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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각국정치사정/정치사 > 일본
· ISBN : 9788991799790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3-01-28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프롤로그 - 이스라엘 감옥의 일본인 테러리스트
1장 오카모토 고조 - 적군파 병사의 꿈
오카모토 고조와의 인터뷰
일본인의 책임 의식
2장 적군파 - 혁명군 병사라는 이미지
적군파 결성의 이데올로기
무장 투쟁이라는 돌파구
제2세대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
연합적군이라는 조직
‘공산주의화’
폭력과 정화
폭력과 이론적 정당화의 상호작용
뫼비우스의 띠
4장 아사마 산장 농성 - ‘섬멸전’의 아이러니
숙청의 끝
아사마 산장 농성
‘비밀’의 고백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
자기 비판과 전향 사이
책임의 형태
죽음의 이데올로기
에필로그
참고 문헌
옮긴이 후기
연표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게릴라가 되고 싶었던 대학생
우리 적군파 병사 셋은 죽어서 오리온자리가 되기를 빌었습니다.
우리가 죽인 모든 사람들 역시 같은 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일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혁명이 계속되면 별의 수가 얼마나 더 늘어날까요!
- 오카모토 고조,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을 재판하는 법정에서
적군파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최초의 한 걸음을 저자는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뗀다. 1972년 5월 3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세계를 경악하게 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몇 분 사이에 26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부상을 입은 이 테러의 범인은 일본에서 온 적군파 청년 세 명이었다. 범인들은 사건 직후 자살을 시도했지만, 한 명이 본의 아니게 목숨을 부지하여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평범한 젊은이들이 PFLP(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의 이름으로 테러를 저질렀다. 가족, 친구, 어제까지의 모든 삶을 버리고 레바논으로 날아와 게릴라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은 뒤 낯선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이 기이한 사건에 강렬한 호기심을 품은 저자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범인 ‘오카모토 고조’를 찾아 이스라엘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의 사고와 행동을 지탱하는 강력한 축이 적군파의 혁명 이론임을 알게 된다.
이야기 내내 오카모토가 유달리 강조한 내용은 자신이 개인 차원에서 습격 계획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습격은 조직의 계획이었고 그는 명령을 받아 움직였을 따름이다. …… 어디서 뭘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닉슨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령이 내려왔을 수도 있고, 아일랜드공화국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혁명 행동이며 게릴라 병사란 필요에 따라 행동을 취하도록 훈련받은 존재다. - 1장 오카모토 고조 - 적군파 병사의 꿈(49쪽)
적군파의 이론은 적군파에 속한 일본 청년 병사들을 그야말로 활동의 중심에 세워놓았다. 선택받은 일본 청년으로서 세계 혁명 전쟁에서 자신들이 전위라고 자각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요컨대 적군파 멤버들은 일본에만 머무를 필요가 없었고 훈련된 일본의 기동대와 독선적인 일본 대중을 상대로 하여 허무한 충돌을 거듭하며 좌절감에 빠질 필요도 없었다. 적군파는 세계 혁명의 사명을 진 일본의 전위 분자로서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어떤 지역의 혁명 전쟁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00쪽)
혁명의 시대, 적군파를 낳다
적군파의 기관지는 내게 혁명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
나는 적군파 이론이 다른 어떤 좌파 이론보다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다고 생각했다.
비(非)마르크스주의적 주장이 나와도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발전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혁명 전쟁을 이론적으로 주장한 당파가 적군파 이외에는 없었다는 것도 나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 우에가키 야스히로, 적군파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를 회고하며
저자는 적군파가 탄생한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적군파의 이론은 1960년대가 끝날 무렵 일본 학생 운동이 놓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도록 고안된 것이었다.”(101쪽) 가두시위에 나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기존의 투쟁 방식에 학생 투사들은 회의를 느꼈고, 국가 권력의 탄압과 운동의 불투명한 전망에 부딪쳐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적군파는 군대 창설과 ‘세계 동시 혁명’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무장 봉기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 적군파 이전에는 가장 전투적인 당파마저 자신들을 혁명‘당’의 민간인 멤버로 여겼지만, 적군파는 최초로 혁명‘군’이라는 관념을 도입했다.
적군파의 투쟁 방식은 독창적이었다. 담배 깡통으로 사제 폭탄을 만들어 던졌으며 활동 자금을 얻고자 총을 탈취해 은행을 털었다. 다른 당파가 총리의 미국 방문을 반대하는 데모를 준비할 때 적군파는 총리 납치를 위한 군사 훈련을 계획했다. 그리고 1972년 2월, 다른 급진 조직 ‘혁명좌파’와 연합하여 ‘연합적군’을 칭하던 적군파는 5명의 멤버가 총 3만 5천 명의 경찰에 열흘 동안 맞서 농성을 벌인 ‘아사마 산장 사건’을 통해 마침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다.
마지막 날 기동대 숫자는 1,500명으로 늘어났다. 산장 앞부분을 파괴하는 작업이 거대 크레인을 동원하여 시작되었고 약 50톤이나 되는 물이 발사되었다. 경찰은 12발의 연막탄과 1,400발이 넘는 최루탄을 썼다. 낮에 기동대가 산장 돌입을 개시하자 연합적군 멤버들은 총과 쇠파이프 폭탄으로 항전했다. …… 이 공방전 마지막 날 현장은 일본의 모든 방송국이 10시간 가까이 생중계했고 95퍼센트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38~139쪽)
당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농성하던 멤버들에게 공감했으며 수백 명이나 되는 기동대에 맞서 전투적으로 싸우던 모습에 성원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공방전이 한창 벌어질 때 더욱 명확한 지지 선언이 도쿄대나 교토대 등 대중 집회에서 발표되었고 여러 캠퍼스에서 응원 팸플릿이 뿌려졌다. …… 이 사건은 다른 무엇보다도 허무하게 패배했기 때문에 신념에 근거해 자신을 희생한 투쟁으로 여겨졌고, 많은 일본인에게 시대의 영웅을 안겨준 고결한 행위로 각인되었다. - 2장 적군파 - 혁명 병사라는 이미지(139~140쪽)
숙청의 발각, 운동의 좌절
이론 때문에 죽인 건지, 죽이고 나서 이론으로 정당화한 건지 그들도 구분이 안 가는 것 같다.
…… 이제 신좌파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운동은 결국 그들이 이끌어 가고자 했던 방향과 반대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 마쓰모토 세이초(작가)
아사마 산장에서 농성하던 연합적군 멤버 전원이 체포되고 일주일 뒤, 경찰은 연합적군이 기지로 쓰던 산속의 오두막집 근처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연이어 발견된 시신은 총 12구. 모든 시신에서 장시간에 걸친 잔혹한 고문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연합적군 내부에서 무시무시한 숙청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사마 산장에서 체포된 멤버들은 숙청에 참가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은 일본 진보에 헤아릴 길 없는 충격을 안겼다. “적군파의 다른 활동들이 시대의 흐름 속에 묻혔어도, 이 사건만큼은 깊은 고뇌의 근원이자 운동이 극복해야 할 하나의 유산으로 남은 것이다.”(152쪽) 저자는 적군파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적군파와 일본 학생 운동을 이해하려면 연합적군 숙청 사건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20여 년간의 당사자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이 아니라 빠져들기가 너무나 쉬웠던 심연이라는 사실”(152쪽)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내 목적은 그 상황을 추적하여 조사하는 것이지 이야기를 세부에 걸쳐 정확히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부야말로 진상을 밝혀준다고 할 수 있다. 세부를 알지 못한다면 1972년 겨울 죽음의 숙청으로 연합적군이라고 불린 일본의 혁명적 단체가 31명에서 19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 그칠 뿐이다. 한겨울 일본의 산속에서 그들이 동지 12명을 때리고, 찌르고,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