쏘아 보고만 있다. 이윽고 붓대를 나꿔채어 하얀 종이 한복판에 옅은 선을 빠르게 그어 나간다.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 한 눈,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한 일 자로 꽉 다문 입, 턱선을 따라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을 거침없이 그어댄다. 구레나룻 선을 쳐나갈 때는 마치 한창 달아오른 장단에 신神이 들린 고수鼓手처럼, 연속적으로 퉁기듯이 반복하면서 묵선을 점점 더 길게, 점점 더 여리게 조절하여 붓에 운율을 실어 풀어놓았다. 끝으로 이마와 뺨의 윤곽선을 긋고 나자 미묘한 표정의 달마가 확실하게 떠올랐다.
아마 붓을 종이에 대기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예리한 붓끝으로 빠르게, 그러나 약간은 조심스럽게 몇 줄의 먹선을 그은 게 다지만, 이로써 달마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얼굴에 만족한 화가는 이제 좀 더 호기롭게 가사袈裟로 갖춰진 몸 부
분을 그리기 시작한다. 진한 먹물을 붓에 듬뿍 먹여 더 굵고 더 빠른 선으로 호방하게 쳐나갔다. 꾹 눌러 홱 잡아채는가 하더니 그대로 날렵하게 삐쳐내고, 느닷없이 벼락같이 꺾어내서는 이리 찍고 저리 뽑아낸다. 열 번 남짓 질풍처럼 여기저기 붓대를 휘갈기고 나니 달마의 몸이 화면 위로 솟아올랐다. 달마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가슴 앞에 모았다. 윗몸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세는 분명 앞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었다. 다시 화면을 지그시 바라본다. 구레나룻 오른편 끝이 두포頭布의 굵은 획과 마주친 지점에 먹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슬쩍 붓을 대어 위로 스쳐준다. 훨씬 좋아졌다. 다시 구레나룻 아래 목
부분에 날카로운 붓을 세워 가는 주름을 세 줄 그려 넣었다. 이제 달마의 얼굴과 몸은 하나가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끝으로 달마의 얼굴 앞쪽 화면 가장자리에 기대어 ‘연담蓮潭’이라는 자신의 호號를 휘갈긴다. 글씨 획은 그림의 선과 완전히 꼭 같은 성질의 선
이다. 빠르고 거침없는 그 획들은 그려진 달마와 그린 사람이 하나임을 말해준다. 인장印章을 찾아 누른다. 화가의 호와 이름이 선홍색 인주 빛깔에 선명하다. ‘연담蓮潭’ ‘김명국인金明國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