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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농업 > 농업일반
· ISBN : 9788982181030
· 쪽수 : 224쪽
책 소개
목차
봄 - 생명처럼 질기게 생명을 기다리고
꽃샘 / 그늘 / 흙을 담으며 / 움이 터올 때 / 길 / 침묵 / 경사 / 그리운 봄볕 / 손길 / 이상한 당 / 터 / 춤추는 마음 / 목련과 닭 / 논이 잘리던 날 / 번개 먹는 집 / 이상 징후 / 경운기 / 꽃 1 / 처마 밑에서 / 모내기를 앞두고 / 모내기 / 몸살 1
여름 -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을 따라
열려라, 참깨! / 몸살 2 / 단비 / 이상한 만남 / 무딘 몸 / 침수 / 산 / 영원한 숙제 / 논에서 물을 뺄 때 / 들깨를 쫒아서 / 공생 / 천수답 / 빨간 고추를 따며 / 파란 미소 / 가을 냄새 / 타살打殺 / 흉년의 그림자 / 마른 고추를 다듬으며 / 세례
가을 - 한 점 볕이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하늘이 시커먼데 / 어느 농사꾼의 죽음 / 볕이 아까워 / 사랑하는 똘이 여기서 쉬다 / 가을 짐승들 / 사냥의 계절 / 바심, 그 마지막 날
겨울 - 사소한 분별은 하얗게 묻히고
겨울 해 / 닭 몰이 / 유기농인증번호 / 게으른 가을 / 창호지 / 두절 / 눈물의 연주 / 겨울비
두번째 봄 - 나를 갈아엎고 나를 거역하고
백년 만에 / 어떻게 살아남은 닭인데 / 봄땅 / 추락 / 거역의 땅 / 만남 / 이름으로 다가온 나무 / 기다림 / 꿈을 꾸는 아이처럼 / 두렁을 매며
두번째 여름 - 초록은 초록이 아니야
초록빛 / 몸살 3 / 꽃 2 / 소처럼 일하다 돼지가 된 사내 / 그 땅에 가면
두번째 가을 - 바람을 먹고 햇살을 먹고 사람을 먹고
늙은 호박의 가을 이야기 / 다시없을 이 가을에 / 아버지의 얼굴 / 벼가 햅쌀이 되기까지 / 감나무 / 첫눈
두번째 겨울 - 텅 빈 침묵으로 봄을 기다리며
김장, 그 잃어버린 풍경 / 겨울의 시작 / 겹초상 / 나무꾼의 하루 / 겨울잠 / 나의 논 이야기 / 대관절 쌀이 뭐길래
리뷰
책속에서
논에 들어서면 특유의 논흙 냄새가 난다. 풋풋하고 선선한 황토 냄새가 아니라 퀴퀴한 시궁창 냄새 같은 역겨운 냄새가 난다. 그것은 이삭을 떨어낸 볏짚과 거름과 흙 그리고 물이 섞여서 오랜 세월 곰삭은 냄새다. 논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그 냄새에 고개를 돌리겠지만, 논일을 하며 논흙과 몸을 섞다보면 그 냄새는 부드럽고 구수해진다. 농사짓는 해를 거듭할수록 논은 자신을 점점 더 썩힌다. 논은 제 살과 뼈를 완전히 썩힌 그 땅심으로 곱고 하얀 쌀을 낸다. 그 퀴퀴한 썩음에서 맛있는 쌀이 난다. 요즘은 자신이 먹는 쌀이 중국의 것이든 미국의 것이든 일본의 것이든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겉으로 보는 쌀은 전부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쌀 속에 간직되어 있는 땅심은 제각각 다르다. 쌀을 먹는 우리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쌀이 아니라 바로 그 땅이다. - 본문 207쪽에서
논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왜 트랙터를 불러 하지 않고 힘들게 경운기로 일하느냐고.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웃고 말았다. 내가 하루 종일 한 일을 트랙터는 삼십 분도 채 안 걸려서 끝낼 거다. 트랙터를 마주하면 포크레인이나 불도저와 같은 중장비를 마주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뒤집어엎고, 밀어붙이고, 밟아 뭉게고...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는 갑자기 확 바뀐다. 그래서 구질구질한 예전 모습을 싹 지워버리고 한번에 새 모습으로 바꾸기를 좋아하는 이 시대에 어울리는 기계다.
... 그런데 경운기는 먼 옛날부터 논밭일을 해왔던 소에 가까운 기계다. 소에 달린 고삐처럼 경운기에는 손으로 운전해야 하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논밭일을 할 때는 고삐를 잡고 소를 부리는 주인처럼 손잡이를 잡고 걸으며 경운기를 부려야 한다. 그러니 일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한번에 많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일하는 잠깐잠깐 쉬어야 한다. 마치 주인과 소가 함께 숨을 고르듯이 말이다. 또 경운기의 몸집은 소와 비슷하다. 앞에서 보는 경운기의 눈매는 꼭 소를 보는 듯하다. 경운기는 정말 소를 닮았다. 언제부턴가 논밭에서 소가 사라졌듯, 이제 경운기도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바쁜 세상, 바쁜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소를 닮은 경운기가 논밭에서 쫓겨나고 있다. - 본문 44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