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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 다이제스트 100

북한사 다이제스트 100

고태우 (지은이)
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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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 다이제스트 100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북한사 다이제스트 100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북한사
· ISBN : 9788984353398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15-05-29

책 소개

1945년 광복 직후 서서히 분단의 조짐을 보이며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2000년까지, 해방과 분단 이후 반세기의 이르는 북한의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민족의 반쪽인 북녘땅 동포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고 통일의 길로 나설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졌다.

목차

머리말

1. 6일간의 참전-소련군 제25군 북한 상륙
2. 열흘 단명으로 끝난 평남건준-평남건준의 발족
3. 푸가초프 호를 타고 원산항에 입항-김일성의 입북
4. 점령군인가, 해방군인가-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성명
5. 당 사상전선의 전초전-<로동신문> 창간
6. 최초의 반공 · 반소 학생시위-신의주 학생사건
7. 무장해제당한 연안파-연안파의 입북
8.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회오리-신탁통치 찬성 성명
9. 1년의 국정지표, ‘수령’의 신년사-신년사의 시작
10. 실질적인 공산정부 조직되다-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수립 선포
11. 기독교계와 소군정 간의 갈등-3 · 1절 장대현교회 사건
12.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토지개혁법령 발표
13. 북한 최초의 대토목공사-보통강 개수공사
14. 공산주의 후비대 양성-조선소년단 창설
15. 한국전쟁 주역의 배출지-중앙보안간부학교 창설
16. ‘혁명인재 · 민족간부의 양성기지’-김일성종합대학 개교
17. 최초의 사회주의 대중운동 시발-건국사상총동원운동
18. “혁명의 후비골간으로 키워라”-만경대혁명학원 개교
19. ‘민주기지 축성을 위한 무장력’-조선인민군 창군
20. “이대로 가면 분단되고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남북연석회의 개최
21. ‘남한 유권자 중 77%가 투표’-해주인민대표자대회 개최
22. 아시아의 첫 사회주의 정권 탄생-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포
23. 남쪽을 향한 통일전선 조직들-조선전선과 조평통
24. 10월 10일은 당 창건일이 아니다-조선로동당 탄생
25. 냉전이 낳은 비극-한국전쟁 발발
26. 연안파 거두 무정의 몰락-별오리 회의
27. 전국적 규모의 행정구역 개편-9개 도, 170여개 시 · 군으로
28. 새로운 국경선-휴전선 확정-휴전협정 조인
29.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종말-박헌영 숙청
30. 중공업 우선정책으로 전환-전후복구 건설시기
31. 수령의 문풍을 따라 배운다-조선어 철자법 제정
32. 유일한 대외 경제창구의 몫-조총련의 출발
33. ‘우리 식 사회주의’를 찾아서-주체사상의 태동
34. 정치 · 경제의 불가분의 계획들-계획경제의 출발
35. 김일성의 최대 정치적 위기-8월종파사건의 전말 · 149
36. 사회주의 경쟁운동의 효시-천리마운동의 출발
37. 14분 만에 집 한 채가 뚝딱-평양속도, 그 후
38. 사회주의 과도기적 형태, 협동화-농업협동화 완료, 토지의 협동적 소유 시작
39. 참전 8년 만에 중국군 떠나다-중국인민지원군의 완전철수 발표
40. ‘적과 아를 분명히 가려라’-중앙당집중지도사업
41. 후방병력을 준비해야 한다-노농적위대 창설
42. 자의 반 타의 반의 집단 입북-재일교포의 북송
43. 정치 제1주의의 경제관리 시발-청산리방법
44. 극좌 군사모험주의의 시발-4대군사노선의 현실화
45. 공산권 진영의 양분-중 · 소분쟁에 따른 소련과의 갈등
46. 강화되는 비동맹외교-김일성 주석의 인도네시아 방문
47. 베트남전과 중국의 문화대혁명-중국과의 갈등
48. “청와대 까러 왔수다”-1 · 21 청와대 기습사건
49. “무력저항을 하지 않았다-푸에블로 호 납치
50. 유령의 목소리-통혁당 목소리방송 시작
51. ‘미제의 각을 뜨자’-반미공동투쟁월간 시작
52 이산가족 문제 쟁점화의 시발-남북적십자회담 시작
53. 수령의 조국통일 3대원칙에 합의?-7 · 4 남북공동성명 발표
54. ‘젊은 인텔리들이 나서라’-3대혁명소조운동
55. 권력유지의 핵심적 보위기관-국가정치보위부의 출발
56. 기술교육에서 정치사상교육으로-11년제 의무교육 실시
57. 절대성 · 무조건성의 원칙-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58. 주체사상에서 김일성주의로 전환 시도-김일성주의의 정식화
59. 대화와 땅굴의 두 얼굴-제1남침땅굴 발견
60. 차세대 ‘수령’ 수면 위로 오르다-김일성 후계자 공인
61. 혁명전통의 순결성 표현 현장-혁명 · 애국열사릉 조성
62. 세습된 개인우상화-김정일 생일 명절화
63.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8 · 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64. “인민군은 항일혁명전통의 계승자”-창군기념일 변경
65. 혁명2세대의 군부 정상-오극렬,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
66. 공식전기 「인민의 지도자」 출간-김정일 개인숭배운동
67. 권력승계 공식화하다-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
68. 헌법의 상위규범-당규약-제3차 당규약 개정
69. 증산은 다락밭 건설을 통하여-4대자연개조사업
70. 공포의 강제수용소-특별독재대상구역 확인
71. ‘민족 최대의 명절’화-김일성의 70회 생일
72. 북한 종교사의 아이러니-강양욱 사망
73. 아시아를 진감시킨 북의 테러-아웅산 묘소 폭발사건
74. 개방정책의 신호인가-합영법 공포
75. ‘분단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남한 수재민에 구호물자 전달
76. 북한 고향방문단, 처음으로 서울에 오다-제1차 이산가족 재회
77. 골프장에서 코카콜라 상륙까지-개방의 미풍
78. “내 손은 줄곧 담뱃갑에 가 있었다”- KAL 858기 폭파
79. 김정일식 통치 이데올로기의 확산-우리 식 사회주의 등장
80. 한계에 다다른 북한의 노동력 동원-제2차 200일 전투
81. 교회, 지상으로 나오다-봉수교회의 신축
82. 88서울올림픽의 콤플렉스, 평양축전-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83. 분단이 낳은 희생자들-최덕신 사망
84. 백범 김구에 대한 모독 현장-쑥섬혁명사적지 조성
85. ‘하나의 조선’ 논리와 유엔가입-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86. ‘합의서, 합의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서명
87. 김정일의 상징적 군부 장악-김정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
88. 조심스러운 부분 경제 개방-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선포
89. 김정일 후계체제의 법적 마무리-개정헌번
90. 핵카드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시도-NPT 탈퇴선언
91.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군사정전위원회 불참
92. 공산주의의 교과서적 논리, 통일전선-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93. 세계사상 가장 긴 휴전조약-휴전협정일을 전승기념일로 승격
94. 김일성 없는 유훈통치의 개막-김일성 사망
95.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남북정상회담 무기연기
96. 단군신화 해석의 180도 전환-단군릉 준공
97. 김일성 ‘영생불멸’ 분위기 조성-김일성 사망 100일 추모대회 개최
98. 오진우 시대 끝나다-오진우 사망
99. NPT 탈퇴선언에서 타결까지-핵외교의 승리
100. 김일성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유훈통치의 시발
101.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55년 만의 남북 정상의 만남

부록
북한사 연표
북한 자료의 이해

저자소개

고태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3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했다. 통일연수원?외국어대학교?침례신학교에서 북한학을 강의했으며, 북한연구소 연구부장직을 맡았고, 숭실대학교?경기대학교에 출강했다. 또한 KBS-R <통일열차>, <역사의 진실>, MBC-R <두고 온 산하>에 고정출연했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의 종교정책」(1988), 「북녘의 남은 자를 위한 기도」(1989), 「북한 신풍물기」(1992), 「북의 산천」(1994), 「통일을 준비하는 어린이」(북한동화집, 1994) 등이 있으며, <북한 난민의 현장 안정화 방안>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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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냉전이 낳은 비극
-한국전쟁 발발(1950. 6 25)

1948년 남북한은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침전쟁을 개시했다. 김일성은 남한이 북침했다는 주장을 라디오 연설을 통해 주장하면서 반격에 나섰다고 위장했다.
어느 전쟁사든 초기의 선제기습전은 성공을 거둔다. 6 · 25 한국전쟁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강원도 지방의 일부 거센 저항을 제외하고는 쉽게 남침에 성공하는 듯했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열흘이 채 안되서 미국이 개입했다. 놀라운 신속함이었다. 미군 최초의 파한부대는 미24사단이었고, 북한군과 처음 맞닥뜨린 부대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로, 전장은 수원 남쪽인 오산이었다.
북한이 전쟁을 모의할 당시의 반대론자인 최용건의 우려가 정중한 것이다. 김일성의 오랜 빨치산 동료이기도 한 최용건은 미군의 개입을 우려, 전쟁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개전 초기에 승기는 북한측에 있는 것 같았다. 북한측은 예상보다 빠른 미국의 개입에 잠시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총동원령을 선포하고 총격전으로 맞섰다. 북한은 8월 25일 전까지 미군을 태평양으로 쓸어 넣겠다는 호언을 서슴지 않았다. 부산과 대구, 남해안 섬들과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의 전지역이 북한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로써 김일성의 단기전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9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간단히 뒤엎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은 전통적인 빨치산 전술인 대중의 마음을 잡는 데에 실패했고, 병참물자의 현지조달 원칙도 지켜질 수 없었다. 병참선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그 늘어난 병참선을 일거에 자른 쾌도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평양에 입성했고,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수복기념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남한이 전국을 통일하는 듯한 형국으로 바뀌었다.
북한지도부는 평안북도 오지인 강계 · 자성 등지의 산악지대로 후퇴했고 중국과 소련에 화급하게 지원을 요청했다. 괴멸을 모면한 북한군은 무정을 비롯한 연안파 지휘관들에 의해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가서 재편성을 하고 다시 전선에 투입되었다.
팽덕회를 지휘관으로 한 중국군(정식 명칭은 조선의용군이었다)이 이 전쟁에 투입되었다. 이로써 한국전쟁이 냉전하 강대국의 대리전쟁이라는 성격이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은 이미 전쟁 전에 중국의 모택동에게 전쟁허락을 받으면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 병사를 넘겨줄 것을 요청, 동의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이것이 북한군으로서는 기사회생의 기회였던 셈이다.
중국군 참전 이후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다.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한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후퇴, 흥남 철수, 서울 재함락 등의 비극을 겪었으나, 이윽고 현 휴전선을 중심으로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지루한 소모전이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성립되면서, 햇수로 4년을 끌었던 전쟁의 악몽은 종전이 아닌 종전상태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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