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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91934269
· 쪽수 : 405쪽
· 출판일 : 2012-02-17
책 소개
목차
1권
작가의 말
등장인물
프롤로그
1장~12장
지도
2권
등장인물
프롤로그
13장~24장
지도
작가 인터뷰
리뷰
책속에서
플랫폼에 서 있는 루시가 보였다. 얇은 면으로 만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루시는 인파 속에서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최신 유행하는 꽃 장식 모자 아래로는 그녀의 검은 곱슬머리가 살며시 삐져나와 있었다. 내 친구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고 예뻐 보였다.
“미나!”
루시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우리는 마주 달려와 얼싸안았다. 나는 친구를 깊게 포옹하며 말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마지막으로 본 뒤로 몇 달이, 아니라 1년은 흐른 것 같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잖아.”
“나도 그래. 지난봄만 해도 우리 모두 독신이었는데. 지금은.”
“둘 다 약혼을 했지!”
우리는 행복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서로를 꼭 안았다.
8월 6일이 되자 날씨가 급변했다. 태양은 두꺼운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었고 바다는 포효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자욱한 회색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아가씨들, 이제 폭풍우가 몰려올 거요. 그것도 엄청난 놈으로 말이오. 내 말을 명심해요.”
그날 오후에도 어김없이 교회 안마당의 벤치에 앉은 내게 스웨일스 씨가 다가오며 경고하듯 말했다. 평소에 스웨일스 씨는 마음씨 좋은 영감님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죽음에 관한 이야기만 계속했다. 그는 먼 바다를 가만히 응시한 채 불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 먼 바다에서 이런 악천후를 만났다면 분명히 배는 난파할 거요.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이 비탄과 슬픔으로 찢어질까……. 봐요. 사방에서 온통 죽음의 소리가 나는구랴. 죽음이 보여. 죽음의 맛과 냄새가 느껴져!”
우리는 몇 시간이고 춤을 추었다. 마침내 밖으로 나와 밤길을 걸었다. 무도회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주위에 가득했다. 마침내 그가 멈춰서며 우리의 몸이 밀착할 정도로 바싹 끌어당겼다. 얼굴이 맞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 서로의 품에 안겨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에게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주위를 감쌌고 심장은 튀어나오기라도 할 듯 뛰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내 입술로 향했다. 그러더니 그를 향해 드러나 있던 내 목을 향해 서서히 내려왔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당장 채우지 않으면 안 될 허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나도 비슷한 욕망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바그너 씨의 입맞춤을 원했다.
갑자기 그의 시선이 냉혹하게 변했다. 마치 온 힘을 다해서 입맞춤의 유혹을 애써 밀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결국 나를 밀어냈다.
바로 그 순간 어딘가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어둠을 뒤흔들었다. 근처에서 밤 산책을 즐기던 커플들의 웃음소리에 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가요!”
바그너 씨가 말했다. 내 시선을 애써 피하며 자제력을 되찾으려는 듯 보였다.
“어서! 내가 해 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