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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93117158
· 쪽수 : 280쪽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 3
상 편 / 11
머리말-인, 신 두 어린 아들에게 / 11
1. 우리 집과 내 어린 적 / 12
(1) 선조와 고향 / 12
(2) 어리신 어머니의 난산으로 태어난 나 / 14
(3) 아버지의 가난과 불평 / 17
(4) 나의 글공부 / 20
(5) 과거 보다가 낙제 / 24
(6) 동학에 입도 / 26
(7) 해주성 싸움의 패전 / 31
(8) 청계동 안 진사와 고 선생 / 37
2. 기구한 젊은 때 / 44
(1) 압록강변의 망명과 강계성 습격의 패전 / 44
(2) 약혼과 파혼 / 53
(3) 치하포 사건 / 59
(4) 인천감옥에서의 사형 언도와 탈옥 / 68
3. 방랑의 길 / 93
(1) 숨은 지사들과의 사귐 / 93
(2) 마곡사에서 중이 됨 / 100
(3) 평양의 술 먹고 시 짓는 파계승 / 106
(4) 효 도 / 117
(5) 혼 인 / 118
(6) 교원 생활 / 120
4. 민족에 내놓은 몸 / 124
(1) 을사신조약과 상동회의 / 124
(2) 교육 운동 / 126
(3) 나석주, 노백린, 이재명과 나 / 132
(4) 신민회와 나 / 134
(5) 안명근 사건과 양기탁 사건과 나 / 136
(6) 나의 체포와 17년 징역 언도 / 138
(7) 왜의 악형 / 141
(8) 애국 지사들의 운명 148/
(9) 서대문감옥과 인천감옥의 내 생활 / 151
(10) 출옥과 농촌 생활 / 168
(11) 기미 3월 1일과 상해에 탈주 / 173
하 편 / 179
머리말 / 179
1. 3·1운동의 상해 / 182
(1) 상해에 모인 인물들과 나 / 182
(2) 경무국장 시대 / 182
(3) 왜적의 밀정을 처치 / 184
(4) 이동휘와 공산당 / 187
(5) 국무령에 취임하여 임시정부를 지키던 일 / 193
(6) 이봉창 사건과 윤봉길 사건 / 197
(7) 피치 박사 부처와 가흥 저씨 집의 신세 / 207
2. 기적장강만리풍 / 210
(1) 가흥의 망명 생활 / 210
(2) 장개석 장군과의 회견 / 215
(3) 낙양군관학교 / 216
(4) 남경의 망명 생활과 왜의 폭격 / 218
(5) 장사 이주와 내 가슴에 박힌 탄환 / 220
(6) 광동, 유주를 거쳐 중경에 / 226
(7) 독립당, 공산당의 옥신각신 / 228
(8) 광복군 조직과 서안, 부양에서의 특별 군사훈련 / 230
(9) 중경의 7년 생활 / 236
(10) 귀 국 / 238
(11) 삼남 순회 / 239
3. 나의 소원 / 244
(1) 민족 국가 / 244
(2) 정치 이념 / 247
(3)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 251
<해설> 다시 보는 ‘백범일지 : 양윤모 / 255
‘백범일지’ 관계 학술 논문 / 262
김구 선생 연보 / 271
전창근 감독 약력 / 279
책속에서
1. 우리 집과 내 어릴 적
(1) 선조와 고향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敬順王)의 자손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어떻게 고려 왕건 태조(王建太祖)의 따님 낙랑공주의 부마가 되셔서 우리들의 조상이 되셨는지는 ‘삼국사기’나 안동 김씨 족보를 보면 알 것이다.
경순왕의 8세손이 충렬공(忠烈公), 충렬공의 현손이 익원공인데, 이 어른이 우리 파의 시조요, 나는 익원공에서 21대손이다. 충렬공, 익원공은 다 고려조의 공신이거니와 이조에 들어와서도 우리 조상은 대대로 서울에 살아서 글과 벼슬로 가업을 삼고 있었었다. 그러다가 우리 방조 김자점(??金自點)이 역적으로 몰려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매, 내게 11대조 되시는 어른이 처자를 끌고 서울을 도망하여 일시 고향에 망명하시더니, 그곳도 서울에서 가까워 안전하지 못하므로 해주부중에서 서쪽으로 80리 백운방 텃골 팔봉산 양가봉((白雲坊基洞八峰山楊哥峰) 밑에 숨을 자리를 구하시게 되었다. 그곳 뒷개(後浦)에 있는 선영에는 11대 조부모의 산소를 비롯하여 역대 선산이 계시고 조모님도 이 선영에 모셨다.
그때에 우리 집이 멸문지화를 피하는 길이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그것은 양반의 행색을 감추고 상놈 행세를 하는 일이었다. 텃골에 처음 와서는 조상님네는 농부의 행색으로 묵은장이(??묵정밭)를 일구어 농사를 짓다가 군역전(軍役田)이라는 땅을 짓게 되면서부터 아주 상놈의 패를 차게 되었다. 이 땅을 부치는 사람은 나라에서 부를 때에는 언제나 군사로 나서는 법이니, 그때에는 나라에서 문을 높이고 무를 낮추어 군사라면 천역, 즉 천한 할 것도 없다. 이리하여서 우리는 판에 박힌 상놈으로 텃골 근동에서 양반 행세하는 진주 강씨, 덕수 이씨들에게 대대로 천대와 압제를 받아 왔다. 우리 문중의 딸들이 저들에게 시집을 가는 일은 있어도 우리가 저들의 딸에게 장가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중년에는 우리 가문이 꽤 창성하였던 모양이어서 텃골 우리 터에는 기와집이 즐비하였고, 또 선산에는 석물도 크고 많았으며 내가 여남은 살 적까지도 우리 문중에 혼상 대사(??婚喪大事)가 있을 때에는 이정길(李貞吉)이란 사람이 언제나 와서 일을 보았는데,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집의 종으로서 속량받은 사람이라 하니, 그는 우리 같은 상놈의 집에 종으로 태어났던 것이라, 참으로 흉악한 팔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해주에 와서 산 뒤로 역대를 상고하여 보면 글 하는 이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이름난 이는 없었고 매양 불평객이 많았다. 내 증조부는 가어사(??假御使)질을 하다가 해주 영문에 갇혔다가 서울 어느 양반의 청편지(청질을 하는 편지)를 얻어다 대고 겨우 형벌을 면하였다는 말을 집안 어른들께 들었다. 암행어사라는 것은 임금이 시골 사정을 알기 위하여 신임하는 젊은 관원에게 무서운 권세를 주어서 순회시키는 벼슬인데, 허름한 과객의 행색으로 차리고 다니는 것이 상례다.
증조 항렬 네 분 중에 한 분은 내가 대여섯 살까지 생존하셨고, 조부 형제는 구존(??俱存)하셨고, 아버지 4형제는 다 살아 계시다가 백부 백영(伯永)은 얼마 아니하여 돌아가셔서 나는 다섯 살 적에 종형들과 함께 곡하던 것이 기억된다.
3. 나의 소원
1. 민족국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 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 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 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옛날 일본에 갔던 박제상(朴堤上)이,
“내 차라리 계림(??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로 부귀를누리지 않겠다.”
한 것이 그의 진정이었던 것을 나는 안다. 제상은 왜왕이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준다는 것을 물리치고 달게 죽임을 받았으니 그것은,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 되리라.”
함이었다.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 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 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 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과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하여, 민족주의라면 마치 이미 진리권 외에 떨어진 생각인 것같이 말하고 있다.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 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나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四海同胞)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 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 사회상으로 불평등, 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 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 알륵(??알력), 침략,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으로 작고 큰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의 불안과 도덕의 타락은 갈수록 더 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이라고 믿는다.
이러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리 삼천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의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 하면 그것은 스스로를 모욕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이었다. 우리가 주연 배우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희랍(??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로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청년 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으라운(??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 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 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댄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 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