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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프랑스사
· ISBN : 9788991221833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11-06-30
책 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제1장 18세기의 프랑스
1. 경제적 변동
2. 사회적 모순
3. 통치 체계의 모순
4. 계몽사상
제2장 대혁명의 원인과 국민의회
1. 귀족의 반동과 왕의 무능
2. 재정 문제와 귀족의 혁명
3. 혁명의 제1막
4. 8월의 성과
5. 혁명의 중심이 파리로
6. 재정과 교회
7. 왕의 도망 실패와 그 전후
8. 1791년 헌법
제3장 입헌의회와 국민공회
1. 전쟁과 왕권 정지
2. 9월 학살과 상퀼로트
3. 공화정의 수립과 왕의 사형
4. 지롱드파의 몰락
5. 에베르와 당통의 몰락
6. 산악파의 혁명 이념
제4장 부르주아 공화국
1. 테르미도르파의 반동
2. 총재정부의 동요
3.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제5장 나폴레옹 시대
1. 통령 정부
2. 전승과 평화와 종교 협약
3. 종신 통령에서 황제로
4. 나폴레옹 제국의 절정
5. 나폴레옹의 몰락
제6장 복고 왕정
1. 1814년의 사회 정황
2. 제1차 왕정복고
3.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4. 제2차 왕정복고
5. 중도 정책의 파탄과 샤를 10세
제7장 7월 왕국
1. 동요의 전반기
2. 기조의 보수 정책
3. 왕국 말기의 위기
제8장 제2공화국과 제2제국
1. 공화정과 그 좌절
2. 샤를 루이 나폴레옹
3. 제2제국
제9장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1. 혁명과 패전
2. 파리의 분노
3. 코뮌 혁명의 발발
4. 코뮌 내란과 그 의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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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제3신분의 혈세로 만들어진 베르사유 궁정
삼부회 대의원 1,214명이 1789년 5월 초 프랑스 왕국의 방방곡곡 원근 각지에서 베르사유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베르사유는 물론이고 파리도 처음 보는 시골뜨기 유지들이었다. 특히 제3신분 대의원들이 그랬다. 그들은 우선 베르사유 궁정의 호사함에 놀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베르사유 궁정이 넓고 아름답고 호화롭다는 말은 들었지만, 눈앞에 전개되는 궁정은 실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호사와 장대의 극치였다. …… 베르사유의 장대하고 호사한 궁정과 궁중 생활의 비용은 어디서 나왔던가? 바로 제3신분의 혈세가 아닌가! 국가재정 파탄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그들은 이제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삼부회의 회의 장소를 파리로 하지 않고 베르사유로 한 것은 왕이 그토록 즐기던 사냥의 편의를 위함이었는데, 이것은 왕의 첫째 실책이었다.
파리 코뮌의 실권자로 등장하는 상퀼로트
8월 10일 사건은 파리 시의회 즉 파리 코뮌을 프랑스의 실권자로 만들었다. 입법의회는 파리 코뮌의 요구대로 왕권의 일시 정지를 선언하고 보통선거에 의한 새 국회인 국민공회의 소집을 가결했다. 왕권은 우선 잠정적으로 정지되었지만 결국 영원히 폐지될 터였다. 왕은 탕플에 유폐되었다. 그는 거기서 다섯 달을 더 살다가 처형되고 만다. 라파예트는 8월 10일 사건에 반격을 시도하여 일선 군대를 파리로 회군시키려다 실패하여 벨기에로 도망했다. 왕정을 수호하여 입헌군주 체제의 테두리에서 혁명을 성취하려던 사람들은 이제 라파예트와 함께 몰락하였다. 8월 10일 사건의 주동 세력은 온건한 부르조아가 아니라 파리의 노동자와 빈민과 영세 상인이었다. 이들이 앞으로 혁명을 한결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이들은 귀족이 입는 퀼로트라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하여 상퀼로트라 불렸는데, 이제 이 상퀼로트가 파리 코뮌의 실권자로 나타났다.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장 군인이 의사당을 점령하였다. 총검이 500인회 의원들을 쫓아냈다. 저녁 7시경 원로원은 앞서 500인회가 결의한 나폴레옹의 추방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보나파르트, 시에예스, 뒤코스의 3인으로 구성되는 임시 통령정부의 조직을 공포하였다. 총재정부는 폐지되고 새 통령들에게 행정권이 위임되었다. 루시앵은 30~40명의 500인회 의원들을 긁어 모아놓고, 원로원의 결정을 승인하고 62명의 자코뱅파 의원을 제명하고 12월 22일까지 6주일간의 휴회를 결의하였다. 밤 2시, 세 사람의 통령이 의회에서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선서하였다.
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라고 한다. 지난 1792년에,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혁명은 결국 군인 독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10년간의 혁명은 이제 한 군사 모험가의 지배로 그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