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4313613
· 쪽수 : 355쪽
· 출판일 : 2009-11-30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작가의 말
프롤로그
1부.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 보고
2부. 어느 잡범에 대한 중간 보고
3부. 어느 잡범에 대한 최종 보고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들어간 방에도 서른 가까운 사람들 중에 잡범은 나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알만하죠. 밥이 들어와 빙 둘러앉았는데 나만 관식이고 학생들은 죄다 사식이에요. 부끄럽더군요. 누런 깡보리밥에다 단무지가 얹혀 있는, 어쩌면 그 누런 양은도시락도 내 인생을 닮았는지,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기스가 많이 나 있더군요. 입이 깔깔하고 속이 타서 연거푸 물만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학생이 자기 밥을 크게 한 숟갈 떠서 내 밥 위에다 올려놓습디다. 그걸 기화로 가까이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도시락 뚜껑에다 하얀 쌀밥을 얹고 반찬을 나누어주는데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구겨졌을까요. 모두들 집시법 위반, 집시법, 집시법…… 쭉쭉쭉 내려가다 개밥에 도토리처럼, 삼베중우에 튀어나온 좆처럼, 그 무전취식이 톡 불거져 끼어 있었으니 이건 또 뭐여, 어이 김호식 씨, 김호식 씨가 누구여, 창살 앞으로! 이렇게 큰 소리를 치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대용 감방이 우렁우렁 메아리를 치는데 정말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저 학생들이 어른이 되면 정말 좋은 세상이 오겠구나 생각했죠. 인간쓰레기 같은 나도 한번 살아봐야겠다 다짐했지요. 마음은 늘 몸보다 먼저 반성하잖아요? 일주일을 꼬박 살고 아침에 나왔습니다. 나오는데, 나랑 한방을 썼던 학생들이 쭉 서서 박수를 쳐주더군요. 먼저 나간다고 축하를 해주는데 참 머쓱했지요. 무전취식 아저씨 힘내세요, 이젠 무전취식하지 말고 잘살아보라구요. 박수를 치고 응원을 해주는데요, 구호가 너무 멋져요. 호헌철폐, 무전취식! 독재타도, 무전취식!
안주 대신 이미 빳빳하게 발기한, 자기 입술보다 약간 불그스름한 귀두를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움찔했다. 지금부터는 아무 생각하지 말자. 밥알 하나 삼키는 데 수십 번 사래가 들어 눈물 그렁이는 어머니는 잊자. 봉투 붙이고 구슬 꿰는 봉천동 산꼭대기 누님도 잊자. 이삿짐 센터에 나가는 매형도, 한남동 언덕배기 공사 현장에서 언뜻 보았다는 작은형도, 자장면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인 막내도, 공장과 식당에서 누렇게 뜬 배움의 집 친구들도, 정희 누야도, 마린도, 금은방도, 오류동 유림싸롱 유숙이도, 호수약국 재희도, 대전 빵공장 영만이도, 부산식당도, 트럭 조수도, 중국집 명월각도 다 잊자. 광주도 잊자.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똥통에 빠진 구더기다. 똥을 핥아먹으면서 살아보려고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구더기다. 허섭스레기다. 오직 하나만 생각하자. 나는 저 천장에 그려진 쥐오줌이다. 녹슨 마름모꼴 방범창이다. 방범창 안에 말라 죽은 하루살이다. 깨어진 유리창이다. 유리창에 붙은 일회용 테이프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거미줄이다. 담배 자국 성성한 장판이다. 아라비아 숫자가 달력 반 이상을 차지하는 양평신용협동조합이다. 16일 곗날, 홍천식당이다. ‘수색대 김정효 다녀가다’다. ‘20사단 군바리 좆은 모두 물총이다’다. 창틀 너머에서 손 오므려 흔드는 단풍나무다.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이다. 천둥 번개다. 소나기다.
없는 놈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글쎄요. 초범에다, 무슨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일부러 한 행동도 아니고, 어떻게 보자면 동네 조무래기들 장난 비슷한 건데 구속까지 시킨 걸 보면, 군법이란 게 하찮아 보이더군요. 더군다나 배심원도 증인도 방청객도 없는 첫 재판에서 오 년을 때리는데요, 옆에 있던 헌병들이 더 놀라 담배를 주고, 물을 떠 먹이는 소동까지 일어났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전치 육 주에 징역 오 년이라면 도대체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해 그 밑의 똘마니들은, 어떻게 처벌해야 분이 풀릴까요? 사형은 너무 가벼운 게 아닙니까? 구족을 멸해도 시원치 않을 중범죄자들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놈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단순하게 싸우다 구속된 놈은 단 한 차례 반성할 기회도 주지 않고, 처음부터 5년을 때린다면 우리 사회에 <정의>니 <도덕>이니 <양심>이니 <진실>이란 말은 다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 또한 어디 구더기 많은 똥통에 밑씻개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