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9736106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09-2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_귀국
제1부
화장지의 무게
독일인과 마스크
니클라스와 코로나19
하임Heim 가족
뽕나무 집
제2부
이스탄불에서 보낸 여름날
벼락 맞아 죽을 놈
당뇨병과 민들레
루디
토끼 사랑
담배꽁초와 코로나19
제3부
기차 소리
길목
치명적인 늦바람
대목장大木匠 오토의 버드나무
제4부
겨울이 지나가는 자리
9월이 오면
언어와 정체성
김치국밥과 라면
나의 생가를 기리며
저자소개
책속에서
B 여사는 9월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소식을 전해왔다.
“우리 함께 도착한 날 만나서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 할 거 아니야!”라는 말로 시작한 후 한동안 소식 전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뒤따랐다. 십여 년이나 연하인 내가 먼저 안부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죄송스럽다고 했다. “너는 바쁜 사람이니까 내가 이해하지! 근무하고 두 아이 혼자 키우고 글 쓰고!”라는 말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B 여사의 목소리는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같은 직장에 도착한 중요한 그 날의 인연을 새삼 상기시키게 했다. 서로의 근황을 짧게 교환하고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하여 만나곤 하였다.
자녀와 남편을 한국에 두고 떠나온 B 여사는 계약기간인 3년이 지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독일에서 줄곧 살아왔다. 그녀는 해마다 그날을 기억하고 햇수를 세며 살아왔다. 덕택에 해마다 9월이면 50년 전 그날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끼리 모여 B 여사의 표현대로 밥을 같이 먹었다.
그런 B 여사가 기억력 상실로 혼자 살 수가 없게 되자, 공공시설에 입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을 했다. B 여사는 벽 쪽에 붙어있는 좁은 침대에 누워있다가 왜소한 체구를 일으키며 “네가 현옥이지?”라고 한마디를 한 후 곧 다시 기억상실의 세계 속으로 돌아갔다.
눈에 익은 긴 장롱이 침대 반대쪽 벽에 붙어있었다. 묵은 살림살이의 일부가 따라와 B 여사를 지켜주고 있었다. 방 한 칸으로 줄어든 삶의 광장에서 희미해지는 옛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물건인 듯했다. 장롱 문을 열어보니 비어있었다. 지난날의 흔적을 알리는 향수냄새가 흘러나왔다.
반세기를 이국땅에 살며 사다 모은 옷을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무용지물인 빈 장롱을 왜 끌어다 놓아 오히려 방을 더 좁혔는지도 묻지 못했다. 혼미한 상태에서 장롱이 따라오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끔 순간적으로 의식이 돌아와 빈 장롱문을 열면 익숙한 향수 냄새가 그녀를 반겨주었을지도 모른다.
이날 동행한 D 여사는 줄곧 B 여사의 손을 잡은 채 앉아있었다. D 여사 역시 같은 날 이곳에 온 분으로, B 여사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짧은 방문시간이었지만 나는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전력을 다했다.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한 달에 한 번씩 B 여사에게 가자고 제안을 했다. D 여사는 그런 비현실적인 제안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불가능한 일이란다. 모두 정년퇴직으로 집에 앉아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근무할 때보다 더없이 바쁜 것은 사실이다.
D 여사의 예언대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고사하고 해가 바뀐 후에도 B 여사를 방문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내가 9월에 고국을 떠났다는 것을 기억나게 하는 일은 부산에서도 있었다. 어느 해 귀국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지하철역에서 나를 알아보고 어깨를 치며 반가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가시나야, 아직 살아있나!”
소식이 없다고 다 죽어 없어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친구는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지하철역 밖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다가 15분만 걸어서 얼마 전 이사한 자신의 아파트로 가잔다. 나에게 줄 것이 생각났다고 했다. 파란만장의 인생살이에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내가 남기고 간 우편엽서를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었단다.
“이렇게 너를 만날 줄을 누가 알았겠어. 이런 일이 있으려고 내가 버리지 않고 보관한 게 아니겠어?”
바다가 멀리 보이는 부산 해운대에 자리한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살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사를 안 하기로 작정했단다. 친구는 혼자 살고 있었다. 남편이 떠나고 자식들이 출가한 후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살기로 했단다.
바다 쪽으로 난 거실문을 열어젖히고 앉으니 정말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누렇게 변한 우편엽서를 들고 나왔다. 나도 기억할 수 없는 내가 손으로 쓴 한 줄의 글이 적힌 우편엽서였다. 잉크빛이 희미해진 상태였다.
나는 그때 만년필로 편지를 썼다!
‘친구야, 나 9월 29일 출국한다.’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내가 사라졌다고 했다.
1970년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며 출국 준비를 했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 말에 출국을 했다. 많은 친구들, 나를 아껴준 은사님들, 그 외 친지들한테 일일이 찾아가지 못하고 우편엽서로 작별인사를 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친구에게 그 이후로 한 번도 편지를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종종 나를 생각했지만 주소를 알 길이 없었다고 했다.
“너는 새 세상에 가서 새 친구를 찾아야 해서 옛 친구는 잊었겠지! 너가 한국에 왔다 갔다는 소식은 가끔 들었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도 “이제는 메일도 있고 국제전화도 쉽게 할 수 있으니 연락하며 살자!”라는 말을 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냉정했다. “뭐 지금 와서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어!” 세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다. 친구는 이미 옛날의 죽마고우가 아니었다. 나는 그 해도 9월 말에 그녀와 헤어져 독일로 돌아왔다.
세월은 흐르고 다시 9월이다. 타향살이 햇수를 세는 것까지 잊어버린 B 여사의 연락이 없는 대신, 올해는 50년이 되는 해라 같이 온 사람들끼리 밥이라도 먹자는 소식이 왔다. 그동안 귀국하신 분, 돌아가신 분 외에도 연락이 안 되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코로나19를 피해 우리집 정원에서 나물 한 가지씩 들고 와서 만나기로 했다. 그때 9월 30일에 도착한 우리에게 다음날부터 독일어 수업을 해주었던 옛 독일어 선생님 부부도 초대했다.
하지만 한동안 수그러졌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한 사람 두 사람 우리의 만남에 오지 않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디 겁나서 바깥에 나가겠냐는 것이다. 다 늙은 얼굴 마주대고 앉아봐야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하면서 이제 우리 모두 코로나19를 피해야 할 나이들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민 50주년 만남은 취소되었다. 나와 D 여사 사이에 그동안 가보지 못한 B 여사를 방문하자는 전화가 오갔다. 우선 담당자에게 미리 전화라도 하여 근황을 알아보고 혹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미리 알려고 전화번호를 찾았다. 적어두었던 전화번호가 없어져 알아봐야겠다고 하던 중에 또 며칠이 지나갔다.
어느새 9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자동응답 전화기의 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B 여사가 8월 말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떠나온 고국을 가슴에 품고 반백 년 살아온 이곳에서의 삶을 쓸쓸히 마감하였을 B 여사….
나는 해마다 9월이 오면 B 여사를 생각하고 이민의 햇수를 셀 것이다. 지난날을 세는 일은 남은 날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B 여사는 줄어가는 남은 날을 보았기에 지난날을 더 이상 세지 않기로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