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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4316850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3-03-26
책 소개
목차
자진 납세
먹고살자
청계천 잉어
애국 어버이 로맨스
작은집 돼지
돈, 돈, 돈
특별 서비스
촛불 있어요!
인생은 야바위판
애국과 매국 사이
꽃 도둑
저희를 용서하소서
갈등 해결 연구소
따뜻한 밥상
해설- 민중의 윤리 부재와 마주하는 자기 풍자(고명철)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평생 땅 파는 일로 성공했다는 이가 사장으로 나서더니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청계천을 뒤엎고 꽃나무를 심을 때만 해도 심씨는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촌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모려와 구경을 하고, 주말이면 젊은것들이 손에 커피 통을 하나씩 들고 물가에 앉아 노닥거리는 풍경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흐르는 맑은 물에 발모가지 담글 줄만 알지, 그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한강 물을 거꾸로 끌어 올리는 데 드는 전기료가 하루에 얼마인지, 과연 그 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새어나가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걸 청계천을 헐어낸 시장이 자기 돈으로 내겠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라면 길길이 날뛸 것이나 눈앞에서 헤엄치며 노는 고기 떼와 꽃나무에 눈이 먼 표가 제게 쏟아지기만 한다면 달나라의 토끼도 붙들어 올 인간이었다.
“타구난 팔자가 그런 걸 어쩌우? 다 제 팔자소관이지.”
팔자라는 말에 심씨는 제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싶었다. 없는 집에 태어난 것이야 팔자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평생을 지질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팔자가 아니라 원수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입 바른 것들은 가난도 다 저 노력하기 나름이라고 주절거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말굽에 박힌 편자처럼 굳은 못이 박힌 제 손바닥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손수레도 끌어보고, 고물 장사에 막노동판이며 청소부 노릇까지 잠시도 쉼이 없던 손이었다. 그런 손이 성실하지 못하고 노력이 부족하여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차라리 손모가지를 제 손으로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를 가나 돈이 없으면 사람값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북이나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앞에서는 사상이고 인민이고 소용없었다. 자유니 민주니 떠드는 것들도 막상 돈이 없으면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돈이란 세상의 어느 것보다 악랄하고 반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경일은 당장 그 돈에 목을 맨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중으로 20만 원을 마련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