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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88993119701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14-04-1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시일야방성대곡
목 놓아 통곡하다 / 1905년 11월 10일 / 1905년 11월 15일 / 1905년 11월 18일
제2장 봉인 해제
오래된 약조 / 1872년의 고종 / 초량 왜관 난출 / 1872년의 메이지
제3장 정한론
메이지 정부의 왜관 접수 / 메이지의 정한론 입장 / 1873년의 고종
제4장 도발, 그 이면
운양호사건 / 1875년의 고종 / 1875년의 메이지
제5장 강화도조약
구로다 기요타카와 신헌 / 강화도조약 체결 / 수신사 김기수
제6장 신구 충돌
서남전쟁과 사무라이 퇴장 / 임오군란 / 메이지와 자유민권운동 / 갑신정변
제7장 전쟁
청일전쟁 / 을미사변 / 파천 그리고 대한제국
제8장 여명
러일전쟁 / 망국의 왕 / 여명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메이지 천황은 역사의 전면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가 메이지 천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종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흥선대원군 때문이었다. 유신 직후 메이지 천황을 상대한 조선 측 상대자는 고종이 아닌 흥선대원군이었다. _ <오래된 약조> 중에서
그러나 고종은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성품이 아니었다. 은근하고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성품이었다. 고종은 왕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니었고, 직접 나서서 왕위를 찬탈한 것도 아니었다. 생부 흥선대원군의 정략으로 왕위에 올랐을 뿐이었다. 게다가 왕이 된 후 10년간 대왕대비 조씨의 수렴청정과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겪었다. 그동안 고종은 주체적.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왕대비 조씨와 흥선대원군의 뒤에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왕의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만약 고종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성품이었다면 21살이 되기 훨씬 이전에 자신의 친정을 실현시켰을 것이다. _ <1872년의 고종> 중에서
당시 고종과 중앙 관료들은 청나라가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에 굴복한 이유를 힘의 부족보다는 내부의 배신에서 찾았다. 공친왕이 서양 열강에 청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종과 중앙 관료들은 공친왕을 배신자이자 매국노로 생각했다. 여진족 출신인 공친왕은 오랑캐이기에 기꺼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파괴하려 한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그런 선입견으로 공친왕이 주도하는 총리아문을 매국 조직으로 알았다. 이런 점에서는 고종도 흥선대원군과 다를 것이 없었다. 친정을 실현한 직후에도 고종은 기왕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_ <1875년의 고종> 중에서



















