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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81336257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13-01-10
책 소개
목차
1부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 계화 갯벌에서 / 지렁이에 관한 짧은 보고서 / 무제 / 위대한 비행 / 겨울 / 겨울 좌천동 / 경주 남산, 머리 없는 돌부처 / 시간과 시간 사이 / 푸른 시간 / 밤새 비 내리다 아침에 개다 / 푸름의 뿌리 / 어느 저녁 / 허난설헌을 읽은 날 등나무 아래에서 / 촛불 / 처서 지난 비
2부
겨울제祭―서序 / 겨울밤이 오면―겨울제祭 1 / 겨울나무―겨울제祭 2 / 사평역에서―겨울제祭 3 / 북국에서 보내는 편지―겨울제祭 4 / 겨울로 보내는 엽서―겨울제祭 5 / 구멍―겨울제祭 6 / 북극―겨울제祭 7 / 비밀결사―겨울제祭 8 / 그림자―겨울제祭 9 / 어린 가지―겨울제祭 10 / 아홉 신의 질문―겨울제祭11 / 캄차카의 노래―겨울제祭 12 / 미얄마당―겨울제祭 13 / 심매도尋梅圖―겨울제祭 14
3부
책벌레 / 사선의 세상 / 장소의 기억술 1 / 장소의 기억술 2 / 장소의 기억술 3 / 동해 바다 / 벽공무한碧空無限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 개나리 / 도스토예프스키의 두꺼운 책을 덮고 / 위대장내시경 검사를 하고 / 비망록 / 한순간 / 가을 / 생명의 금어金魚를 찾아서
4부
원지마을에서 / 그런 때 / 순천만 / 하늘의 내부 /허공 위의 나무들 / 소리, 혹은 침묵 몇 편 / 버스 차창 / 태종대 / 오후의 자동기술법 / 정공단 돌담길을 오르며 / 우산 / 고장 난 시계가 걸린 어느 온실에서 / 목련木蓮 / 미네르바의 부엉이 / 1과 0 사이에서
해설: 음예陰?의 시간과 연금술의 시학_임동확(시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모든 시간이 잠시 비어버린 겨울 산야에서
바람 한 점 없어도 저절로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기도가 그런 떨림이게 하소서
더러는 거친 바람도 맞으면서,
마음 낮추고 낮추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자주 허락하소서
이 산야의 텅 빔을 수묵화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소서
식은 재 같은 도사가 되거나 생의 극한을 희롱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허무의 배짱이란 내게는 사치스러울 뿐입니다
다만 삶에 충실하되 너무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하소서
그렇다고 보이는 것을 업신여기는 시건방을 떨거나
허상에 들려 구라나 치는 유치함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가끔은 원유遠遊하게 하소서
저 멀리 북명北冥의 물고기가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는 그 장한 모습은 한 번쯤 보고 싶습니다
이 강산 바위와 계곡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을 수 있는 귀를 허락하소서
여행에는 수월찮게 여비가 드니, 부디 적당한 수입도 있게 하소서
겨울의 나무들이 고독한 수사처럼 서 있습니다
이렇게 벼랑처럼 홀로 서 있어도
저 깊은 곳의 뿌리는 모두가 그물처럼 이어져 있음을 믿게 하소서
마른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헐벗은 산야에도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믿게 하소서
바위와 나무가, 들녘 한 움큼 흙이, 저무는 하늘의 빛깔도 모두 오랜 생명의 생동임을 깨닫고 존중할 수 있게 하소서
청설모가 놓친 이 도토리 속에 도대체 몇 겹의 상수리나무 숲이, 숲의 신화가 숨어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소서 그러나
그런 무슨 거창한 깨달음보다 우선은
내 딸이 친구에게 얻어온 햄스터, 저 우주의 심연같이 새까맣고 조그만 눈동자,
아내가 가꾸는 난초와 관음죽, 그 사이에 피는 이름 모를 풀꽃,
택배를 늦게 찾아간다고 짜증 부리는 경비 아저씨부터 존중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아들과 딸도 부디 그 정도쯤이라도 이 무력한 아비를 존중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도 남는 혼돈, 혹은 무슨 쓸쓸함 같은 것
아득한 묵음으로 용납할 수 있게 하소서
기도의 용량 초과인가요?
좋습니다, 이 모든 기원을 다 없는 것으로 할지라도
부디 무디어져가는 내 마음에 아직 노래가 울릴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멀어지면서 겨울 산야를 광활하게 하는 굴뚝새 울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