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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0729491
· 쪽수 : 280쪽
목차
1권
1. 이 청구서는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2. 신이시여, 부디 제가 그 스카프를 차지하게 해주소서!
3. 로또에 당첨이 되면!
4. 진짜 가격과 ‘엄마용 가격’
5. 사은품 가방도 주는 거죠?
6. 검소한 삶의 첫 날
7. 난 구제불능이야
8. 나도 부업을 하는 거야!
9. 옷가게에서 쫓겨나다
10. 난 이러고 있을 몸이 아냐
2권
11. 비현실적인 하루
12. 박람회장에서의 하루
13. 영국에서 열다섯 번째로 돈이 많은 남자
14. 타르퀸과의 데이트
15. “손님의 계좌는 정지되었습니다.”
16. 고향집으로 피신하다
17. 모두에게 뭔가 보여주겠어!
18. <데일리 월드>에 내 기사가 실리다니!
19. 이건 현실이 아니야
20. 방송국 대기실에서
21. TV 토론에서 성공을 거두다
22. 스튜디오에서의 재무 관리 상담
23. 난 달라졌을지도 몰라
24. 새로운 하루
책속에서
그때 갑자기 내 눈이 번쩍 뜨이고 심장이 멎는다. 데니 앤드 조지의 쇼윈도에 요란하지 않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검은 초록 바탕에 크림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세일'!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가슴이 터질 듯 뛴다. 그럴 리가 없어. 데니 앤드 조지가 세일을 할 리가 없어. 노 세일 브랜드인데. 이 상점의 스카프와 파시미나는 워낙에 인기가 좋아서 두 배 값을 주고라도 사려고 들 난리인데. 전세계의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데니 앤드 조지의 스카프를 하나 가져보는 게 소원인데.
"안녕하세요?" 나는 진정하려고 애쓰며 말한다. "저기 세일을 하시나 봐요?"
"예." 금발의 아가씨가 미소를 짓는다. "아주 특별한 경우죠."
내 눈길이 매장 안을 휩쓴다. 깔끔하게 일렬로 개어 놓은 스카프들이 보인다. 그 위에는 검은 초록색으로 "50퍼센트 세일"이라는 표시가 걸려 있다. 벨벳 날염 스카프, 비즈 장식이 된 실크 스카프, 수를 놓은 캐시미어 등 모두 떡하니 '데니 앤드 조지' 상표가 달려 있다. 온통 마음에 드는 것뿐이라서 어디서부터 고르기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다시 공포가 밀려 올 것만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이 나를 그 스카프 쪽으로 소리 없이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져 봐야만 한다. 걸쳐 봐야만 한다.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카프다. 점원 아가씨가 내게로 다가와서는 목에 스카프를 둘러준다.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스카프를 손에 넣으리라. '기필코' 갖고 말리라. 이 스카프를 하니까 눈도 더 커 보이고, 헤어스타일도 더 세련되어 보인다. 나를 전혀 딴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아무 것이나 받쳐 입어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데니 앤드 조지 스카프를 한 그 아가씨'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무심결에 그 스카프를 꼭 쥔다.
"살게요." 나는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듯 말한다. "내가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