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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5982696
· 쪽수 : 311쪽
· 출판일 : 2012-06-29
책 소개
목차
PART1 파리에서(1-23장)
PART2 런던에서(24-38장)
책속에서
무기력하고 궁핍한 삶을 꾸려나가다 보면 극심한 배고픔이 닥쳐오지만 그와 동시에 가난 속에는 커다란 위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장래라는 것, 희망이라는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돈이 적을수록 걱정도 적어진다’는 속담은 분명 어느 정도까지는 진리다. 백 프랑이라는 거금을 지니고 있다면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 하겠지만 달랑 3프랑만 지니고 있다면 세상만사 겁날 게 없다. 3프랑이면 내일까지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 이후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초라하기는 하지만 당장은 두려움이 사라진다. 희미하게, ‘내일이나 모레쯤 되면 굶게 되겠지. 얼마나 비참한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고 만다. 마가린을 바른 맛없는 빵은 어느 정도 진정제 효과도 발휘하는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궁핍한 생활이 주는 위안도 느낄 수 있다.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 빠져본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바닥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랄까 아니면 희열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늘 조심스럽게 해왔지만, 막상 극한 상황에 처하고 보니 오히려 모든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져 버린다.
패디는 포츠머스를 향해 갔다. 거기는 그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줄 친구가 있다고 했다. 난 그 후로 패디를 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나는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패디를 다른 누군가와 혼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조의 소식은 사흘 전에 들었다. 그는 런던의 완즈워스의 교도소에 있다고 했다. 구걸을 한 죄로 2주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감옥 따위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길에 늘어놓은 것 같다. 하지만 한 편의 여행기를 읽듯 재미있게 읽어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당신이 예상치 못한 일로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당신을 기다리는 세계가 어떤 곳이라는 것 정도는 이야기한 듯하다. 앞으로 나는 이러한 세계를 좀더 철저하게 탐구해 보고자 한다. 나는 마리오나 패디, 구걸하는 빌 같은 사람들과 잠시 지나치는 만남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되어 보고 싶다. 접시닦이나 부랑인, 그리고 강둑에서 자는 사람들의 세계를 이해해 보고 싶다. 현재의 나로서는 궁핍한 사람들의, 소외된 사람들의, 버림받은 사람들의 한 단면을 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궁핍한 생활을 통해서 배운 것도 많다.
나는 앞으로 결코 부랑인들이 모두 술주정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걸인에게 돈을 주며 고마워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실직을 당한 사람이 무기력하게 있어도 섣불리 간섭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 구세군에게는 헌금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내 옷을 전당포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또 광고 전단지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또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