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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79736083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3-09-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아슬아슬한 밧줄 위에서
이웃/강문출
누가 상어를 데려왔나?/강영환
호수는 오늘도 빨주노초파남보/강정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유전자들/고명자
기어이 막이 오르다/권애숙
그 많던 나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권정일
황사, 안개 잦은 길목에 핀 금계국/김도우
뻐꾸기가 울기 전에 살구는 떨어졌다/김려
너의 고백은 묻힌다/김명옥
홈 비디오/김미령
플라스틱 고래 관찰기/김사리
후회/김석주
17층에서 아이가 떨어지고 있다/김수우
그림자/김영애
들개 그리고 포도밭 사이로 내리는 비/김예강
4월 22일, 기후 진맥 시계/김요아킴
용 다리 불꽃 쇼/김점미
동거인의 이름을 아시나요/김정희
불편하게 살자/김종미
과학의 날/김지숙
빙점 아래서/김참
코타키나발루/김해경
썩을 놈/김형로
꿀벌에게/김혜영
산책 1/류정희
산 정상에 대해/박영
마지막 숨/박재율
5분 거리/박춘석
포옹/배옥주
부고/서유
올해의 날씨/서화성
이 집 왜 이래/석민재
씨앗이 살아왔다/손음
태풍주의보/신선
부메랑/신정민
테러범/신진
기상이변과 블랙먼데이/안민
조용한 오후/원양희
기우제/윤홍조
자기 조직화 개론/이규열
이상한 나라의 장례식/이기록
수몰 지구/이소회
초록, 눈부신 소란/이은주
에어컨을 켜라/이현곤
바오바브 나무의 말씀/이환
아이는 낙원을 꿈꾸었지/이효림
오래된 미래 보고서/장이소
구멍/전다형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정선우
오늘은 다른 나라에서 왔다/정안나
냉동인간/정연홍
서글픈 노래를 불러줘요/정온
냉장고 안, 베란다 밖/정익진
침묵의 메신저/정진경
심판/조성래
극서의 時/차유진
담요/채수옥
하울링/최승아
몸, 폭풍/최원준
북극곰/최정란
아이스크림을 옮기는 북극곰/한보경
4월에 내리는 폭우/황길엽
작품해설(김경복, 문학평론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적 행동
약력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시집은 그들의 간절한 음성과 세계 곳곳에 번져가는 비명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들의 언어이다. 무크지 시움 시인들은 문학이 지닌 예언의 역할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담당하는 문학이 미래를 읽어내는 힘이 없다면,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결단을 위한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다면 문학의 혼은 무엇으로 존재할까. 애초 시는 대자연의 영성이 던지는 말을 받아 적는 번역이 아닌가. 진정한 가치에 대한, 이 시대의 역할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문학은 제 안의 서정에 갇힌 언어의 엄살에 불과하다.
나무도 풀꽃도 메뚜기와 거북이도 펭귄과 거북이도 모두 지쳐 생명의 빛을 잃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저 당혹스러운 이상사태. 불치의 병으로 타오르는 고통. 징조처럼 옮아가는 산불 그리고 점점 고갈되고 있는 물길. 당혹스러운 이 현실이 결국 극단적인 물질사회를 끌고 가는 문명의 결과라니. 내가 매일 쓰는 소비적인 에너지들 때문이라니.
자연을 향한 죄의식과 미래에 대한 부채의식이 늘어간다. 이 빚진 삶의 소용돌이를 어떡할 것인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왜 사람들은 벼랑 끝인 줄 알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가. 문명의 편리 속에 감춰져 있는 파탄의 위기를 왜 감지하지 못하는가. 불편을 선택할 용기는 없는가. 이제 자유도 정의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인류의 선택이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영화 <돈 룩 업>은 기후위기를 빗댄 블랙 코미디이다. 한순간에 멸망하는 혜성 충돌이 다가오는데도 정치인들과 언론인, 기업가들은 제각각 이익을 위한 행보를 보여준다. 그들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올려다보지 말 것을 선동한다. 땅, 발밑만 내려다보라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공존을 향한 어떤 이상보다는 물질적 현실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가 그렇다. 맹수에게 쫓기던 타조가 머리만 모래에 처박고서 이제 안전할 거라고 믿는 발상이다. 인간은 항상 ‘욕망’과 ‘가치’를 양손에 쥐고 갈등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 있는 괴리, 인류의 모든 문제가 이 사이에 있다. 욕망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긴 하지만, 가치는 모든 인류, 모든 생태계가 살아가는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하여 인류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시집은 62명 시인의 절실한 목소리를 담았다. 이 두려움이 불붙은 지구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돌볼 수 있을까. 지구를 식히는 한 방울의 물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를 향한 시인들의 간절한 영혼이 누군가에게 생명의 나룻배처럼 닿기를 기도한다. 아, 우리가 좀 더 용감해지기를. 우리가 좀 더 부끄러워지기를. 그리하여 함부로 된 것들을 포기할 수 있기를, 지극한 겸허와 용기에 도달하기를.
-「들어가며」 중에서
도무지 썩지 않는 놈들이 있다 쓸모가 다하면 썩어 없어져야 하는데 저 혼자 썩지 않는다 썩을 놈들
자본주의가 낳은 불후의 명작 셋,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 이 썩을 놈들이 안 썩는다는 말씀
티티카카 호수에도, 초모랑마 타르초 아래도, 극한의 남극점에도 썩지 않을 불후들 넘친다 인간이라는 썩을 놈 다녀간 곳은 어디든 불후의 천국이다
플라스틱이 흙 되는데 오백 년이라면, 임진년 피난 가며 버린 것이 여태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고 동학 때 묻혔다면 아직 채 눈도 감지 않았다는 것
썩어야 할 것들이 하도 썩지 않으니 말도 바뀐다 썩을 놈 이젠 욕이 아니다 생태적, 지구적 상찬이다
백년도 못가 흙 될 것들이 흙도 되지 못할 것 남긴다
불후로 가득한 창백한 푸른 섬, 썩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다 읽을 이 하나 없이 고요한
-김형로, 「썩을 놈」
수박만 한 우박이
야구공만 한 우박이
아기 주먹만 한 우박이
고양이 눈알만 한 우박이
지구의 머리통들이 깨져도
세계의 유리창들이 박살나도
중동의 오일 쇠파이프가 뚫려도
미래의 사과나무가 찢겨나가도
미국 땅의 회오리는 미국 땅의 회오리
아프리카의 모래폭풍은 아프리카의 모래폭풍
후쿠시마 핵 오염수 마셔도 된다고?
죽나 사나, 사나 죽나 그까짓 것 멸망해 봐야 안다고?
부산 시청 앞마당 초록공원 꽃이 만발 나무는 줄 맞춰 푸르러간다
섬뜩해라, 나비, 벌, 벌레 한 마리 눈 씻고 봐도 없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새들에게 하늘권을 돌려줘라 외치지만
사람들만 발 빠르게 들어간다, 나온다
무슨 약정서처럼
플라스틱 커피잔을 하나씩 손에 들고
그렇다면 하늘 가리는 나무 모가지들을 댕강 쳐내야 한다고?
아파트의 높이는 구름층에 가까울수록 좋다고?
2023. 7. 3.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날로 기록됐다 하는데
대여섯 살 아이가 뙤약볕 아래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데
손바닥에 콩벌레 한 마리 올려놓고 잔지러진다
엄마도 그 누구도 울음을 달래지 못하네
죽은 벌레를 위한 가장 슬픈 장송곡이었네
-고명자, 「지나치게 이기적인 유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