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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88984985964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06-08-02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좁은 골목은 억압된 삶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거기서 노는 아이들의 동작은 그 공간에 순화되어 있으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골목이 너무 좁아서 공을 옆으로 멀리 차낼 수 없다는 것을 공 차는 아이는 알고 있다. 그의 동작이 이미 골목의 폭을 가늠하고 있다. 공을 막는 아이의 자세도 그다지 긴장되어 있지 않다. 그 아이도 골목의 폭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놀면서, 자신의 동작으로 골목의 폭을 표현하는데 공간의 부자유조차도 놀이의 대상이다.
공을 찰 때, 사람의 몸은 힘을 뿜어낸다. 공을 차는 동작을 초점으로 삼아서, 사람의 전신은 그 초점에 집중된다. 두 팔은 공을 차는 두 다리에 대하여 대칭과 균형을 맞추어주는 동작으로 저절로 움직인다. 이 저절로 움직이는 동작은 완벽한 율동과 곡선을 이루어낸다. 팔은 다리의 움직임과 연결되어서 흔들린다. 팔이 다리에 맞추어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는 직립보행 이전의, 네발로 땅을 기던 시절의 추억이 살아 있다. 인간의 육체 속에서 이 추억은 멀고도 희미한 등불처럼 깜박인다.
빛이 먼 바다로 몰려가는 저녁 무렵에 시간은 어둑하고 듬성듬성하다. 시간의 사실성이 물러서는 자리에 여린 어둠이 내린다. 공을 차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사위는 바다의 빛 속에서 공 차는 아이들은 태초의 인간처럼 보인다. 해가 물밑으로 잠긴 자리에 아이들이 차올린 공이 떠 있다. 아이들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녹아버렸고, 아이들의 몸이 수평선 위에서 그림자처럼 녹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시간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지만, 시간에 결박되지 않고 그 시간과 더불어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