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79735840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2-10-25
책 소개
목차
시작하며
[부산진은 어디일까?]
부산진구에 부산진이 없다!
‘부산진’은 어디입니까?
고지도 속의 부산진
옛 사진 두 장으로 보는 부산진
부산진이 나누어지다
부산진 과선교에서
[자성대에 뒤엉킨 부산진 흔적]
부산진의 상징, 영가대
자성대와 부산진성
여전히 남아있는 왜성
진남대(鎭南臺)와 천장군기념비
신령스러운 곳, 최영장군비각
독립운동가 박재혁을 아시나요?
[부산진 사람들의 의로운 삶과 죽음]
임진왜란 부산진성 전투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의로운 죽음, 정공단
인류애를 유감없이 보여준 매견시
매견시의 두 딸, 매혜란과 매혜영
독립운동가 정오연의 생가에서
또 다른 의로운 죽음, 순교자 데이비스
부산진일신여학교
담장 갤러리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
안용복도 부산진 사람
의로운 삶의 표본 최천택 선생
증산공원에 올라 부산항을 바라보다
[민족 운동의 진원지, 구포]
구포라는 이름
구포역에서 격세지감을 느끼다
구포만세거리를 거닐다
구포만세거리에서 3.1운동 속에 빠져들다
3.1운동 기념비가 있어야 할 곳
구포의 상징, 구포시장
금빛노을브릿지를 거닐다
의성산의 구포왜성
북구빙상센터 2층 전망대에 서서
[숨은 감동이 있는 곳, 만덕]
만덕사지 3층 석탑
만덕사지를 거닐다
만덕사지에 대한 작은 고찰
부산만덕사지의 가치
병풍암 석불사를 향하여
석조건물 대웅전, 칠성각
병풍사의 석불 세계
지하통로를 개방할 수 있으면?
저자소개
책속에서
부산진구에 부산진이 없다!
‘부산진구(釜山鎭區)에 부산진(釜山鎭)이 없다!’는 말의 뜻을 아는가? 처음 듣는 사람은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의아하게 여기겠지만 한때는 심심찮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말이다. 즉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라는 행정구역 안에는 ‘부산진(釜山鎭)’이 없다는 뜻이다. 부산진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해안 군사 진영을 의미하는데, 그 진영이 있었던 위치가 지금의 부산진구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부산진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부산진(釜山鎭)은 지금의 동구 좌천동과 범일동에 해당하는 해안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발달과 함께 해안 매립이 이뤄지면서 해안선이 많이 달라진 지금은 그 정확한 위치마저도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부산진구는 해안선을 조금도 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면 어째서 부산진이 있던 곳이 동구가 되고 부산진구라는 지명은 다른 지역에 사용되었을까? 왜 부산진이라는 이름을 지역에 맞게 제대로 살리지 못하였을까?
이는 지명을 사용할 때 행정 편의적으로 방위를 우선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커져 나오면서 구(區) 제도를 처음 시행할 때 중구, 서구, 영도구, 동구, 부산진구, 동래구라는 6개의 구가 만들어진다. 이때 동구의 범위는 지금의 초량 지역과 함께 부산진 지역을 포함하게 된다. 그런데 초량과 부산진을 아우르는 지역에 어울리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통상적으로 해오던 방위 지명, 즉 동구를 사용해 버린 것이다. 부산진이라는 지명과 지역성이 엄연히 있었지만 아쉽게도 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부산진구라는 이름은 다른 가까운 지역에서 사용하게 된다. ‘부산진(釜山鎭)이 없는 곳에 부산진구’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이해가 안 되는 어색한 지역명이다. 그래서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부산진이라는 이름을 달리 보아야 하는 면도 있다. 처음 부산진의 위치는 동래부 소속의 진(鎭)으로서 당연히 부산진성이 있는 곳이었다. 든든한 성벽과 함께 성안에는 많은 관아시설이 있어 누가 보아도 그 위치를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진(鎭)의 기능은 사라지고, 성벽도 점차 없어지고 관아도 해체되어 가시적인 구조물이 사라지면서 부산진도 없어지는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성이 있던 곳과 성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산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동래와 초량을 오가는 길목이었기에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장소였고 오히려 상업이 발달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어 갔다. 시간이 갈수록 주민의 수는 많아졌고 그 범위도 넓어졌다. 그리하여 부산진은 진(鎭)과 성(城)은 없어졌지만 부산진 지역이라는 지역성을 유지한 채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부산진을 진(鎭)이 있던 장소로 한정하여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진(鎭)이 있던 지역을 넘어 더 넓은 지역을 포괄해야 한다. 그 범위를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부산진 지역의 일부가 지금의 부산진구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감안한다면 ‘부산진구에 부산진이 없다’는 말은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겠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부산진구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까닭일까? 한때의 논란을 넘어 지금 부산 사람들은 ‘부산진(鎭)이 없는 부산진구’이긴 하지만 부산진구라는 이름을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다. 아무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60년을 넘게 사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