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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91239784
· 쪽수 : 524쪽
· 출판일 : 2011-12-05
책 소개
목차
서편 후리야기 일족 해설
1편 시체와 두 개의 문을 따라
2편 파우스트의 주문
3편 흑사관 정신병리학
4편 시와 갑옷과 환영의 조형
5편 세 번째 참극
6편 산테쓰를 매장하던 밤
7편 노리미즈, 끝내 놓치다?
역자 후기
책속에서
1월 28일 아침. 그리 건강한 신체를 타고나지 못한 노리미즈는 진눈깨비 흩날리던 새벽녘에 발생한 사건으로 쌓인 피로를 하나도 떨쳐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온 하제쿠라 검사가 살인이라는 말을 꺼내자 ‘얼씨구, 또야?’ 하듯 싫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노리미즈, 후리야기 가문 사건이란 말이야. 더군다나 제1바이올린 주자인 그레테 단네베르크 부인이 독살당했네.”
그렇게 말한 검사의 눈동자에 비친 노리미즈의 표정은 썩 싫지만도 않아 보였다. 노리미즈는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더니 곧 책을 한 아름 들고 와 자리에 털썩 앉았다.
“느긋하게 하지, 하제쿠라. 일본에서 가장 신비한 그 가문에서 살인사건이 터졌다면 어차피 예비지식을 쌓는 데만도 한두 시간은 걸릴 거야. 물론 일찍이 《케닐 살인사건》에서는 고대 중국 도자기가 그저 장식물일 뿐이었지. 그런데 이번 사건의 무대에는 산테쓰 박사가 꼭꼭 처박아놓은 카롤링거 왕조 이래의 공예품이 수두룩해. 그 안에 혹시나 보르자 가문의 도자기라도 있는지 누가 알겠나? 하지만 복음서 사본 같은 건 언뜻 봐서 알 만한 물건도 아니니…….”
그러더니 《1414년 상트 갈렌 수도원 발굴기》 말고도 책 두 권을 양 옆구리에 나눠 끼고는 공단과 푸른색 창포 무늬 사슴 가죽을 비스듬히 엇갈려 붙여 아름답게 장정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문장학紋章學?”
검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외쳤다.
“응, 데라카도 요시미치가 쓴 《문장학 비록》이라네. 이제는 희귀본이지만. 그런데 자네는 여태껏 이렇게 기묘한 문장을 본 적이 있나?”
노리미즈는 그렇게 말하며 올리브 잎 스물여덟 장으로 이뤄진 관冠이 DFCO라는 네 글자를 둘러싼 기묘한 도안을 손끝으로 쿡 찔렀다.
“덴세이 견구사절단 중 하나인 지지와 세이자에몬 나오카즈로부터 시작된 후리야기 가문의 문장이라네. 어째서 고대 일본 분고 지역의 통치자 프란시스코 시반(오토모 소린)의 서명이 가운데에 있고 피렌체 대공국을 상징하는 깃발의 일부가 그것을 감싸고 있을까? 여하튼 아래쪽 주석을 읽어보게.”
보라! 저기 드러누운 단네베르크의 시체에서 성스러운 영광이 찬란히 피어오르고 있나니. 마치 빛으로 된 안개처럼 온몸 표면으로부터 3센티미터쯤 되는 공간을 맑은 청백색 빛이 함빡 감싸 어둠 속에서 그녀를 아련히 도드라지게 한다. 빛에는 서늘하고 청려하며 경건한 기품이 있었다. 여기 응어리진 은은한 유백색 형체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신성의 계시가 아닐는지? 빛이 시체의 얼굴에 드리운 추한 그림자를 밀어내고 단정한 표정을 자아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온한 분위기가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 몽환적이고 장엄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천사가 부는 나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성스러운 종소리가 은은한 선율을 울리고 신비로운 빛이 금실이 되어 쏟아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흘러나오는 탄성을 추스를 길이 없었다. 아아, 단네베르크는 동정童貞을 인정받아 마지막 황홀경에 이르러 성녀로서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일까? 그러나 동시에 그 빛은 곁에 늘어선 얼빠진 세 얼굴도 비추고 있었다. 노리미즈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미늘살 창문을 여니 빛은 사그라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체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죽은 지 10시간은 지나고도 남은 듯 보였으나, 역시나 노리미즈는 동요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비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시체의 입안도 빛난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시체를 뒤집어 등에 나타난 선홍색 시반을 발견하고는 나이프 칼날을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시체를 조금 기울이자 걸쭉한 혈액이 묵직하게 흘러내려 삽시간에 시신 주위의 빛을 가르며 어렴풋하게 붉은 벽을 만들었고, 마치 안개가 갈라지듯 빛이 둘로 쪼개지자 그 틈새로 핏줄기가 철철 흘러 그림자가 졌다. 하제쿠라 검사와 구마시로는 이 처참한 광경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시즈코는 끝까지 듣고 희미하게 놀란 빛을 띠었지만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주머니 속에서 한 번 접은 고급 두루마리 종이를 꺼냈다.
“보십시오. 산테쓰 박사님이 그리신 이 그림이 흑사관의 저주입니다. 영광의 빛은 이유 없이 나온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으로 접은 종이의 오른쪽에 이집트 배 한 척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여섯 개의 그림마다 박사 본인이 사각형 후광을 등에 지고 서서 곁에 놓인 기이한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 각각에는 그레테 단네베르크부터 에키스케까지 여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끔찍한 살인 방법을 예언한 글귀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레테는 영광의 빛과 함께 살해당하리라.
오토칼은 목이 매여 살해당하리라.
가리발다는 거꾸로 매달려 살해당하리라.
올리가는 눈가리개를 하고 살해당하리라.
하타타로는 공중에 떠서 살해당하리라.
에키스케는 짓눌려서 살해당하리라.
“실로 끔직한 묵시로군요.”
상황이 이쯤 되자 노리미즈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각형 후광은 분명 살아 있는 자의 상징이지요. 그리고 그 배 그림은 고대 이집트인이 사후 세계에 있다고 상상했던, 신비한 사자의 나룻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말에 시즈코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공 하나 없이 연꽃 호수 위에 떠 있다가 죽은 이가 배에 오르면 명령하는 자의 의지대로 배의 각종 장치들이 저절로 움직인다지요. 그리고 사각형 후광과 눈앞의 사자는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결국 박사님은 영원히 이 성관 안에 살아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따라 저절로 움직이는 사자의 나룻배는 바로 테레즈 인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