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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불침번

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자서전)

정경모 (지은이)
  |  
한겨레출판
2010-10-11
  |  
1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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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불침번

책 정보

· 제목 : 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자서전)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사회운동가/혁명가
· ISBN : 9788984314269
· 쪽수 : 528쪽

책 소개

<찢겨진 산하>의 저자, 마지막 재일 망명객 정경모의 자서전. 애초 자서전 집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저자는, 2년 동안 온힘을 다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못다한 이야기, 잊고 있던 삶의 연결고리, 그리고 어떠한 배경도 없이 붓 하나에 의지해 시대에 맞섰던 고독했던 삶의 응어리까지, 자신의 인생 전모를 이 책을 통해 털어놓는다.

목차

추천글

우리 현대사가 잊을 수 없는 이름 _ 임재경
정경모 선생과 나 _ 황석영

머리글

1. 나는 조꼬만 봉사씨외다
2. 해방군이 몰고 온 전쟁
3. 서울의 이방인
4. 망명시대
5. 씨알의 힘으로
6. 미국과 일본의 본질을 묻다
7. 모든 통일은 선이다
8. 껍데기는 가라
9. 나는 원래 민족주의자 아니오이까
10. 아무 유한도 없소이다

저자소개

정경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교 의학부, 서울대학교 의대에 다니다가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미국 유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주미대사 장면의 요청으로 도쿄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GHQ)에 소환되어 문익환, 박형규 등과 함께 근무했다. 휴전회담 당시 통역업무를 맡는 등 한국에서 지내다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40년간 망명객의 신분으로 문필활동을 통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을 지원했다. 일본에서 1981년 한국문제 전문지 <씨알의 힘>을 발행했고, 1991년에는 일본의 평화와 조선의 통일을 생각하는 ‘씨알의 힘’ 모임을 발족하여 기관지 <씨알>을 펴내왔다.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결행하여, 6?15남북공동성명의 초석이 된 4.2공동성명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요코하마에서 50년이 넘는 세월을 아내와 함께 해오다 2021년 2월 향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펼치기

책속에서

내가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을 맞이한 것은 미국 유학생으로 에모리 대학 대학원에서 연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소이다. 식민지 시대에 경기중학을 나오고 일본으로 가서 게이오 대학 의학부에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잠시 서울대 의학부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1947년 8월 미국 유학길로 떠난 것인데, 에모리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화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바로 그때 6·25전쟁이 터진 것이지요. 당시 주미대사가 4·19학생혁명 뒤 제2공화국 국무총리가 되는 장면 박사인데, 그분으로부터 워싱턴에서 긴급 전화가 걸려왔어요. “지금 우리 신생 대한민국이 공산군의 침략으로 존망지추(存亡之秋)에 있는데 그렇게 한가하게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프란체스카 부인의 특명이니만치 가타부타 잔소리 말고 곧 도쿄로 떠나 맥아더 사령부로 들어가라!”
그때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간 이후 학비로 곤란을 겪을 때 참으로 기적적인 연유로 이승만 대통령의 알선을 통해 미국의 육영자금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프란체스카 부인과는 대사관 행낭(파우치)을 통해 수시로 서신을 교환하고 있던 처지였어요. ……
문 목사 얘기를 해놓고 새삼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것은 맥아더 사령부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훗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 사람이 셋이었는데, 바로 문익환, 박형규, 그리고 나 정경모였고 셋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에요. 두 분은 목사님이시니까 물을 필요도 없으나, 나 자신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한때 목사가 될 생각도 있었으니 지금은 비록 주일날이라고 해서 성경.찬송 옆에 끼고 예배당에 가는 식의 기독교인은 아니나마 정서의 바탕은 지금도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상스러워요. 팔십 평생을 살아온 지금 일생을 되돌아보면 열아홉 살 나이에 하숙집을 찾느라고 히요시 마을, 그 집 현관문을 연 그 순간, 내 인생역정의 전부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오이다. 예정론 그대로예요. 다음 날 또 갔어요. 아주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딸하고 의논하니 괜찮다고 하니까 어느 날이고 이사를 오라 그러시더군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내일 이삿짐을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집을 나왔소이다. 그 집 따님을 만나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외다. 그때 얼굴도 안 보고 문밖으로 나온 그 집 따님 지요코(千代子)가 오늘까지 백년해로로 인생길을 같이 걸어온 현재의 아내이며, 나를 극진히 귀여워해주시던 아주머님이 장모님이셨던 것이외다.
그때 지요코가 살며시 내 어깨에다 머리를 얹더니 잠시 후부터 훌쩍거리기 시작합디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줄 수가 있었겠소이까. 처음으로 지요코를 가슴에 안고 귀에다 대고 약속을 했소이다. 꼭 다시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요.
다음 날 집을 나서는데 도쿄 역까지 배웅하러 나가겠다던 지요코는 눈이 퉁퉁 부어 도저히 외출할 형편이 아니었소이다. 대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도쿄 역으로 향한 것인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죠. 정말로 그날부터 5년 4개월 만인 1950년 11월 초 약속한 대로 돌아서 돌아서 태평양을 건너 히요시의 옛날 그 집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오이다. 기적이란 이런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겠소이까.


약속한 날 아사히신문사 식당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투고란은 원래 정년이 가까운 노련한 기자가 담당하는 것이 상례이듯, 당시 40대이던 나보다 훨씬 연배가 위이고 퍽 세련된 용모의 인물이었소이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 6년 전인 한일협정 당시 한국 학생들의 반대운동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또 협정 이후 일본으로부터 흘러 들어가는 정치자금이 한국 권력층에 어떠한 형태의 부패를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신문기자인 그분에게조차 놀라운 뉴스였던 것이외다. 비단 그분만이 아니라 일본 언론 전반에서 한국 문제는 흥밋거리가 아닌 시대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었지만 말이외다.
얘기 끝에 그분이 묻습디다. 투고문 이외에 써둔 원고는 없는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말이외다. 그래서 며칠 후 400자 원고지 100장가량의 원고를 가지고 다시 만났는데, 도노 씨가 원고를 훑어보고 그 자리에서 말을 건네주더이다. “이거면 됐다. 계속 써달라”고 말이외다.
이렇게 해서 내 책 『어느 한국인의 감회』(ある韓?人のこころ, 朝日新聞社, 1972)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인데, 그때가 바로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인 1972년 9월이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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