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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2977197
· 쪽수 : 250쪽
· 출판일 : 2011-07-25
책 소개
목차
1권
전야前夜
결전決戰
위제단爲濟團
왕의 진노
사택비
음모의 시작
황후를 참斬하라
파옥破獄
상실喪失
황제의 꿈
또 다른 인연
외팔이 자객
왕자의 눈물
궁남원의 피
재회
2권
자유를 위하여
황제의 길
그의 이름은 이리였다
의자, 날개를 얻다
다시 만난 의자와 계백
포로가 된 의자
가잠성은 백제의 수중에 들어왔으나……
복수의 칼을 들어라
의형제
위제단을 멸하라
실연
다시 만난 형제들
형제
항명
의자의 보복
필부의 삶
황산의 들에 눕다
책속에서
“연개소문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고구려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가서 백제를 멸하라.”
660년 6월, 당나라 고종은 행군대총관 소정방에게 군사 13만을 내주며 바다를 건너게 하였다.
소정방이 처음으로 배를 댄 곳은 덕물도德勿島였다.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소정방은 신라 지경으로 들어가 태자 법민法敏과 대각간 김유신을 만났다. 진군 계획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두 나라 군사가 수륙으로 나뉘어 당나라는 물길을 좇고, 신라는 육지로 진군하여 7월 10일에 백제 서울 사비성에서 다시 만나 합치기로 합시다.”
법민과 김유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정방의 제안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곧바로 신라는 전국에서 끌어 모은 군사 5만을 내어 탄현(지금의 보은報恩) 방면으로 나아갔다. 그 사이 소정방도 덕물도로 돌아가 13만 대군을 기벌포伎伐浦(지금의 서천舒川 백마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로 향하게 했다. 기벌포는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이 몇 리에 걸쳐 펼쳐진 곳이었다. 백제군이 만일 이곳에 진을 치고 공격해 왔다면 소정방의 군대는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소정방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지물조차 이용할 줄 모르는 백제의 어수룩한 군대를 맘껏 비웃으며 기벌포를 유유히 통과했다. 같은 시각, 신라의 김유신 역시 탄현을 지나쳐 사비성 방면으로 짓쳐들고 있었다.
실상 나당연합군이 기벌포와 탄현에 당도하기 이전부터 백제에서는 방어책을 마련하느라 의견이 분분했다. 나당연합군의 귀에 들어갔다면 기겁을 할 만한 계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탄현과 기벌포는 국가의 요충이라 할 만한 곳입니다. 한 사람이 칼을 들고 지키면 능히 만 명의 적군도 막아낼 수 있는 곳이니 속히 그곳으로 군사를 내소서.”
일찍이 권신들의 농간에 희생되어 의자왕으로부터 버림받은 부여성충과 부여흥수가 한 목소리로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의자왕은 권신들의 말을 좇아 탄현과 기벌포를 적군에게 내주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계백은 성충과 흥수의 계책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만 한다면 적군은 백제의 땅으로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할 터였다.
“답답하구나, 답답해. 가뜩이나 불리한 전쟁인데 나라 안의 요충을 내주었으니 무엇에 의지하여 적과 싸운단 말인가.”
나당연합군이 기벌포와 탄현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의자왕은 부랴부랴 계백과 의직을 불러들여 출정을 명하였다. 명을 받들고 궐에서 나오는 길에 계백과 의직은 마주보며 길게 탄식했다. 의직이 궁궐을 돌아보며 혀를 찼다.
“내가 일찍이 연개소문의 결단을 모범으로 삼지 못한 것이 이리 후회될 수가 없습니다, 그려.”
“여, 연개소문이라니요! 그렇다면 그 무도한 연개소문처럼 왕과 권신들을 죽이고 혁명이라도 이루고 싶었다 이 말이오?”
계백이 펄쩍 뛰며 의직을 노려보았다. 의직이 히죽 웃었다.
“이 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이래 도리니 의리니 따져가며 그릇된 왕과 귀족을 무조건 떠받들어 온 것이 사실 아닙니까. 나 또한 혁명을 꿈꿀 만한 그릇은 못 되는 터라 답답해서 해보는 말 아니겠소.”
연개소문은 당나라에 유화적인 정책을 펼친 영류왕과 그 측근 신하들을 제거하고 나라 안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바 있었다. 그날 이후 연개소문은 나날이 강대해지는 수나라와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힘을 길렀다. 결과적으로 수나라는 고구려에 크게 패하고 나서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계백은 나름대로 웅장한 뜻을 품고 동분서주하던 의자왕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적과 싸우다 죽을지언정 정치적으로 실패한 왕이라 하여 그를 향해 칼끝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 1권
황산령에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진지를 구축하고 5만에 이르는 신라군을 맞아 첫 싸움을 시작한 이래 계백은 네 번 싸워 네 번을 모두 이겼다. 그 사이 신라군은 사상자를 1만여 명이나 낸 탓에 기세가 꺾일 대로 꺾여 있었다. 그러나 그 네 번의 승리로 해서 백제군이 승세를 잡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백제의 5천 결사대와 계백에게는 다섯 번째 싸움이 큰 고비가 될 터였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김유신이 거듭되는 패배를 용납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날이 밝기 무섭게 4만에 가까운 신라군이 황산령 앞으로 달려와 싸움을 걸었다. 선봉에 선 것은 1만에 이르는 화랑이었다. 그들의 앳된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다 말고 계백이 상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이 7월 며칠이던가?”
“열흘입니다.”
상영의 짧은 대답에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투구를 천천히 머리에 썼다. 바로 그때 화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궁수들이 쏜 화살이 일제히 바람을 갈랐다. 이마와 얼굴, 목과 가슴에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화랑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기로 각오한 듯 하나의 물결이 되어 황산령을 오르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기병과 보병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 적을 맞았다. 계백 역시 앞으로 뛰쳐나가 대도를 무자비하게 내리긋기 시작했다. 어린 화랑들이 계백의 칼에 무수하게 쓰러져 갔다.
지금까지 싸움의 양상을 미루어 짐작컨대 이쯤에서 김유신은 북을 울려 화랑들을 불러들였을 터였다. 그러나 김유신은 북을 울리는 대신 앞장서서 황산령을 오르고 있었다.
“적을 황산령 밑으로 밀어내라! 물러서지 말라!”
계백이 절박하게 소리쳤으나 군사 수에서 밀리고 힘에 밀리다 보니 황산령은 곧 신라군으로 새까맣게 뒤덮였다.
계백은 절망감을 느꼈다. 열 배나 많은 신라군이 이처럼 물불 안 가리고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백제군으로서는 몸을 돌려 도망치는 것 외에는 딱히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황산령을 적에게 내주면 끝장이라는 것을 모든 군사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제군은 사력을 다하여 맞섰다. 계백 역시 말에서 뛰어내려 성난 사자처럼 이리저리 내달으며 신라군을 도륙해 나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백제군은 신라군에 겹겹이 에워싸이고 말았다.
“장군!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 포위망을 뚫을 테니 몸을 피하십시오!”
상영이었다. 그러나 계백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렇게 살아서 무엇 한단 말인가! 공연히 나를 위해 애쓸 것 없으니 끝까지 싸워 보세나!”
계백은 이렇게 소리치며 포위망 저편에서 득의에 찬 미소를 짓는 김유신을 노려보았다. 오늘의 무지막지한 작전은 참으로 김유신다운 것이었다. 계백은 김유신을 저승 가는 길동무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리 외롭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최후가 되리라 여기며 맹수처럼 포효했다. 그러고는 신라군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며 김유신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중략)
-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