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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79736014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3-02-2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김시습 단상
홍도紅島
한강 잠수교
그곳에 백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봄날
광장
아프간, 달빛
천국의 아이들
사춘기
유리의 얼굴
전자레인지
늪
거미, 어둠에 들다
사월의 날개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제2부
종소리
붓순나무의 기척
봄날은 간다
낙타의 하루
대륙의 비명
사육
터미널
마네킹
풀벌레 숨결로 걸음걸음
내시경
가시
끗발
펄 파라다이스
백설기
뱀, 시멘트
제3부
합창
기묘한 음악
장사도
물개의 하루
장어 할머니, 그리고 왈츠
구애
뱀에게
코뚜레를 벗다
통밀커피쿠키 혹은 게리쿠퍼
킬힐
펜촉
악어, 독백
백양산 근처
애월, 밤바다
달콤한 광장
제4부
물
나팔수
고양이 제삿밥
블랙
앵무새
철사
뭉툭한 손
늦가을
흰 새
오빠가 왔다
아버지의 장례식
미망
희영에게
화장
해설
모순의 이중주와 거리 두기의 태도/손남훈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책의 행간을 나오셨습니다
새벽길 걷는 님의 발자국
적막이 따라갑니다
변방의 바람은 칼날입니다
하루에도 몇 달의 목이 잘려나갑니다
바닥을 모르는 불나비 휘청거립니다
나라 근심 세금 걱정
님의 시름 천 리를 달려옵니다
차고 기우는 것조차
시작과 끝이 없다 하셨습니까
관 뚜껑 덮고서야 절개가 드러난다 하셨습니다
대동루의 바람, 한결같은 님의 괘적입니다
정자에서 도연명을 읽는 아침
고요한 생의 틈새로 햇살이 스며듭니다
작설차 한 잔 올립니다
-「김시습 단상」
적막한 마을은 노을에 젖어 있다
낮은 담장을 넘나드는 물살이 발길을 돌려
거대한 성에다 보석을 풀어놓는다
면벽으로 저마다 아픈 얼굴을 지워낸다
수백 년 바람에도 시들지 않는 어린 소나무,
돌 틈새로 토라진 하늘을 붙들고 있다
홍여새가 머문 벼랑의 원추리
물속으로 가라앉는 노을의 흔적을 지워 버린다
해삼 따는 여인들 선착장을 들어 올리고
노적봉 오르는 어부들 파도에 백기를 든다
멀어지는 햇살 털어내며 어깨를 나누는 사이
지친 여름이 망망대해로 섬사람들을 불러낸다
석문 사이로 고깃배가 꿈꾸듯 흘러간다
나는 뱃전에 기대어 휘파람을 분다
물개 바위 등에 앉은 가마우지 손짓하고
육지가 궁금한 해파리
유람선을 따라온다
지도의 반쪽을 업은 사자 한 마리
떠나온 길을 묻는다
달빛 은은한 얼굴들 포구를 빠져나갈 때쯤
어둠에 젖는 연락선
다시 떠나는 꿈들을 싣고 있다
-「홍도紅島」
새벽 세 시
포항 송도의 바다
어둠 저편,
사나운 물짐승이 수평선에서 달려온다
흰 갈기 휘날리며
펄쩍펄쩍 파도를 차고 구른다
그들의 야성 앞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 쓸어올리며 치마를 펄럭인다
해변의 노숙자가 소주병을 들고 외친다
가거라 청춘아
니체의 학설은 믿지 않아
네가 말하지 못한 이데올로기
내가 바라는 생의 평화
한 젊은이가 무모하게 새벽 바다로 뛰어든다
짐승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든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밀렵꾼의 총소리
순간
파도가 잠잠하다
저 멀리 붉게 물드는 수평선
바다에 사는 짐승 한 마리가 쓰러졌다
-「그곳에 백마가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