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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1339579
· 쪽수 : 128쪽
책 소개
책속에서
우선 집은 꿈을 통해 내게 다시 찾아왔고, 이어 그 꿈이 내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었으므로, 나의 꿈과 마음 중 어느 것이 집을 더 잘 복원시켜주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건축가라는 직업 때문에 나는 앞으로 결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건축 작업을 하고, 경험을 쌓고, 설계 도면을 그리면서 내가 느낀 감동들은 언제나 더 직접적이고 더 명확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묘사하고 타인들과 공유해야 하는가? 각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감동을 타인으로부터 건네받거나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동을 자유롭게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 집은 나의 감동이 태어나고 성장한 공간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나 평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꿈속에서 집은 결코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꿈속의 집은 찢기진 않아도 변형된다.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어느 날, 나는 계단의 도면을 그려보았다. 물론 여러 가지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좋은 해결책을 찾았다고, 모든 걸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결국 나는 만족감보다 실망만을 느꼈다. 이 도면은 내 추억 속의 집도, 내 꿈속의 집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지 않은 집의 개념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꿈이 보다 진실하고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진정 우리의 소유는 우리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알려줄 때이다. 그러나 덧없이 변화하고 예상할 수 없는 위상기하학에 의해 이 하찮은 것이 하나의 세계, 우리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측정하는 세계에 들러붙어 있는 우리 자신의 세계가 된다는 것을 꿈은 말해준다.
앞면이 돌로 되어 있고 묵직한 나무문과 발코니가 두 개 있는 집. 우리가 집주인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 번도 그 집을 소유해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은 변함없이 옛날 그 거리의 같은 집들 사이에 있었다. 과연 그 집이 내 기억 속의 집만큼 거대했을까? 내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내 최초의 욕망과 소망들을 집에 털어놓으면서 그 집 안에서 크게 자랐던 것처럼 그 집 역시 내 안에서 크게 자라난 건 아니었을까? 아니, 오히려 나는 그곳에서 멀리 떠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집이 우리가 사랑하는, 부재의 극한까지 축소되어버리는 저 노인들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그들과 더불어 우리가 지녔던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저 사람들처럼 말이다.
어느 날 나는 우리 집을 다시 보았다. 그 집을 다시 보고 싶은 만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을 외부에 보여주는 것은 나의 딱딱한 껍질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았다. 그 집은 나의 최초의 보호막이었고, 나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모습대로 나의 기억을 형성시켜주었던 공간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