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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88984059603
· 쪽수 : 328쪽
책 소개
목차
서문_ 모든 식탁은 역사로 통한다
1장 중국을 만든 음식
하은주_ 고대 중국에서는 요리사가 재상
하은주_ 중국인의 조상은 물고기?
춘추전국_ 귤 한 상자면 떼부자
한_ 황제는 하루 네 끼, 제후는 하루 세 끼
한_ 조개가 돈으로 쓰인 내력
위진남북조_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
수당_ 오랑캐는 우유, 한족은 차
송_ 송나라 경제와 국수 천국
원_ 월병과 토란, 중추절 음식이 까닭?
명_ 황제의 밥상에 오른 돼지고기
청_ 만주의 귀족들, 샥스핀에 빠지다
2장 역사를 바꾼 음식
하은주_ 중국, 식탁에서 이뤄지는 정치
춘추전국_ 서역에서 전해진 복날과 그 의미
한_ 한나라 경제를 일으킨 실크로드
한_ 서양보다 더한 향신료 열풍
수당_ 양귀비가 호떡 맛에 빠진 이유
원_동서 교류가 만들어낸 소주, 배갈
명_정화함대와 명나라의 후추 무역
청_13억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 고구마
청_몽골 귀족의 접대 음식, 훠궈
3장 오해와 진실을 밝히는 음식
하은주_ 양고기의 나라, 고대 중국
삼국_ 복숭아밭에서 도원결의를 한 이유
삼국_ 계륵으로 본 조조의 진짜 모습
삼국_ 제갈공명의 만두 발명설
위진남북조_ 송강 농어에 담긴 남북조의 역사
위진남북조_ 동지팥죽과 양쯔강 민초의 삶
수당_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 돼지족발
수당_ 두보가 소고기 과식으로 죽은 사연
송_ 12세기 송나라 여름은 빙수 천국
송_ 동파육을 통해 본 한족과 북방 민족의 갈등
명_ 갑자기 사라진 중국 생선회의 미스터리
청_ 만한전석과 청의 통치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훠궈 중에서도 제일 독특하고 이색적이어서 인기가 높은 홍탕은 사실 최악의 조건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홍탕인 충칭훠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청나라 말기 도광제 때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시절인 1920년대에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양쯔강과 자링강(嘉陵江)이 만나는 쓰촨성 충칭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노동자, 특히 배를 밧줄에 묶어 흐르는 양쯔강 물결을 거슬러서 소처럼 배를 끌고 올라가는 선부들이 먹었던 음식이 홍탕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한마디로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가난했던 막일꾼들의 음식이었단 얘기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이들이었으니 제대로 된 고기를 사 먹을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때문에 내다 버리다시피 하는 소 창자와 천엽, 그리고 오리 내장 등 부스러기 고기를 긁어모아 잠깐 쉬는 틈에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고는 서둘러 일하러 갔던 것인데, 이런 전통이 남아 있기에 지금도 충칭훠궈의 재료로 소의 천엽과 내장 등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중국은 만두와 국수의 나라다. 그런 만큼 보통 중국인들은 만두와 국수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심지어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도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를 다녀간 후 전파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원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만두와 국수가 발달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빵과 국수, 그리고 만두는 모두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다. 서양에서 최초의 빵은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다. 원시적 형태겠지만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추정한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도 빵을 먹었다. 중국에서 한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의 일이다. 그런데 같은 밀가루 음식임에도 중국인들이 국수와 만두를 먹은 시기는 훨씬 늦다. 우리가 아는 국수는 당나라 내지는 송나라 때 처음 생겼다. 만두 역시 한나라가 망한 후, 그것도 삼국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만들어졌다.
동양인은 언제부터 음식에다 시험 통과의 소망을 담아 먹기 시작했으며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남아 있는 기록은 없으니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아마 당나라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먹었다는 돼지족발이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나라 때는 과거 시험이 끝나 장원 급제자가 나오면 붉은색 먹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을 적어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에 있는 대안탑에다 붙였다. 이렇게 장원 급제자의 이름과 시제를 붉은 글씨로 적은 대자보를 ‘주제(朱題)’라고 했다. 중국어로는 ‘주티’다. 그런데 이 주티(朱題)와 돼지족발을 뜻하는 ‘주티(猪蹄)’가 발음이 같다. 그렇기에 과거를 보러 가는 당나라 선비들이 돼지족발을 먹으며 장원 급제해 자기 이름과 답안 제목이 붉은색 먹으로 쓰여 대안탑에 내걸리기를 소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나라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풍속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중국 일부 지방에서는 시험 볼 때 합격을 빌며 돼지족발을 먹는다. 돼지족발의 유래가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당나라 때 과거에 급제하면 붉은색으로 이름과 시제를 적는 주제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