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메리카사 > 중남미사
· ISBN : 9788976828798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4-10-2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별일 아닌 듯 살아가는 커피밭 사람들, 그 후 7
프롤로그 | 오래전, 커피밭 사람들 19
몬타냐 19
커피밭 사람들 23
타라수 28
프레디 부부 36
페레스 셀레동 42
엘레나와 기예르모 45
그들의 이야기 47
제1부 | 도냐 베르타 이야기 51
타라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란 52
도냐 베르타의 마지막 봄 55
당부 58
커피 파이오니어 60
커피를 세상으로 실어 내는 일 65
도냐 베르타의 산호세 67
타라수에 서늘한 비가 내리면 69
도냐 베르타의 파라다이스 72
플로리다에서 사 입던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도냐 베르타의 속마음 75
막내딸, 쟌시 79
돈 나랑호 82
금빛 발자취 85
제2부 | 로사 가족과 파니 선생 89
대서양 연안에서 온 가족 91
이들 가족에겐 추위가 문제였다 96
아버지 디모데 98
엄마 로사 99
제세니아 101
오라비들 104
가장 디모데의 구직 106
로사의 절규 109
제세니아, 아니 에릭카 114
파니 선생 118
그녀가 감수해야 했을 시선들 120
토요일 저녁, 타라수 성당 앞 124
그들만의 술집, 주가 132
파니 선생의 딸 136
제3부 | 엘레나 가족 이야기 143
어서 부활절이 되었으면 147
다시, 또 하나의 슬픔 150
기예르모를 가둔 집 152
엘레나의 가게 157
가장 기예르모의 한턱 163
‘사고당한 것이 천만다행이지’ 167
엘레나의 내공 170
희한한 셈법 173
이 가족의 엥겔지수 175
어느 해, 엘레나의 생일 178
살림의 법칙 185
모터 바이크 쇼의 VIP 191
이들 부부의 꿈 193
아들 저스틴 197
제4부 | 안토니아 이야기 201
세상의 끝, 푸에르토 히메네스 205
남편, 산티아고 210
가족들 214
디에고 217
세일링의 애인 220
프레디의 우물 223
프레디 소식 225
자신이 유령 같다고 했다 227
세일링의 가족 235
제5부 | 세일링 이야기 239
세일링의 용기 240
오빠, 디에고 243
아빠, 프레디 247
제6부 | 그 후 20년 251
안토니아 가족 2023년 251
엘레나 가족 2023년 272
도냐 베르타 가족 2023년 290
프레디 2023년 295
에필로그: 커피와 여전히 닿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삶 305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유명해진 타라수는 그야말로 커피의 고장이었다. 소읍에 불과한 이곳 타라수에서 생산된 커피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게다가 오랜 시간 유럽과 일본이 거대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와중에, 이곳 커피가 우리나라까지 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귀한 커피일수록 여느 첨가물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선 불문율이었는데 정작 이곳 타라수에서 한평생 커피와 함께한 사람들은 헝겊에 걸러 내린 커피에 늘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어 마셨다. 도냐 베르타 역시 늘 당신의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혹은 허름한 식당이라도 식탁 위에 반드시 설탕통을 둬야 하는 곳이 바로 코스타리카였다. 굳이 뜨겁지 않아도 괜찮았다. 헝겊 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리는 와중에 식기도 했지만 식사를 위해 커피를 미리 만들어 주전자에 담아 두었으니 어지간해서는 뜨겁기도 어려웠다.
오래전, 코스타리카에서 생산된 고급 커피를 모조리 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자국민에게 고급 커피 마시는 것을 금했던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이곳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커피는 섬세한 취향을 좇는 기호식품이라기보다는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을 먹듯 그들은 식사 때마다 커피를 마셨고, 힘든 일을 하며 노동주를 마시듯 일 중간중간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는 매 순간 주전부리 간식을 챙기듯 커피를 마셨다. 휴식을 위해서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도 커피를 마셨다.
로사의 남편 디모데는 아무리 봐도 가족들을 이끌고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가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늘 머리가 아파 어두운 축사에 갇혀 지내는 아내 로사에 비해 허우대와 차림새가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매일 같이 커피 수확 작업을 마치고 나면, 늘 단벌 외출복을 차려 입고 다운타운으로 나섰다. 애석하게도 타라수의 서늘한 날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름옷이었지만, 해 질 무렵의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 가족에겐 타라수의 추위를 견딜 만한 옷이 애초에 없었다.
신사복 바지와 반팔 남방셔츠를 단정히 차려 입고 나서는 그의 모습은 빛도 들지 않는 축사에 남겨진 가족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커피밭 일이 끝나는 오후가 되면 아픈 아내를 대신하여 축사 안의 일을 돌보거나 하다못해 땔 감이라도 마련하면 좋으련만, 그는 늘 한 벌뿐인 신사복 바지와 반팔 셔츠를 차려 입고 서늘한 다운타운으로 길을 나섰다. 어쩌면 그때가 그의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무지 아버지의 인물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아들들은 그렇게 길을 나서는 아버지를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감히 그를 따라나서는 자식은 없었다.
‘세쌍둥이’라는 상호를 걸고 연 가게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게가 망한 이유로 기예르모 가족의 입을 핑계 댔다. 그들이 먹어 치우는 것이 그들이 파는 것보다 많았다는 것이 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안다. 걷지 못해 고립된 기예르모를 위해 가게를 내고 일 년 남짓 그 가게를 운영했던 시절이 이 가족에 게는 또 한 번의 호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가게를 하는 동안 엘레나가 내게 여러 번 한 말이 있다.
“몬타냐, 가게를 해 보니까 참 좋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게다가 우리가 다른 가게에서 사 먹어야 하는 돈보다 훨씬 싼 돈으로 같은 것들을 먹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많이 안 팔려도 괜찮아. 여기 이 가게에 있는 것들은 다 우리가 먹고 쓸 수 있는 것들이니까.”
참으로 희한한 셈법과 경영 방식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 저녁을 먹다가 가장 기예르모가 가끔이지만 호기롭게 감자튀김 한 봉지라도 쏠 수 있었으니, 그리고 때론 팔려고 냉동고에 얼려 둔 닭도 꺼내서 요리해 먹을 수 있었으니 언젠가 이 가족들은 세쌍둥이 가게 시절을 분명히 아름다운 시간들로 기억할 것이다. 망한 것이 아니라 세쌍둥이 가게 덕분에 그들 삶 가운데 한 시절을 아주 풍요롭게 보낸 것이라고,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