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일반
· ISBN : 9788984946866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2-10-28
책 소개
목차
서문 역사로 바라본 사리신앙
1장 | 사리에 대하여
사리란 무엇일까, 사리의 의미와 사리 신앙의 다양한 모습들
불사리의 종류:진신 사리와 법신 사리
사리 신앙으로 나타난 탑돌이
2장 | 탑과 사리 신앙
탑을 세우는 공덕과 불정골 이야기
법신 사리로 봉안된 다라니경과 보협인경
사리 신앙에 영향 받은 불상・불화의 사리 봉안
사리 신앙의 역사가 담긴 사리봉안기
3장 | 우리나라 사리 신앙의 역사
삼국시대 사리 신앙
고구려 사리 신앙의 흔적이 담긴 금동 판
백제 사리 신앙의 대중화 과정
신라의 사리 신앙
통일신라시대 사리 신앙
통일신라 사리 신앙 개관
통일신라시대 다라니 신앙
사리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리 봉안의 사례들
고려시대 사리 신앙
고려 왕실에서 150년 이어진 불아 사리와의 인연, 불아전
고려시대 분分사리 영험의 이야기들
고려시대 불사리 신앙의 몇 가지 예들
신라 자장 스님이 봉안한 불사리의 고려시대 후일담
조선시대 사리 신앙
불사리 신앙의 모범이 되었던 태조
조선 초기 왕실의 사리 신앙
조선시대 사리 신앙의 자취를 전하는 사리탑비
통도사 금강계단 불사리가 돌아온 길고 긴 여정
불사리 봉안의 의미를 설파한 서산대사의 보현사 석가여래 사리기
법주사 팔상전의 사리
두 왕이 봉안한 봉인사 불사리
정암사 수마노탑에 전하는 불사리 봉안의 이적
정암사 수마노탑에 투영된 사리 신앙의 한 모습, 〈갈천산 정암도〉
이적異蹟을 보인 낙산사 공중사리탑
충청도와 전라도를 오갔던 안심사 불사리
근대의 사리 신앙-신문 기사에 실린 불사리에 관한 일화들
근대에 전달된 불골 사리, 1909년
일본에서 돌아온 불국사 사리탑, 1933년
불사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다
괴산에서 돌아온 불사리, 1933년
4장 | 동아시아 사리 신앙
아시아에 사리 신앙을 전한 아소카왕
인도 사리 신앙 대중화 기반을 마련한 아소카왕
중국 사리 신앙 역사에 스민 아소카왕 이야기
우리나라에 전하는 아소카왕의 불사리 봉안
중국 고대 사리 신앙
높고 화려한 탑을 유행시킨 사리 신앙…
탑으로 보는 중국의 사리 신앙
오월왕 전홍숙이 심혈을 기울인 팔만사천 탑 공양
중국 불교 융성의 밑거름이 되었던 사리 영험
일본 사리 신앙의 시작
일본 최초의 사리 영험
일본 사리 신앙에 영향을 준 백제와 신라
일본 사리 신앙의 전개
일본 사리장엄과 사리 신앙, 그리고 헤이안시대의 사리 신앙 혁명
부록 삼국시대~근대 불사리 봉안 사례 일람표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리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나온다. 하지만 그 사리로 인해 다시 새로운 믿음이 일어난다는 데 바로 사리 신앙의 묘리(妙理)가 있다. 생과 멸이 하나로 이어지는 원리가 바로 사리에 담겨 있는 것이다. 또 사리는 탑 안에 놓인다든지 해서 여간해서는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딱 한 번만 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영험하기에 꼭 필요한 때마다 어디선가 문득 나타나 사람들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희망을 던져주었다. 이렇게 최고의 덕이 있으나 자랑하지 않고, 화려함이 넘치나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것, 이처럼 단 한 번의 드러냄으로써 영원을 설파하는 은자(隱者)의 미덕이야말로 사리의 진정한 가치인 것 같다. 무엇보다, 부처님의 고귀한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던 후세 사람들도 불사리를 예경(禮敬)하면 마치 석가모니를 마주한 듯 실감 나서 신심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니, 이로써 불교가 영원히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사리의 의미와 사리 신앙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삼국시대 후기부터 불사리를 탑에 넣고 경배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불교 전래 초기만 해도 궁이나 사찰에서 탑이 아니라 별도건물 안에 불사리를 안치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수시로
평창 월정사 탑돌이 사진(본문 31쪽)
이를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왕, 왕족이나 고위 관리 또는 스님 등에만 국한되었다. 그러다가 사리 신앙이 대중화하자 여러 사람이 보고 경배하기 위해서는 야외에 세우는 탑이 적합해 건탑(建塔)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야외 불탑이 늘어나면서 불사리를 경배하는 습속이 새롭게 나타났으니 바로 ‘탑돌이’이다. 탑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기도하거나 소원을 비는 탑돌이 풍속이 한국, 중국, 일본 모두에 있었다.( 「사리 신앙으로 나타난 탑돌이」에서)
삼국이 통일되고 30여 년이 지난 706년, 불사리 7과가 황복사 삼층석탑에 봉안되었다. ‘황룡사’가 그렇듯이 ‘황복사’라는 절 이름에도 황실의 안녕을 비는 바람이 들어가 있다. 실제로 2016년 1차 발굴 때 절터 바로 부근에서 효성왕(재위 737~742)과 직접 관련 있어 보이는 미완성 무덤이 발견되기도 했다. 황복사가 8세기의 중요한 신라 왕실 원찰의 하나로 추정되는 까닭인데, 따라서 황복사 삼층석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었음은 곧 통일신라 왕실 사리 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통일신라 사리 신앙 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