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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과 인성

공직과 인성

(강상원 나의 인생 여정)

강상원 (지은이)
  |  
물레
2019-08-30
  |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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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과 인성

책 정보

· 제목 : 공직과 인성 (강상원 나의 인생 여정)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88653630
· 쪽수 : 552쪽

책 소개

강상원 전 전라북도지사가 미수(米壽)를 맞이하여 어린 시절부터의 삶과 공직생활 35년을 돌아보며 진솔하게 써 내려간 회고록. 공직자로서 크고 작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맛본 보람과 좌절, 고충과 그 결과,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과의 관계 등이 꾸밈없이 그려져 있다.

목차

축사
우듬지의 생명력을 떠올리며 | 송하진(전라북도지사)
내디딘 걸음걸음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 김승수(전주시장)
‘일하는 공직자’의 풍부한 경륜을 배우고파 | 박성일(완주군수)
후배 공직자들에게 참된 나침판이 되길 | 임명환(전 진안군수)
재임기관에는 산 역사가 되고 후배들에게는 귀감이 되길 | 김성연(전 정읍군수)
후배들에게 큰 도움과 본이 되는 삶 | 이석봉(징검다리 회장)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Part 01 식민지배와 전쟁의 격동 속에서 보낸 성장기
유년 시절의 기억
- 유복한 한약방집 장남 / 일제에 빼앗긴 놀이의 즐거움
중학교 시절의 기억
- 이리농림학교에서 공부 대신 농사만 / 대학 가려고 전주북중학교로 전학
전쟁의 공포와 책임감의 무게
- 죽음의 공포를 일깨운 전쟁 / 가족을 책임진 어린 경찰

Part 02 국가고시에 도전하던 법학도
낭만과 열정 넘치던 대학 시절
-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다 / 청춘은 뜨거웠다
아내와의 결혼생활
- 적극적으로 다가온 아내 / 잘 자라준 아이들
국가고시 도전기
- 실패의 연속 / 고시를 포기하다

Part 03 공직의 길에 들어서다
말단 공무원 시절
- 계약직에서 군대로 / 선거관리위원회의 시기 / 전북도청으로 내려가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순창군수 시절
- 지역현황을 살피다 / 왕성한 사업 추진
정신일도(精神一到)의 진안군수 시절
- 사람이 문제다 / 핵심 지역사업
보직이동으로 영호남을 넘나들다
- 전북도청으로 다시 돌아오다 / 부산시 민방위국장이 되다

Part 04 두 차례의 전주시장 임기
지성통천(至誠通天)의 1차 전주시장 시절
- 사명감을 느끼며 금의환향 / 고질적인 물 부족 해결 / 설득과 타협으로 이루어낸 도시계획 / 부채상환을 위한 노력 / 생활 밀착형 사업의 성과 / 세계 속의 전주를 지향 / 문화도시의 기틀을 다지다 / 국무성 초청 미국 방문 / 어려운 민원을 해결하는 방법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교육파견
- 군사정권의 고위공무원 기강 잡기 / 그래도 시간은 간다
호시마주(虎視馬走)의 2차 전주시장 시절
- 현황을 세심하게 살피며 사업 추진 / 임기 지속성이 필요하다 / 청렴의 원칙을 지키다

Part 05 전라북도 부지사에서 도지사까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전라북도 부지사 시절
- 변화를 추구하다 / 행정에서의 융통성은 필요하다 / 마음은 언제나 고향 / 해프닝으로 끝난 국회의원선거 출마
호시우행(虎視牛行)의 국무총리실 시절
- 큰일은 없지만 할 일은 많다
심성구지(心誠求之)의 시절
- 여유롭던 내무부 민방위학교 교장 / 법지식이 유용했던 총무처 소청심사위원회 위원
마부위침(磨斧爲針)의 전라북도지사 시절
- 하늘의 별을 딴 심정 / 철저하게 준비하다 / 용담댐 건설사업 추진의 전말 / 오랜 숙원사업 추진 / 아쉬운 마음으로 공직 마무리

Part 06 은퇴 후의 삶
새로운 삶을 설계하다
- 아내와의 해외여행 / 성원건설의 문화원장 / 잠시 정치에 입문하다 / 자연인으로 살아가다
건강은 관리가 최선이다
- 병약했기에 건강에 민감하다 / 나만의 건강비법
기억 속의 사람들
- 내가 만난 사람들 / 전해 들은 사람들

이야기를 마치며
발문(跋文)_우리 시대의 청백리상 | 유민영(단국대 석좌교수)
강상원 연보

저자소개

강상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2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출생. 아호는 동암(東庵). 삼례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 서울대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특별시 재무국 촉탁으로 공직의 길에 들어섰으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4년간 근무했다. 이후 내무부로 옮겨 전라북도 기획관리관실 기획담당관, 순창·진안군수, 내무국장 등을 지내고, 전주시장을 두 차례 역임하면서 전주시청사를 신축했다. 전라북도 부지사, 총리실 심의관, 총무처 소청심사위원을 거쳤고, 전북도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전북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용담댐 건설을 기획하고 추진하여 그 기반을 닦음으로써 전북도민들의 가뭄과 홍수 문제 해결에 큰 공을 세웠다. 녹조근정훈장 등을 수훈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심리연구대학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논문으로 「경영행정 방식에 의한 투자재원 확대방안」(198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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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인민군 치하 3개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우익이라 인민군에게 해코지당할 것 같아서 익산군 온수리로 혼자 피난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장남인 내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인민군은 매일 한 집에 한 사람씩 노력동원에 참가하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했는데, 항상 집안을 대표해 내가 나갔다. 삼례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황방산에 참호를 파거나, 미군 폭격으로 손상된 철교의 교각을 보수하는 데 주로 동원되었다. 특히 교각 보수는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무척 힘들었다. 큰 모래가마니를 교각의 손상된 부분에 쌓는 단순노동이었지만 물 묻은 모래가마니를 등에 지고 경사진 교각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보수하다가 공습경보가 울리면 철교에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 숨어야 했다. 당시의 폭격은 정확도가 떨어져서 오폭이 대부분이었는데, 운이 나쁘면 빗나간 포탄에 맞아 죽는 경우가 많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공습의 순간에도 아이러니하게 밤하늘을 쳐다보면 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_69쪽, 「전쟁의 공포와 책임감의 무게」 중에서


내무부에서 권장하는 새마을사업도 많이 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을 통째로 옮겨서 새로 조성하는 사업인데, 대부분의 군에서 하나 이상 사업을 수행했다. 순창군도 주변에 냇가가 있고 건너에 도로가 있어서 이동하기 적당한 지역을 찾아서 새마을사업을 벌였다. 그런데 내무부 지침에 따르면 마을 집들은 무조건 도로 쪽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위치해야 했다. 지침을 그대로 따르면 모든 집이 동향이 되기 때문에 나는 남향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새마을과에서는 상부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순창군의 마을은 남향으로 하겠다는 공문을 만들어 내무부에 올리고, 담당 직원들에게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터이니 나만 따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내무부에서 왜 지침을 어기냐면서 현지조사를 나왔다. 내가 조사결과를 직접 장관에게 설명하니, 지침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지 사정에 맞도록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칭찬했다. 당시의 내무부는 무척 권위적이라 현지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탁상행정으로 기획하고 획일적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공무원도 책임지기 싫어서 지시대로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역행정을 책임지는 군수는 지역의 현실에 맞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풍 사업에서 실패를 겪으며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피하지 않았다.
_183~184쪽,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순창군수 시절」 중에서


신청사 설계에 관해서는 특별히 신경 썼는데, 분명한 기준점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전주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시청 앞에는 너른 광장이 조성되고, 주변에는 도시개발로 고층건물이 들어설 것이며, 뒤편으로는 40미터의 대로가 생기는 시청의 주변환경을 고려해서 설계하라는 것이었다. 저층이면 시청이 파묻혀서 주변 공간에 가리게 될 것이고, 고층이면 시민에게 불편하니 적절한 높이가 필요했고, 전통도시 전주라는 이미지가 담길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시장실 창문은 전통 창틀로 해라, 민원인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관공서의 권위에 눌리기 쉬우니까 이를 피하기 위해 민원실을 도로보다 낮은 곳으로 설계해라 등등 세세한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설명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디자인하기에는 어려운 요구였다.
전국을 대상으로 설계공고를 했더니 많은 설계회사가 응모했고, 결국 지상 8층 규모에 전통 기와지붕을 살리는 콘셉트의 디자인이 선정되었다. 당시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던 때여서 행정관청은 대부분 사각형의 획일적인 건물이었고, 디자인의 개념이 담긴 건물은 없었다. 그런데 시청사에 디자인이 도입되면서 ‘행정관청의 권위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훌륭한 건물’이라는 호평을 많이 들었다.
_236~237쪽, 「지성통천(至誠通天)의 1차 전주시장 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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