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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91285040
· 쪽수 : 410쪽
· 출판일 : 2005-05-10
책 소개
목차
책 머리에 - "죽기를 각오하면 살 길이 있다!"
001 | 대장부의 길
가난한 선비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 중종 때 기묘사화로 가세 기울어 / 연산군~인종 때의 나라 사정 /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 '눈물의 왕' 명종 / 백년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군 / 충남 아산에서 청년기 보내
002 | 북풍
혼인한 뒤 무과시험 준비 / 악연이 된 선조의 즉위 / 무과 급제, 함경도에서 군인생활 시작 / 강직한 성품으로 상관과 갈등 / 좌천과 파면의 악순환이 시작되다
003 | 남풍
훈련원 복직, 다시 건원보로 / 녹둔도싸움 뒤에 첫 번째 백의종군 / 초대 정읍현감으로 선정 베풀어 / 정여립사건과 당당한 처신 / 임진왜란 14개월 전에 전라좌수사 발령
004 | 전라좌수사
망국적인 동서 당쟁 / 히데요시의 전쟁준비...무르익는 전운 / 당파에 따라 다른 귀국보고 / 전란에 대비 방어준비에 최선 / 육군보다는 비교적 강했던 수군 / 임진왜란 때 활약한 거북선은 3척 / 일본군보다 훨씬 우세했던 화약무기 / 솔선수범하고 신상필벌에는 엄격
005 | 임진왜란
13만 일본군 대한해협을 건너오다 / 경상도 수군 개전 초에 자멸 / 정발과 송상현의 장렬한 최후 / 무인지경을 가듯 북상한 일본군 /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한 조정 / '당대 명장' 이일과 신립의 참패 / 2개월 만에 평양까지 점령당해 / 임진왜란 초기 이순신의 움직임 / 즉지 출동하지 못한 이유 / 이순신함대의 제1차 출동
006 | 구국의 행군
옥포해전에서 빛나는 첫 승리 / 제2차 출동으로 당포대첩 거둬 / 적장의 머리만 일곱 개를 벤 당항포 해전 /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 한산대전 / 학익진 펼쳐 적 함대 섬멸 / 병력과 함선의 열세 딛고 승리 쟁취 / 가장 치열했던 부산해전 / 이순신이 없었다면 전쟁 일찍 끝났을 것
007 | 시련과 고난
"너 같은 것도 임금이냐!" / 의주까지 도망친 조정 / 평양성 함락과 명군 참전 / 마침내 폭발한 서북인의 원한 / 의병들의 눈부신 활약 / 경상도와 전라도의 의병장들 / 중부 이북의 의병장과 승병장들 / 경주성탈환.진주성대첩.평양성탈환 / 권율이 거둔 행주대첩
008 | 삼도수군통제사
백성을 위한 백성의 장수 / 수륙의 손발이 맞지 않았던 웅포해전 / 무모한 공격보다 방어에 주력 / 최악의 패전 제2차 진주성전투 / "진주가 없으면 호남도 지킬 수 없다!" / 조선수군 총사령과 삼도수군통제사 / 수군통제영 한산도 운주당 / 꾸준히 전함과 무기와 군량 확충 / 병력증강과 군량확보가 가장 난제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009 | 백의종군
제2차 당항포해전과 장문포해전 / 원균의 비상식적인 처사 / 왜군의 간계와 조선 수뇌부의 오판 / 한심하고 개탄스러운 어전회의 / 이순신의 파면과 하옥 / 의병장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 / 구사일생 끝에 두 번째 백의종군 / 칠천량패전과 수군의 전멸 / 수군의 전멸은 자업자득의 결과
010 | 명량대첩
수군을 재건하라 /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 / 남은 것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뿐 /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 동서고금에 전무후무한 바다의 대혈전 / 해남 명량대첩기념공원 / "하늘이 어찌 이리 박정한가!"
011 | 노량대첩
고하도에서 고금도로 /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 조명연합군의 예교성 공격 / 최후의 결전 노량해전 / 관음포에 떨어진 큰별 / 임진왜란의 마지막 장면들
012 | 이순신의 잠을 깨우지 말라
자살설과 은둔설은 망발 / 원균은 과연 용장이었나 / 선조는 왜 이순신을 미워했나 / 죽을 곳과 때를 찾아다닌 고행길 / 이순신을 두 번 죽이지 말라 / 위대한 CEO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워라
*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순신은 건원보 권관으로 부임하자 여진족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그들을 일거에 뿌리 뽑을 계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유인작전을 펼쳐 울기내 일당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이는 큰 상을 받고 특진을 할 수 있는 전공이었지만 이순신은 아무런 상도 받지 못 했다.
공로를 시기한 북병사 김우서가 "주장의 명령도 받지 않고 임의로 작전을 펼쳤다"는 보고서를 상부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단지 8품 벼슬이 만기가 되어 정7품 참군, 요즈음으로 치면 중위 계급에 자동적으로 승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달인 11월 15일에는 고향에서 73세의 노령이었던 부친이 돌아갔다. 길이 멀어 이듬해 정월에 기별을 받은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산으로 달려가 상복을 입었다. 효성심이 지극했던 이순신은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은 채 불철주야로 고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 무렵 우찬성으로 함경도 도순찰사가 되어 관내를 순시하던 정언신이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너무 바삐 가지 말고 성복하여 상주의 몸으로 천천히 가라."고 권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한 시각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하고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달려가 비로소 성복을 했다. - 본문 91~92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