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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2641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5-05-08
책 소개
목차
제1부 / 8
제2부 / 57
제3부 / 120
제4부 / 220
제5부 / 282
에필로그 / 361
옮긴이의 말 / 364
리뷰
책속에서
하늘을 배회하던 독수리 한 마리가 마르모트 무리를 향해 수직 낙하했다. 독수리는 곧 몸을 숨기지 못한 어린 마르모트를 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서는 배고픈 새끼 독수리들이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너도 봤지?”
노인은 입을 벌린 채 우뚝 멈춰 선 손자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고통스럽겠죠?”
“벌써 죽었을 거야. 그게 자연의 법칙이니까.”
“자연의 법칙이요?”
“자연의 법칙은 매우 엄격하지. 세바스찬, 사람들이 왜 사냥을 한다고 생각하니?”
세자르는 메고 있던 소총과 손자가 자랑스럽게 둘러메고 있는 나무로 만든 작은 총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덟 살 생일 때 선물해 준 총이었다.
“사람들이 사냥하는 건 다른 문제예요. 총으로 한번에 죽이면 고통을 느낄 수 없잖아요.”
세바스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항의하듯 대답했다.
“죽는 건 마찬가지란다. 죽음에 변명 같은 건 있을 수 없어.”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바스찬은 종종걸음으로 세자르를 뒤따랐다.
개울을 따라 난 글랑티에르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보기보다 경사가 급한 곳이었다. 세바스찬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길 한가운데로 토끼가 지나갔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 세바스찬은 숨을 죽이고 모든 감각을 동원했다. 그때 경사면을 따라 길쭉한 돌멩이 같은 것이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길 한가운데 베트가 몸을 반쯤 웅크린 채 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의 양 다리 사이에 목덜미를 물린 산토끼가 누워 있었다. 녀석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으르렁거렸다. 주둥이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세바스찬은 공포와 충격으로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세바스찬은 놈이 늑대도, 지옥에서 도망친 괴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단지 덩치가 크고 진한 빛깔의 털이 북슬북슬하며 성질 사나운 개일 뿐이었다. 녀석은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점점 더 사납게 울부짖었다.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경고 같았다.
벨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다른 낚시감을 찾아 나섰다. 세바스찬은 바닥에 주저앉아 혈액순환을 도울 겸 꽁꽁 언 두 발을 힘껏 문질렀다.
“벨, 이리 와. 이 정도면 오늘은 충분해.”
발에 피가 몰리자 새삼 통증이 느껴졌다. 세바스찬이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내자 벨이 얼른 곁으로 다가왔다. 녀석이 따뜻한 혀로 손과 발을 핥아주자 세바스찬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까르르까르르 웃어댔다.
“우리 둘은 이 골짜기 전체에서 제일가는 낚시꾼이야.”
세바스찬이 구두끈을 다 묶었을 때 두 번의 총성이 들렸다. 두 번 중 한 번은 메아리친 결과였다. 벨이 총알처럼 달리기 시작하자 혼비백산한 새들이 나무들 틈에서 푸드득거리며 솟아올라 이내 허공에서 흩어졌다. 가까이에서 총성이 들린 것으로 보아 개울에서 5백 미터쯤 아래로 내려가면 나오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난 듯했다. 골짜기에서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을 이어주는 도로였다. 세바스찬은 급히 비탈길을 내려갔다. 날개라도 달린 듯 저절로 발이 움직였다. 사냥꾼들이 벨을 잡으러 나선 것이 아니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