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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1033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0-07-12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 인생은 내 아들의 몸이 버스에서 갈가리 찢겨지던 날 모두 끝났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흩어져 날아간 아이의 살점 하나하나에 내 삶의 순간순간들도 함께 흩어져 날아갔다. 승객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살점들이 버스 차체와 아스팔트를 향해 날아가 스러질 때 내 존재의 의미도 함께 스러졌다.
나는 내 아이의 살점들을 그러모으지 못했다. 설령 그러모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러진 살점들을 찾아내고 이어 붙여 이야기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내 아이를 위해,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아 그 빈자리와 타협해야 할 이들을 위해.
난 그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내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파국을 맞이하기도 전에 광기가 내 정신을 집어삼켜서는 안 된다. 머리가 조금이나마 맑을 때 산산이 흩어져 버린 아들과의 추억을 마주하고, 내 인생과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련다.
신문을 넘기다가 불현듯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목이 꽉 잠긴다. 신문에 그 괴물 같은 살인마의 사진이 눈썹을 찌푸린 채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와 있다. 지금까지 봤던 사진들보다 더욱 선명하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고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거진다. 내 시선은 팽팽하다 못해 신문지를 뚫고 들어가 어느새 놈에게 바짝 다가가 있다. 놈이 내 앞에 있다. 놈의 이목구비가 낯익다. 사진을 몇 장 봤을 뿐이지만 놈의 얼굴은 어느새 내 머릿속에 완강하게 박혀 있다. 나는 놈에게 갖가지 표정, 즉 걸음걸이, 몸동작, 목소리, 분노 따위를 부여했다. 실제와도 별 차이 없으리라. 나는 사진에 대고 그를 모욕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내 분노를 단 한 방울도 허투루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안으로 짓누르고 조여 고스란히 담아두어야만 한다.
문득 멀리서 제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각각의 이미지와 말이 일치되지 않고 따로 놀며 열에 들뜬 채 꿈속을 헤매는 듯했다. 그때서야 난 이 기묘한 상황을 깨달았다. 어째서 제롬이 내 앞에 있는가? 제롬은 왜 밤이 이슥해지면 이따금 나를 찾아와 말을 거는가? 왜 난 제롬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가?
제롬의 죽음이 나를 불가사의한 생의 저편으로 밀어낸 게 분명했다. 난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인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며 내 삶을 지탱하던 골조를 심각하게 망가뜨려 버렸다. 다양한 이미지와 말들이 허공에서 둥둥 떠다녔다. 때가 되면 의미구조가 뒤틀린 이미지와 말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리라.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처음 내가 그 말들에 정해두었던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