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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0831835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10-06-14
책 소개
목차
1 청사진
2 페인트 붓
3 줄자
4 접합부
5 톱
6 접착제
7 잡동사니
8 T자
9 컴퍼스
10 다림줄
11 파워
12 끌
13 톱날
14 꺾쇠
15 분필선
16 못
17 대패
18 망치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한 청사진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그해 나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대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흥청망청 어울렸다. 목이 쉬어라 떠들어대며 토요일 밤을 보낸 후, 일요일 아침 숙취에 시달리며 잠을 자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가 유행이 지난 갈색 양복 차림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 이번만큼은 아버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버지의 엄격한 잣대에 어떤 논리로 대응하면 좋을지 궁리하며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짜증을 내며 물었다. “어쩐 일이시냐고요?” 아버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나는 1차 일제사격에 대비했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교회에 가려다 너도 갈 생각이 있나 싶어서 들렀다.” (…) 문득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아버지로서도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깨달음에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스러운 분위기가 우리 주변을 감쌌다. 우리는 이야기도 나지막이 주고받았다. 수의를 입히려고 아버지의 시신을 옮기는데, 아버지가 평생 동안 해온 일 때문에 얼룩덜룩한 피부에 남은 낯익은 흉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희미해진 하얀 선을 만지작거리며 아버지가 뭔가 고치고 만들다 손을 베거나 망치에 엄지손가락을 찍혔던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불룩한 가슴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히면서 나를 내려다보며 심부름을 시키던 아버지의 무서웠던 모습을 떠올렸다. 형제들과 어머니를 흘끗 보니 나하고 똑같은 심정인 게 분명했다. 누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모습은 아버지가 맞는데, 아버지가 아니라고. 이것은 몸뚱이에 불과하고 아버지는 저 멀리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