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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79736120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3-11-16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푸른발부비새
감도 있습니까?
쇄빙선
천측항해
나침반
무중신호
이류무移流霧
모터 탱커 쌍코 프레스티지M/T SANKO PRESTIGE
견습항해사
등대선燈臺船
도버해협
사르가소해
처녀 입항
제2부
흘수선吃水線
태풍주의보
널배
킹스턴 밸브
갱웨이gangway
거멀못
예인하다
나문재
꼼장어
준설하다
깡깡하다
양묘揚錨하다
3등 항해사와 1등 조타수
제3부
8만 마리 물고기가
갯비나리
바다의 무늬를 새기다
심청이 바다
송장헤엄
세월을 뒤집어엎다
바다는 거의 밀물이어서
유조선이 폭발했다
전복
원목선이 뒤집혔다
목선
해녀의 맨살
제4부
구멍 숭숭 바다
달은 바다에서 이지러지고
바다에 회랑을 두르고
몰운대
남외항에 묘박錨泊하다
고래
다대포구에 와서 노을지다
호마이카 바다
오르페우스의 바다
동두말 등대
칠산바다
해설 바다에서 읽는 공空의 지도 _김수우(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섬에 남은 것이라곤 푸른발의
푸른 다리들뿐이어서
푸른발로 부비부비하면서
조난당한 바다의 말씀들이
쌍으로 춤추듯이 뭉그러지고
구름처럼 둠칫거리다가
흩어지지 말자는 다짐으로
사금파리에 가시털이 돋고
꽁지깃에 뾰족부리가 솟고
절름발이 물갈퀴는 뒤뚱거리다가
갈라파고스 제도
습지의 심장들이라서
혓바닥을 발바닥에 맞대기할 때
습윤의 경계들이라서
귓바퀴를 서로의 입술에 꽂을 때
태평양 무풍대에 달뜨고
산크리스토발섬이 발기할 때
바다는 검은 태반으로
배꼽과 탯줄을 다시 이을 때
달아 문 열어라
그림자는 버려두고 오너라
달의 허리가 흔들리는 야한 밤에
푸른발이 부비부비하면서
푸른발부비부비하면서
―「푸른발부비새」
골짜기에 숨은 항구
무스카트 앞을 지날 때부터
페르시아만으로 접어들기 전부터
유조선은 등화관제를 했다
걸프전이 한창이었고
공중을 난무하는 초단파 통신은
“감도 있습니까?”
미래의 안녕을 호출하는 게 아니었다
인도양 산호충의 뿌리가 뽑혀나가고
상층대기권이 뒤집어졌다
전파의 통달거리는 늘어났지만
뱃놈들은 브릿지에서 더 외로워졌다
호르무즈 해협이 목을 누르고 있었다
포경선의 갬Gam*처럼
불통의 낱말들이 건네졌다
뭍에서 밀려난 자들 사이로
절름거리는 말들이 오갔다
뱃놈들의 귓바퀴가
새된 소리를 감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바다를 배회하고 있었다
감도가 감도를 묻고 있었다
여기는 서아시아의 바다인데
메두사의 뗏목이 떠다니고 있었다
메카 순례 항로가 폐쇄되었다는
급전이 날아다녔다
“감도 있습니까?”
미사일이 아라비아 갯골을 파고들고 있었다
―「감도 있습니까?」
* 갬Gam: 두 척 이상의 포경선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교적 교류.
바다는 방향을 모르네
풍배도*의 장미 화살로
바람을 가늠해 볼 뿐
어차피 항해는 추측으로 하는 거지
자유롭게 떠 있어야 하는데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몰라 떨다 보면
국자가 남쪽을 가리키기도 하지
매생이 떠다니는 바다는 미끄러운 녹색
사막의 수반에 별을 띄우고
달의 방위를 지우면
바다는 말 더듬듯 어눌해지지
자계磁界의 바다는 흐릿하여
등대의 빛을 보정補正해보지만
서역으로 가는 사막에서는
작은 물방울만 떠다니고
다리 분질러진 콤파스로는
찌그러진 달밖에
그려내지 못한다네
수전증에 걸린 듯
부르르 떨리는 손 맞잡고
트레몰로 트레몰로로
다 같이 돌고 싶은데
미처 한 바퀴도 돌지 못하네
바다 요정들이 지느러미 세워
물 위에 그려낸 그림
파도가 쓰러져 내리며 지워버리네
하얀 지우개 똥이 흩어지고
바다는 여전히 방향을 모르네
―「나침반」
* 풍배도: 어떤 지점에서 일정한 기간 중의 풍향별 빈도를 방사 모양의 그래프로 나타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